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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영화계 40년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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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영화계 40년 ②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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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상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귀항' 기사
▲ 금관상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귀항' 기사

1978년 나는 <한국환상곡(코리아 환타지)>라는 제목의 내 영화를 기획했다. 한국의 반만 년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대작 다큐였다. 그것은 <맥>에서 못다 한 부족함을 채운다는 거창한 기획이었다. 나는 임 감독의 <비구니>의 촬영이 없는 날은 동해의 일출 등을 직접 찍으며 차근차근 영상을 찍어나갔다.

<비구니>는 알려진 대로 비구니들의 반대로 촬영 중반에 제작이 중지됐다. 해가 스카이라인에 걸리기를 기다리며, 땅에 물을 뿌려가며 정성을 다하던 <비구니> 촬영은 그렇게 좌절되었다. 그 와중에 완성한 <한국환상곡>은 ‘제10회 한국청소년영화제’에서 편집상을 받았다. 영화 완성도에 비해 상이 약하다고 수상을 거부하는 해프닝도 있었으나 다시 한 편을 만들기로 해서 만든 게 <회심(回心)>이다.

사찰에서 ‘49재’ 지내며 불리는 <회심곡>에서 영감을 얻은 것인데 한국여인이 한 평생을 49재를 지내는 딸의 회상으로 담아냈다. 안태완 촬영기사와 한 여름 내내 땀을 흘리며 찍어낸 영상은 아마추어답지 않았고, 그 다음 해 청소년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는데 그쳤으나 ‘제4회 부산단편영화제’에 출품해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상복이 많다기보다는 노력의 결실이었다고 생각한다.

1986년 다큐멘터리 <한국의 춤 살풀이>를 감독하며 꿈에 그리던 감독으로 정식 데뷔하였다. 그 후 중앙영화사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일하며 문화영화 시나리오 <한국의 술 명주>, <한국의 춤 승무> 등이 영화진흥공사 소재공모에서 뽑혔다. 그 중 <한국의 춤 승무>는 1988년 한국영상이 제작해 금관상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 해에 <사방지>로 시나리오 작가 데뷔를 한다. 이 영화는 송경식 감독이 연출해 아세아 극장에서 개봉해 10만여 명 정도 관객 동원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10만이면 준수한 기록이다. 그 때 써놓은 시나리오가 열 편 정도 있었고 내게도 곧 극영화 연출의 기회가 오리라고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줄을 놨는데 별별 조건이 많았다. 나는 그렇게 만든 영화가 홍보라도 제대로 되겠나 싶어 거절하며 기회를 봤다.

그리고 계속 문화영화 연출의뢰가 들어왔는데 모두 30여 편 정도를 각본, 연출하는 등 바쁘게 지냈다. 이후 나는 한국생산성본부가 제작한 <귀항(歸港)>으로 금관상영화제 우수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조명상을 수상했다. 이때 같이 일했던 안태완 촬영기사는 뚝심의 사나이였다. 제일 추운 날 인천 공해 상에서 물에 빠지는 살인적인 촬영을 감행했는데 나는 지쳐 선실 안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지치지 않고 석양의 인서트를 찍고 있었다.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 나는 한 수 배웠다.

한국생산성본부의 영상제작부 전문위원이 되어 이경자 편집기사의 오빠인 이상언 촬영기사와 찍은 <철판을 수놓는 어머니> 역시 금관상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 기획상, 촬영상, 조명상을 수상했다. 이때 여주인공은 안옥희 탤런트였는데 얼마 후 타계해 그녀의 유작이 되었다. 가녀린 그녀의 종아리와 생글생글 웃는 그녀의 눈은 아직도 새롭다.

국군홍보관리소에서 군홍보영화의 작가 겸 감독으로도 일했다. 그 때 찍은 다큐로는 <대한국인 안중근>이 기억에 남는다. 이 다큐는 KBS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나는 영화계 수상 경력으로 1991년 가을 부터 EBS에서 PD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천여 편을 제작하며 24년이 짧게 지나갔다.

2013년 12월에 EBS 퇴임 후 난 호남대 문화산업경영학과 교수 발령을 받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건 바쁘게 지내던 중 신의 한 수였다. 그리고 <킬더맨(Kill the Man)> 감독 의뢰를 받아 각색을 하며 오디션을 보며 준비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투자가 지리해지며 엎어졌다.

2018년에는 비구니 스님인 유영의 감독의 <산상수훈>에서 프로덕션 슈퍼바이저(제작 총괄/production supervisor)로 제작을 도왔다. 이후 중국 로케이션으로 촬영할 극영화며 다큐멘터리가 사드 사태로 인해 지금까지도 제작이 보류되고 있다. 2019년에도 극영화 <유리벽> 시나리오를 썼고 2020년에도 단편영화 <편집의 귀재> 썼지만 제작은 역시 보류되었다.

2021년에는 (사)한국민족종교협의회에서 다큐멘터리 <개벽을 부르는 소리와 춤> 시나리오를 의뢰받아 집필하였다. 2022년에 제작이 기정사실화 되었지만 무슨 일인지 아직도 제작이 안 되고 있다. 영화 작업이란 이렇듯 요원하다. 이것이 나의 영화계 40년의 기록이다.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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