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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일제강점기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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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일제강점기의 영화'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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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진이 배우, 윤성규 코디와 함께
▲ '일제강점기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진이 배우, 윤성규 코디와 함께

<역사 속으로의 여행, 한국영화개척자 춘사 나운규> 이후 한국영화사에 대한 또 한 편의 다큐가 바로 <일제강점기의 영화>이다. 이 다큐는 1996년에 EBS 기획안 공모에 당선되면서 출발했다. 한국영화 역사의 태동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를 다룬 한 편의 역사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중국 상해에서 취재해 만들었다. 이 다큐를 통해 처음으로 일제강점기 상해파 한국영화인들이 본격 조명됐다.

<일제강점기의 영화>는 1997년 광복절에 방송됐는데 일제강점기의 우리 영화들을 집중 조명한 다큐멘터리이다. 영화태동기부터 1930년대와 1940년대 우리 영화를 희귀 자료 등을 통해 소개 분석했다. 태동기의 우리 영화사에서 당시 일본은 어떻게 존재했으며, 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오늘 우리는 우리 영화사를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를 살펴봤다. 유사 다큐가 이후에 많이 제작됐는데 내가 최초로 다룬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당시 영화인들이 일제의 탄압으로 작품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자, 뜻있는 영화인들이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활동한 내용을 중국 현지에서 직접 취재하여 다루고 있다. 일제강점기 상해파 영화인들인 정기탁, 이경손, 전창근, 한창섭, 정일송 등을 최초로 발굴 추적한 다큐멘터리이다.

일제강점기 상해파 영화인들의 제보는 고 이영일 영화평론가에 의해서였다. 그는 내가 연출 중인 <TV 인생노트>에 출연하며 나의 한국영화사 다큐멘터리 제작 계획을 들었다. 그리고 상해에서 활동했던 그들을 취재해 한국영화 역사를 복원해달라며 당부했다. 나로서도 궁금하였던터라 중국 취재를 중국의 윤성규 코디네이터에게 부탁했다. 이후의 밝혀진 일은 나의 방송 활동 중에서도 가장 기록에 남을 일들이었다.

특종으로 정기탁 감독의 1937년 작 <상해여 잘 있거라>를 최초로 입수하여 공개했다. 그외 <애국혼>(1928년 작), <상해여 잘있거라>(1934년 작)등 이름만 남아있는 영화의 자료와 필름을 발굴하여 잃어버린 우리 영화사의 공백을 복원했다.

이 다큐멘터리 방영 이후 상해파 한국영화인들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다. 2001년에는 한국외대 석사논문으로 「일제강점기 상해파 한국영화인 연구」가 발표되어 본격화된 연구가 시작됐다. 이 다큐멘터리의 의미는 일제강점기 영화연구에 상해파라는 벽돌 한 장이 얹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방송 후에 상해파 한국영화인들의 중요성으로 그들의 존재를 논문화 시키려고 내 주변의 교수들에게 얘기해주었으나 모두가 시간만 끌었다. 직접 다녀오지 않은 부담감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상해파 영화인들의 활동이 방송으로 허공에 쏘아질 수만은 없다고 생각해 내가 직접 학위논문을 쓰고자 결심하고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공부에 지각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한국외대 정책과학대학원 신방과에 입학했다. 늦깎이 학생이 된 것인데 논문은 이미 목차가 잡혀 있었다. 학기 중에 지속적으로 수정을 거듭해 완성하여 2001년에 대학원 최우수 논문상까지 받았다. 이 논문이야말로 오늘날의 나를 이끈 계기가 되었다.

나는 끝장을 보겠다는 신념으로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상해파 영화인의 스토리를 포함하여 한국합작영화 역사를 다룬 「한국합작영화연구- 위장합작영화」를 중심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또한 EBS 퇴임 직전까지 외주제작하던 <시네마 천국>을 담당하며 영화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기획했다.

상해파 한국영화인의 발굴은 비단 나에게만 중요한 것이 될 수는 없었다. 논문 발표 이후 지속적으로 초청되어 여러 곳에서 발제를 했다. 결국 상해파 영화인들의 스토리는 한국영화사에 정식으로 편입됐다. 늦게나마 한국영화사에 그들의 기록을 남긴 일은 중요한 일이다. 정기탁 감독의 후손도 만나 귀한 자료들을 받았다.

논문 말고도 다큐멘터리로 다시 만들려고 기획하였지만 “안태근 PD는 왜 영화 프로그램만 기획하느냐?”는 윗분의 말을 듣기도 했는데, 말도 안 되는 핀잔이다. 그래서 전문 PD 아닌가. 결국 이 다큐멘터리는 다른 PD에 의해 기획되어 내가 인터뷰이로 출연하고 출연자 섭외 및 자문을 해주어 완성됐다. 누구라도 만들었으니 다행이지만 아쉬움은 크다.

<일제강점기의 영화> 상해 취재에서는 중국의 원로여배우인 진이 여사를 만나 인터뷰했다. 한국인으로 1920년대 중국영화계의 황제로 불린 김염 배우의 미망인인 그녀는 상해파 한국영화인들을 기억하며 <상해여 잘 있거라> 노래도 들려주었다. 차분하면서도 총명한 그녀와의 인터뷰는 이후에도 몇 차례 더 있었다. 모든 게 노력에 의한 인연이 아닐까 싶다.

상해영화박물관에서 당시 잡지며 신문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그들의 관련 기사를 찾을 수 없었다. 온통 할리우드 영화계 기사뿐이었다. 집념을 갖고 찾아낸 건 방송과 논문 발표 이후 제보를 받아서이다. 이렇듯 다큐멘터리는 충분한 제작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료 찾기야 말로 다큐멘터리 완성도의 관건이다.

정기탁 감독의 <애국혼>을 입수하여 방송이 나가고, 정기탁 감독의 후속작인 <화굴강도>, <삼웅탈미>, <양자강> 등 일제강점기 상해파 한국영화인의 스틸 구입 전말은 꽤나 까다로웠다. 중국전영자료관과의 협상은 지리했고 <애국혼>의 스틸 구입 후 1997년 이후 2007년 한중수교 특집 다큐 <동북아의 등불 청사초롱과 홍등> 제작 때까지 10년이나 걸렸다. 이 자료들은 방송에서 소개 후 전량이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되어 보관돼 있다.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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