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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서초 시대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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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서초 시대 ③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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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된 영화 '킬더맨'의 제작발표회
▲ 미완성된 영화 '킬더맨'의 제작발표회

2017년, 호남대 퇴임 후 꼼짝없이 한 학기를 쉬어야 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기도 했고 굳이 나서서 자리를 알아보지는 않았다. 나는 미루어왔던 교재와 세미나 관련서 집필 작업을 하였고 『한국영화 100년사』의 후속으로 『한국합작영화 100년사』를 마무리하여 11월에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나의 박사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한 글들이 수록됐다. 한국영화사에서 봉인된 합작영화 관련의 비밀 기록들을 찾아낸 의미 있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2학기에 다시 한국외대 강의를 시작하였고 2019년부터 한국디지털대에서 다큐멘터리 강의를 했다. 카메라 뒤에 서 있다가 카메라를 앞에 두고 하는 온라인 강의였는데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즈음은 한때 비대면 강의를 하며 모두가 온라인 강의를 하는데 나는 카메라와 친숙하고 크로마키 강의실 역시도 낯설지 않아 쉽게 강의 녹화를 했다.

이때 <킬더맨>이라는 극영화 감독 의뢰를 받아 각색 작업을 하며 오디션을 보고 제작발표회를 했다. 그러나 영화 투자받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제작비를 밑도는 투자로는 크랭크인할 수가 없었다. 결국 기다리며 시간만 보내다가 코로나 팬데믹을 맞았다.

<킬더맨>에서 오디션을 통과한 배우들은 모두가 소속사가 있었는데 모두가 소속사의 양해를 구하지 않고 배역이 탐나서 응모한 케이스였다. 그녀들에게 소속사 허락을 맡고 오라고 했는데 결국 아무도 오지 않았다. 소속사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했고 나 역시 소속사에 추천을 의뢰했지만 배우들은 편하게 이미지를 살릴 수 있는 배역만을 원했다. <건축학 개론>의 서현 역 같은 예로 영화 출연도 하고 CF도 출연할 수 있는 배역을 찾는 듯한 인상이었다.

그렇게 내 영화는 못하고 스님인 유영의 감독이 제작‧감독하는 <천상수훈>의 제작 전반을 자문하는 프로덕션 슈퍼바이저를 맡아 자원봉사하였다. 이 영화는 저예산의 독립영화이지만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수상하며 흥행기록도 양호하였다. 불가능에서 가능을 창조한 유영의 감독에게 나의 차기작 영화 <안중근>의 도움을 요청했다. 유 감독은 자신의 차기작을 말하며 웃음으로 나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2020년 1월에 발칸반도 여행을 다녀왔다. 동유럽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였는데 귀국하니 코로나 19가 시작됐다. 100년만의 팬데믹으로 인해 이소룡 세미나나 안중근 세미나, 한국영화100년사 세미나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극장을 폐쇄하고 대관 자체를 안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온라인 줌으로 비대면 세미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 팬들은 줌을 이해하지 못했고 초청배우들도 줌을 통해서는 만나는 건 의미가 반감되어 하기가 힘들었다. 김백수 무술감독을 섭외하였지만 아직도 그를 모시지 못하고 있다. 무려 2년 반의 세월이다.

그래도 줌 세미나를 지금까지 계속하여 139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참여 인원도 적어지고 올해까지만 월례 세미나를 갖고 내년부터는 부정기적으로 이슈가 있을 때만 개최할 생각이다. 때맞춰 고 신일룡 배우가 일을 줄이라고 조언을 해주어 그 말에 십분 공감을 하던 차였다. 139회라면 햇수로 12년이다. 매달 개최도 그러하지만 분명한 세계 기록이다. 기록 경신은 올해까지이고 앞으로도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한국외대에서 ‘영상콘텐츠 제작’이나 ‘다큐멘터리 실습’ 강의를 하고 겨울방학을 맞아 ‘2019 스마트폰영화제 워크숍’ 지도를 하고 한국외대 강의를 마쳤다. 지난 10여 년간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될 일이다.

이제 강의는 서울디지털대 미디어영상학과 한 군데뿐이고 그리고 간간이 들어오는 특강뿐이다. 올해로 강의 20주년이다. 누가 뭐래도 그 긴 시간 후학들에게 나의 강의와 제작 노하우를 전수한 건 보람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2021년 11월에는 나의 영화 관람기를 총정리한 『한중일영화 100년사』가 출간되었다. 4년마다 한 권씩 출간되어 『한국영화 100년사』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한 완결판이다.

2022년 5월에 신일룡 회장(전 영화배우)이 향년 75세로 별세하였다. 짧고 굵은 투병 생활을 한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본 분의 증언에 따르면 고통을 인내하며 끝까지 굴하지 않고 투병생활을 하였다. 별세 반년 전인 올해 초에 내게 연락하여 다큐멘터리 한 편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나로서야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얘기를 들어보니 가마치 통닭의 김재곤 회장의 스토리였다.

15세에 조실부모하고 살아온 감동적인 스토리였고 바로 취재에 들어갔다. 신 회장이 서두른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성격 탓으로 이해하고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는데 취재를 마칠 무렵에 갑작스러운 별세소식을 들었다. 그는 간암 투병 사실을 주변에 비밀로 한 내가 아는 한 유일한 분이다. 누가 아픈 사람을 만나주겠냐는 고인의 말을 전해 듣고 일 좀 줄이라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타인에게는 그렇게 말하면서 별세 직전까지 가마치 통닭의 사업 확장을 위해 노력했던 그이다. 모순된 말을 내게 하면서 정작 본인에게는 잠시의 휴식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던 분이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그를 이렇게 떠나보낼 수는 없다 생각하고 그의 평전 집필에 들어갔고 매일같이 원고작업을 하여 두 달 만에 탈고하여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상태이다. 적어도 나의 졸저인 『이소룡 평전』 보다 멋진 책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상태에서 현재 디자인 작업 중이다. 이 일에 매달리다 보니 나까지 우울증이 생길 지경이었다. 매일 같이 그를 생각했기 때문인데 이것에 탈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의 이야기 쓰기를 하게 된 것이다.

이즈음 나의 일과는 이 칼럼을 쓰는 것 외에 독서에 매진 중이다. 그동안 읽지 못하고 쌓아둔 책들을 접하며 타 작가들의 심오한 문학세계를 체험 중이다. 이제는 일에서 벗어나 나만의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 하지만 그 틈을 비집고 2022년 초에 한국다큐멘터리학회의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일을 줄이라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결국 또 내 차지가 된 것이다.

학회의 일은 안 해도 그만이라지만 활동이나 의미가 없는 학회장이고 싶지는 않다. 2022년 상반기에 연합학술대회를 마치고 하반기의 학술대회를 계획하며 도 무슨 일을 벌일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그저 시간 속에 나를 지켜볼 뿐이다.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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