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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안중근 순국백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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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안중근 순국백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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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 추정지이다.
▲ 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 추정지이다.

2010년 3월 26일, EBS에서 방송된 <안중근 순국 백년-안의사의 유해를 찾아라!>가 한국프로듀서연합회가 시상하는 이달의 PD상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5월 초에 해외출장을 갈 <석유> 프로그램 회의를 하던 중 수상소식을 전해 들었다. 얼마 전 ‘안의사숭모회’에서도 감사패를 받기로 되어 있던 터인데 이런 수상이 이슈화되어 안 의사 유해발굴의 촉진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2008년 이미 1차 발굴에 나섰으나 실패로 끝났다. 이번에 찾아낸 새로운 유해 매장 추정지는 1차 발굴했던 지역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유력한 매장지로 거론되었던 지역이다. 그러나 2008년 발굴지에서 제외되었고 결국 순국 112년을 맞는 2010년에도 의사의 유해는 환국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2007년에도 뤼순 감옥(여순감옥박물관)을 찾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감옥 뒷산을 헤맸다. 그러나 그렇게 헤맨다고 찾아질 리는 만무하다. 나는 2009년부터 이 프로젝트의 협찬처를 찾았으나 쉽지 않았다. 다행히 순국 100년을 맞는 2010년에야 특집 편성이 되었다. 제작비는 최소한으로 책정되었지만 제작 자체가 다행일 뿐이다.

취재가 시작되었고 김영광 전 국회의원을 만나 그간의 유해 추적에 대해 듣던 중 안 의사 묘소 참배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1958년 중학생 때 아버지 따라 안 의사의 묘를 참배했던 귀화동포 이국성 씨이다. 그는 나를 설득할 만한 여러 증거물들을 제시했고 그와 뤼순을 다시 찾았다. 이국성 씨는 그동안 20여 차례 걸쳐 이곳을 방문하였다는데 현장에서 그의 증언은 확신에 차있었다.

그 말고도 이 지점을 안 의사의 묘소라고 지목한 이는 또 있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신현만 씨는 1943년에 이곳에 와 안 의사의 묘비를 보았던 사람이다. 그의 구술을 듣고 김영광 의원이 그린 지도도 남아있다. 나는 그 지도를 보물지도라고 부른다. 이 이상 가는 보물지도가 또 어디 있겠는가?

사람들은 나보고 안 의사의 후손이 아니냐고 묻는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 할아버지도 안 의사의 고향인 황해도 해주분이시다. 그러나 더 이상 추적은 안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계속 들어온 이야기가 오늘 나로 하여금 이 프로그램을 만들게 했다. 1990년, 안 의사 순국 80주기 때에도 안 의사 다큐멘터리 <대한국인 안중근>을 만들었었다. 2009년에도 어린이 모험극 <스파크>에서 30분 4부작으로 안 의사의 애국혼과 생애를 다루었다. 실로 지나친 관심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안 의사의 유해가 환국하기 전까지는 이 관심을 저버릴 수가 없다. 향후 만들어질 <안의사의 유해를 찾았다!>라는 프로그램도 내 손으로 꼭 만들고 싶은 심정이다.

아래 기사는 지난 3월 29일 PD저널에 실린 기사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을 앞두고 안 의사의 묘지터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의견이 분분했다. 워낙에 오래 된 불분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2008년 안 의사의 유해 발굴이 실패로 끝난 지금은 안 의사의 유해가 중국에 없을 수도 있다는 해괴한 이야기까지 떠돌고 있다. 그러나 이는 발굴 실패자들이 만들어낸 쓸데없는 이야기다.

나는 〈안중근 순국 백년〉에 소개될 그의 묘지가 있을 여순 지역을 취재하며 안 의사 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최서면 한국연구원장은 당시 여순감옥소장의 딸 이마이 후사코 여사가 증거물로 제시한 사진을 근거로 북위 38도 49분 3초, 동경 121도 15분 43초 지점에 유해가 묻혀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런 경위로 국가보훈처는 지난 2008년 3월부터 4월까지 29일간에 걸쳐 이 장소를 발굴하였으나 유골 발굴은 실패로 끝났다. 보훈처 관계자는 “수해 또는 자연적인 지형변화로 유골이 유실됐다”고 했다. 벽돌공장이 있어 훼손되지 않았나 하는 추측도 있지만, 처음부터 부정확한 지점을 찾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안 의사 매장지로 대두된 다른 의견은 김영광 의원의 추정지역으로 북위 38도 49분 27초, 동경 121도 16분 2초다.

이곳은 안 의사 묘지를 참배했다는 두 명의 증언자가 지목한 곳으로, 이들은 여순 감옥 동쪽으로 500m 지점을 안 의사 묘지로 꼽았다. 첫 증언자는 오카야마 소학교를 다닌 신현만 씨(1933년생으로 추정)로, 소학교 3학년 때인 1943년에 여순 203고지(일제의 전승지)로 수학여행을 가서 안 의사의 묘를 참배하고 묘비도 목격했다고 한다. 그 뒤에도 1944년과 1945년까지 참배를 했다고 한다. 그는 안 의사 묘 이야기를 그의 형으로부터 처음 들었다고 한다. 그는 삼단의 구조로 된 묘역 가운데 층 맨 우측에 묘가 있다고 증언했고 지금은 고인이 되었다.

두 번째 증언자 이국성 씨는 현재 1946년생의 조선족으로 14살 때인 1960년에 안 의사 묘소를 다녀왔고 그 뒤 60년대 말에도 재확인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목격담은 약 16년간의 시차가 있는데 두 사람의 증언 중 다른 점은 묘소가 맨 우측이라는 주장과 중앙 지점이라는 주장이다.

신현만 씨와 비교해서 16년 늦게 안 의사 묘소를 참배한 이국성 씨는 삼단 구조는 잘 모르고 있었고 김영광 의원의 설명을 듣고 알았다고 한다. “16년이라는 세월의 변화로 지형이 바뀔 수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도 든다. 혹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 방문한 시차 시간인 16년 세월에 안 의사 묘소 옆으로 새로운 묘가 더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중국 측 관계자인 여순일러감옥구지박물관의 반무충 주임도 그곳을 안 의사 묘지로 유력한 곳이라고 지목한다. 이 지역이 죄인묘역이라는 석탑이 세워져 있고 반 주임의 말로는 가장 오래된 묘역이라고 한다. 이렇듯 모든 증언자가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그 장소는 현재 아파트 공사 지역 바로 인근이다.

언제 어떻게 공사로 파헤쳐질지 모르는 일이다. 그들이 유골 수습에 관심이 없음은 확연한 일이다. 안 의사 매장지가 맞는다면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닌 셈이다. 보훈처로서도 확증 없이 다시 발굴 작업을 한다는 것은 외교상의 결례이기에 처음부터 확실한 자료를 다시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100년간 안보이던 자료를 지금 새로이 찾아야 한다는 것은 재발굴의 의지가 없다는 말과 같다.

요행을 기다리는 관계 당국의 처사도 그렇지만 아파트 공사를 강행하는 중국의 상황도 여유롭지는 않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상황에서 나로선 이 실마리라도 잡고 놓칠 수 없다. 확실히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프로그램이 안 의사의 유해를 찾을 수 있는 단초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다시 한 번 국민적 관심을 호소한다.”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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