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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 전통문화를 찾아서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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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 전통문화를 찾아서 ①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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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전통문화를 찾아서' 제작 현장
▲ EBS '전통문화를 찾아서' 제작 현장

EBS에 스카우트되어 처음 맡은 프로그램이 <전통문화를 찾아서>이다. 이 프로그램은 1991년 3월에 <승무와 살풀이>를 시작으로 방송했는데 스튜디오에 명인을 모셔 풀어낸 종합구성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 더 적합한 내용이라서 내가 긴급 투입된 것이다.

학교 선배인 시길수 부장은 내게 드라마 연출은 일단 후배가 하고 있으니 <전통문화를 찾아서>를 당분간 맡아서 하라고 했다. 나로서는 급할 것도 없으니 그러겠노라고 했는데 이 프로그램을 무려 5년간이나 연출하게 되었으니 이 프로그램에 내가 얼마나 심취했는지를 알 수 있다.

다음은 <전통문화를 찾아서>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의 글인데 타인의 시각에서 프로그램을 말하고 있어 소개한다. 글을 쓴 노현선 님은 어느 대학에 재직 중이실 터인데 만나서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알게 하는 ‘전통문화를 찾아서’ 시리즈

가을, 10년간의 미국생활 후에 귀국한 나는 모교의 시간강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실로 오랜만에 다시 찾아가본 교정에서 신선한 가슴 설렘을 느끼며, 나는 새로운 학생들과의 만남에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그런데 곧 나는 한 가지 고민에 부딪혔다. 내가 강의하게 된 과목은 근대화과정 이후의 한국주택의 변천에 관한 것이었다. 10년간 미국에서 살다 막 돌아온 내가 한국주택의 근대사를 강의하자니, 다소 막막해진 느낌이었다.

미국에 사는 동안 공영방송인 PBS와 히스토리 채널 등에서 제작된 우수한 비디오와 DVD를 꽤 많이 구입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기회가 되면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맡은 과목이 한국주택의 근대사에 관한 것이다 보니, 미국에서 가져온 자료들은 이번 학기에는 별 소용이 없게 되었다.

과목의 성격상 이론으로만 줄줄 강의해대면 그렇게 재미없는 강의도 없을 것이었다. 시각적인 것에 익숙할 대로 익숙한 요즘의 학생들에게는 더 더욱 그러할 터였다. 그렇다고 서른 명에 가까운 인원을 번번이 견학을 데리고 다니기도 무리였다.

고민하다가 인터넷을 통해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있는지 검색해보기로 하였다.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강사 시절에도 나는 방송사에서 나온 프로그램을 구입하여 수업시간에 유용하게 사용하곤 했기 때문에 우선 방송사에서 제작된 프로그램들을 검색하였다. EBS의 프로그램을 검색하다가 나는 눈이 번쩍 띄었다. ‘EBS 전통문화를 찾아서’라는 시리즈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게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한 나는 곧바로 그 시리즈 중 ‘한국의 고가(古家)’, ‘서울의 고가(古家)’, ‘한국의 부엌’, ‘한국의 담’, ‘겨울을 나는 지혜 -난방’, ‘한국의 벽돌, 전’ 등을 구입했다.

며칠 후 도착한 비디오를 틀어보면서 나는 한편으로는 기대를 잔뜩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생들 수준에 맞을 만한 비디오일까. 단순 교양물 정도이면 별 깊이가 없을 지도 모르는데...’하는 우려가 되었다. 그러나 나의 우려는 정말 쓸 데 없는 것이었음을 곧 알 수 있었다.

‘한국의 고가’편에서는 전국 여러 곳에 분포하여 일일이 찾아다녀보기 어려운 고가들을 한자리에 앉아 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예컨대, 상류주택의 격식을 갖추고 한국 주거건축의 멋을 보여주는 99칸 가옥 양동의 향단이라든지, 이율곡의 탄생가로 유명한 강릉 오죽헌, 하회마을 북촌댁 가옥, 조선후기 대표적 별장 건축인 대전 동춘당, 그리고 잘 알려진 강릉 선교장 등이다.

또한 ‘서울의 고가’편에서는 우리가 수업시간에 다룰 성북동 이재준 씨 가옥, 안국동 공덕귀씨 가옥, 관훈동 이진승 씨 가옥과 그밖에 조선 후기 가사규제(家舍規制)가 철폐되면서 사대부집의 건축요소를 사용한 중인들의 주택들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사회변화에 따른 주택의 변화로써, 소위 집장사집이라고 불리었던 개량한옥들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되어 있었다.

그리고 ‘겨울을 나는 지혜’편은 우리의 독특한 전통 난방방식인 온돌이 얼마나 과학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그 기능을 하는지, 현장을 직접 찾아서 보기 어려운 축조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말재주가 별로 없는 내가 한 학기의 강의를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비디오의 도움이 컸다. 학생들에게 흥미로운 자료가 되었음은 물론, 날로 “더 높이, 더 빽빽하게, 더 크게” 성장해가는 숨 막히는 아파트 문화 속에서 우리의 전통가옥이 얼마나 친인간적‧친환경적이며, 여유롭고 멋스러운 주택인지를 실감나게 일깨워주는 자료였다.

‘전통문화를 찾아서’ 시리즈가 얼마나 잘 팔리는 자료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인기여부를 떠나 이와 같이 귀중한 자료를 만든 분들에게 참으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 시리즈는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게 할 뿐만 아니라 미래 우리 후손의 생존이 위협받을지도 모를 정도로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는 요즘, 참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 줄 알았던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게 하고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담담히 말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노현선)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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