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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동대문 시대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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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동대문 시대 ②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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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필름아카데미 사무실에서
▲ 서울필름아카데미 사무실에서

동대문구 청량리 일대에는 산림청 홍릉수목원이나 세종대왕기념관이 있어 청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봄꽃 피는 경희대 캠퍼스는 동네의 명소이다. 사방에서 상춘객들이 몰려들면 학생들의 면학분위기마저 걱정된다. 이곳에 학교가 유난히 많은데 경희대를 비롯하여 한국과학원(KAIS),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그리고 종암동 쪽으로 고려대까지 예전부터 풍수상으로 면학분위기가 조성된 곳이다.

이곳에 살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졸업하였으니 내 인생에서 동대문구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정든 동네이다. 단독주택에서 연립으로 재건축하고 다시 재개발 아파트로 이사를 했으니 1970년대 이후 동네의 변천사를 환하게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이곳이 '천지개벽' 상태의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고만고만한 변화일 뿐이다. 동대문 밖 대표적인 서민동네였기 때문이다.

청량리에서의 40년의 세월을 추억해보니 역시 영화한다고 다닌 행적 밖에 없다. 집에서 편집도 하고 영사기로 가족 시사회를 하고 구름속의 달을 촬영한다고 대문 위에도 올라갔다. 극장 간다고 다니던 골목길 아래에 시나리오 작가이며 방송작가로 유명하신 신봉승 선생님이 사셔서 시나리오를 써서 공부하러 다녔다. 원고를 한 팔 높이로 습작하면 팔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그저 쓰고 또 썼던 곳도 이곳이다.

그리고 탤런트 이일웅 씨도 사셨는데 그분에게 출연부탁을 하러 대본을 갖고 찾아간 겨울의 추억도 있다. 결국 겨울바다에 빠지는 장면은 유능한 후배를 천거하며 빠졌고 결국 올해에 별세하였다. 나의 영화계 사수 박태원 감독도 회기역 너머에서 레스토랑을 해 이도휘, 이일웅 선배와 일요일 마다 놀러가곤 했다.

이곳에 왕십리와 마찬가지로 도심에서 가까워 서민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따라서 시장이 형성됐고 교통이 발달하며 주택가가 형성됐다. 청량리는 풍수적으로 학문을 연구하기 좋은 청량하고도 조용한 곳이라 한다. 당연히 개발 전 한적한 곳에 위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고려대를 비롯하여 한국과학원(KAIS)가 세워졌고 경희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등이 세워졌다. 그리고 13만평의 산림청 홍릉수목원, 홍릉(영휘원), 세종대왕기념관까지 모여 있었다.

홍릉에는 명성황후의 묘가 있어서 고종이 자주 찾아와 전차까지 놓였다. 도성에서 그렇듯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곳이 청량리이다. 옛날에는 떡전교 사거리에 떡가게들이 모였는데 과거 보러 오는 선비들이 도성에 못 들어가면 이곳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는 장소가 됐단다. 지금은 고려대 쪽으로 넘어가는 길에 표지판으로나 알 수 있다.

청량리 역은 항상 젊은이로 시끌시끌했는데 강원도 쪽이나 안동 쪽으로 놀러가려면 이곳에서 기차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교통의 요지답게 항상 사람들로 들끓었는데 청량리 경찰서의 주요한 일은 주변의 대학을 관리하는 것이지만 주변의 우범지대도 만만치 않다. 한 때는 이곳을 배경으로 <터잡이>라는 어느 감독의 데뷔작과 <어미>같은 영화도 나왔다. 이곳을 노래한 어떤 여가수의 아련한 블루스 곡은 늘어진 커텐 너머 타는 황혼을 안타까워하며 타는 한 송이 국화를 노래했다.

종로를 나가기 위해서 노상 지나가던 이곳도 지하철이 생기며 지하로 다니면서 멀어졌는데 항상 변함없는 모습이다. 요즘 들어서야 스카이라인이 변하기 시작하는데 참 발전이 더딘 곳이라 할 수 있다. 이문동에는 아직도 나의 본가가 있다. 그래서 어머니를 찾아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는 곳이다.

가끔씩 경희대를 산책하는데 특히 5월이면 벚꽃동산 교정이 너무나 아름다워 무슨 공부가 되겠나 싶은 생각도 해본다. 화사하기가 여인의 미소 같고 수줍은 듯한 촌스러움도 어여쁜 청량리이다. 청량리 근처의 10경 및 가볼 곳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 청량리역 광장, 천장산의 홍릉, 세종대왕기념관, 홍릉수목원, 경희대의 벚꽃동산, 외대의 미네르바동산, 위생병원의 언덕, 배봉산, 중량천 주변, 그리고 경동시장 및 청량리 시장의 풍경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숨기고 있는 청량리를 나는 기억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다.

내 인생의 10경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내 조상의 뿌리 찾기, 그리고 왕십리 시대를 거쳐 종로, 명동, 흑석동 대학시절, 인제 군대생활, 남산, 충무로, 광화문, 우면동, 강남, 서초를 거쳐 광주, 그리고 다시 서초, 동대문... 나의 인생길에서 그 모든 곳은 당대의 삶을 상징하는 곳이다. 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그런 곳이었다.

인생은 시작과 끝이 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시간이 흐르고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새로운 기분으로 새로운 기운을 받아 열심히 살아온 기록이다. 정리하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쓴 것 같다. 그러나 기록의 여백 너머의 일들은 잊혀졌거나 굳이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도 될 일들이다. 남겨진 기록 그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에 기록으로 남은 것이다.

나의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쓴 이 글은 나의 가족에게도 의미가 있지만 기록으로서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살다보니 나의 기억도 역사성을 갖게 되었다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억의 고독을 벗어나 공유라는 새로운 행복도 인식한다.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자식들을 생각하며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지금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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