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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내가 겪은 인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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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내가 겪은 인생담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1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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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굵은 영화제에서 축사하는 필자
▲ 짧고 굵은 영화제에서 축사하는 필자

그동안 70여 회에 걸쳐 나의 살아온 시대 이야기를 연재했다. “아, 벌써 끝인가? 참 재미있었는데 아쉬워요...” 그런가하면 “화이팅입니다!!”, “섭섭합니다.”라는 격려성 글도 많았다. 이렇듯 독자들의 반응도 좋았고 나로서는 더 정리할 필요성도 느꼈다. 그래서 다시 글감을 정리하였고 오늘부터는 그 뒷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의 본편보다는 뒷얘기가 재미있다고 한다. 사실이 그러할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그 뒷얘기의 시작으로 내 주변의 이야기부터 나의 생각, 만든 작품들, 만난 사람들, 저서까지를 두루 소개할 예정이다.

그 모든 것은 단상으로서가 아니라 글로써 기록을 남기기 위함이다. 내가 만들거나 썼던 1,105편의 콘텐츠는 실로 방대하다. 저서 37권도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만난 분들은 너무 많아 어떻게 할지도 아직은 미지수이다. 살면서 만날 수 있는 분들의 숫자를 PD 생활 10년 만에 돌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접하는 사단장을 빼고는 가히 기록적이다.

나는 베이비부머 세대로 태어나 전쟁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휴전 직후의 곤란했던 경제 시기를 관통하며 살았다. 고생은 부모님의 몫이었고 금수저는 아니지만 부모님 세대보다는 풍요롭게 살았다. 얼마 전 만난 중학교 동창 K와 나누었던 금수저 말에 서로가 공감을 한다. 학생들이 사먹을 만한 것을 어려움 없이 사먹었다는 자평이다. 그만큼 소박했던 시대이다.

이즈음의 자식 세대는 이해 안 되는 일들이 많고 그들이 겪지 못한 사연들과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분명히 누군가는 기록을 남겨야 할 것이다. 글은 읽는 이들의 몫이며 해독하지 못하면 의미는 절감된다. 그러함에도 기록은 중요하고 만인 앞에 평등하게 존재한다.

우리가 살았던 급변의 시대를 살았고 지금은 더 빨라졌다. 우리 세대에는 모든 것에서 불확실성이 심했지만 그래도 지금 같지는 않았다. 노력하면 한 만큼 인생의 학점이 보장되던 시대이다. 그 가운데에서 누구는 더 핍박을 받았고 누구는 더 혜택을 누렸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가 인생에서 큰 차등과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었다. 그저 일할 만큼 하면서 정해진 가치 기준에 따라 지금보다는 평등을 누렸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렸다.

그러나 이즈음은 무언가? 그러한 정해진 길보다는 요행이 앞서고 공것을 찾는 시대 느낌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비중이 조금은 늘어난 것뿐이다. 나약해진 청춘상, 그것도 시대의 변화라고 해두자. 지금 시대가 과거보다 복 받은 시대이므로 그런 일도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는 그런 상황도 아니었을뿐더러 모두가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니 얼마나 각이 딱딱 맞아떨어졌을까? 모두에게 조국이 우선이었고 국가 경제가 중요했다. 우리는 개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에 소속된 국민들이었다. 예술인들은 배고픈 것이 당연했고 딴따라 취급을 받았으며 문화 모멸의 시대였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문화 예술인으로 살고자 했으니 부모님의 반대가 극심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이상 그런 모든 것을 감수하고 열심히 살아야 했다. 늦은 밤 불 켜진 공장에서 일하던 누이들, 시장에서 밤새운 부모님들, 노동판을 전전하던 이웃들, 모두가 궁핍했기에 부끄러운 걸 몰랐고 서로 도우며 살았던 시대이다. 그러기에 늦은 밤에 도서관에서 나왔던 우리들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김수현 작가가 쓴 경이적인 시청율의 드라마들은 그러한 것들을 잘 건드려 대중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최고의 시청율을 올렸다. 나는 그 드라마의 극중 주인공 같은 생각을 했었다. 무엇을 생각하든 반대하셨던 어머니, 말없이 지켜보시던 아버님, 그런 가운데 비교적 내 갈을 놓치지 않았던 나이다. 어떤 점에서는 행운아이기도 하다.

나는 분명히 남들이 평생에 한 번 하기도 힘든 직업을 여럿 거쳤다. 작가, 영화감독, 방송 PD, 교수... 물론 나보다 더 다양한 삶을 살았던 분들도 존재할 것이다. 내 삶은 분명코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만나는 분들이 나의 계획에 없었듯이 그저 살면서 우연히, 일부만이 계획 하에서 진행된 것뿐이다. 자신이 평생 먹을 것을 계산하고 태어나는 인생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부모님과 어르신들의 보살핌과 선배, 친구, 동료, 후배들과 어울려 배려하며 살아온 것이다. 한 사람의 작은 족적을 따라 가다보면 우리 인생의 의미와 노력, 환희를 함께 느낄 수 있기에 기록은 남겨져야 한다. 나의 인생은 곧 타인과의 교류였고 그 사이 많은 일들이 만들어지고 서로의 가치가 공유된다. 그 가치가 의미 있음은 두 말할 나위없다.

앞 장에서 펼쳐진 나의 삶은 결코 누가 정해놓은 길이 아니었다. 그저 거대한 물레방아가 돌아가듯 펼쳐진 것이다. 그런 가운데 후회되는 일이 먼저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시행착오를 직접 겪어야 하는 것이 인생살이다. 두 번 사는 인생이 아니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삶은 빛나는 하루를 만들어 내고 아름다운 사연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리라.

우연한 만남이 있었지만 내 인생의 설계자는 나이듯이 내가 결정한 일들의 결과이다. 이 모두 내게는 흥미로운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이 칼럼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인생의 주인공이다. 이 글은 조금 더 먼저 살았거나, 아니면 조금 더 부지런한 이의 기록일 따름이다. 향후 벌어질 일에서 그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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