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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 '세계의 도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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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 '세계의 도시 서울'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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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당시 EBS의 제작본부 기획제작부
▲ 제작 당시 EBS의 제작본부 기획제작부

1994년은 서울 정도 600년을 맞는 해였다. 나는 <전통문화를 찾아서>를 연출하며 서울의 전통문화를 소개하였다고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60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PD로는 내가 유일했고 영화감독으로 임권택 감독, 촬영감독으로 정일성 감독이 선정되었다.

EBS는 세계 속의 도시 서울을 알리기 위해 <세계의 도시> 다큐 시리즈를 대한항공 협찬으로 기획했다. 나는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서울을 맡게 되었다. 다들 해외의 도시들을 취재 나가는데 왜 나만 서울이냐고 담당인 김정규 부장에게 질문했더니 “가장 중요해서...”라고 답했다.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일 터인데 섭섭하기도 했다. 그런데 ‘카이로’와 ‘괌’을 보너스처럼 보내주었다. 물론 기내 상영용 영상 제작의 임무가 부여되었다. <세계의 도시 서울> 편은 8월 20일에 방송되었고 시리즈는 끝이 났다. 2주일에 한 편씩 <전통문화를 찾아서>를 제작할 때의 일이다. 물론 <전통문화를 찾아서>는 사전제작에 의해 차질 없이 방송되었다.

당시 압구정동에는 오렌지족이 많았다. “오렌지족은 1970∼80년대 경제적 혜택을 받고 태어나 주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에서 자유롭고 호화스러운 소비생활을 즐긴 20대 청년을 지칭하는 용어다.”(시사상식사전) 오렌지족은 고급차를 몰고 다니며 여성들을 유혹했는데 “야, (차에)타!”라는 말을 유행시켜 야타족으로도 불렸다. 경제개발의 효과로 소비가 미덕이고 잘못된 향락문화를 상징하는 그들을 <세계의 도시 서울> 편에 소개했다.

그러나 몰래 카메라를 시도해도 그들을 발견하고 촬영하긴 쉽지 않았다. 흔치 않은 일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5공화국 이후로 대한민국은 흥청거리고 있었다. 서울 편에서는 다룰 스토리가 많았고 그만큼 재미있었다. 서울의 역사성과 발전성은 세계의 도시 중에서도 으뜸이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도시가 서울이다. 그러다가 1997년에 제대로 맞은 어퍼컷이 외환위기 상황이다. 당시에는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이다. 휴대폰은 아니지만 삐삐를 차고 신세계를 경험하며 물밀 듯이 해외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던 때이다.

다음의 글은 다큐멘터리 PD로서 <세계의 도시 서울>편을 제작할 당시 함께 일한 오연주 작가의 글이다. 프로듀서연합회보 1994년 7월호에 실렸다. 당시 타인의 시각에서 본 글이라서 인용해본다.

EBS <전통문화를 찾아서>의 안태근 프로듀서

그는 “충무로 키드”다. 어릴 적,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극장에 출입했다는 그는 마를린 먼로의 치마 속이나 오드리 햅번의 날카로운 콧날에 빠져들 나이 이전부터 신상옥 감독 영화에 빠진 헐리우드 키드가 아닌 충무로 키드였다. 신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연산군>을 보며 일찍이 영화감독을 꿈꾸었다는 그. EBS의 안태근 PD가 바로 그이다.

내가 그를 만난 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길고 긴 무더위가 막 조짐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6월초, EBS가 의욕적으로 방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세계의 도시> 시리즈의 ‘서울’ 편을 제작하기 위한 PD와 작가로서 만난 것이었다. 그는 얼른 보기에도 베테랑 PD였고 나는 의욕만 앞서는 풋내기 작가였다. 그는 선량한 웃음으로 애써 작가를 편안하게 대해주려 했지만 그의 눈매는 줄곧 날카로웠고 집요한 승부 근성을 엿볼 수 있었다.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내가 본 안태근 PD는 좀처럼 지칠 줄 모르는 사람 같았다. 그는 늘 앞좌석에 앉아 기획서를 비롯해 잡지, 신문, 단행본 등 프로그램과 직간접으로 관련되는 수많은 자료들을 읽고 메모해 나갔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방송스케줄 속에서 재충전의 시간이 따로 없는 방송인이 어떻게 내실을 쌓아가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그가 현재 맡고 있는 프로그램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40분에 방송되는 <전통문화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이다. 2주일에 한 편씩 30분의 다큐멘터리, 그것도 전통문화를 심도 있게 다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취재 중에 알게 된 것은 그가 고정관념을 깨는 사람이란 것이다. 촬영 마지막 날 스탭들과 쫑파티를 벌였는데, 선통문화를 찾는 그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놀랍게도 압구정동 한 복판이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곳이 그가 자주 찾는 아지트라는 것이다. 그 곳에서 그는 연극하는 후배를 만나고, 사업하는 친구를 만나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또 그 곳을 찾는 이들을 만나 젊은 시청자들의 생각을 보고 듣는다.

그러면서 그는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고정관념을 깼다. 전통문화란 프로그램은 고리타분한 것이고, 책이나 사료를 대강 지루하게 정리했을 것이라는 기존의 선입견을 말이다. 그는 드라마타이즈를 다큐멘터리에 도입했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이런 형식의 다큐 기법을 그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써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남들이 “그런 걸 어디 가서 찍어?”라고 말하는 것들을 주제삼아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최근 서울 다큐멘터리 제작 중에 동시에 그가 만든 <도깨비>라는 프로그램은 화면구성이 어렵다는 이유로 편성회의에서 제쳐졌던 주제인데 날밤을 새워가며 기어이 완성시켜 냈다.

무엇보다도 그는 철저한 예술가 기질을 가진 방송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방송과 영화는 엄연히 다르다. 방송이 예술이냐, 기술이냐 하는 것은 부질없는 말장난이 되겠지만 명확한 것은 그가 기계처럼 돌아가야 하는 방송시스템에서도 예술가의 정열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프로그램을 위해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온 이 땅의 대가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장인정신’을 늘 채찍질 받기 때문일까.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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