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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국과수 중부분원 정낙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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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국과수 중부분원 정낙은 원장'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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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중부분원 정낙은 원장' 촬영 부검 현장에서
▲ '국과수 중부분원 정낙은 원장' 촬영 부검 현장에서

정낙은 원장은 <명의>의 출연자였다. 명의는 산사람에게만 필요한 분이 아니라 죽은 이에게도 필요한 분들이다. 사인을 밝혀주고 말 못하는 죽은 이의 모든 것을 알아내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가족들에게 신원 확인은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법의학은 다시 역설적으로 산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다.

그는 대형사고 현장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국내 신원 확인 분야의 체계를 확립하였다. 그는 1995년 국과수 법의관 활동이후 김해 항공기 추락 사고(2002), 대구 지하철 참사(2003), 동남아 쓰나미(2004), 캄보디아 항공기 추락 사고(2007), 이천 냉동창고 화재(2008) 등 대형 재난 현장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그리고 필리핀 납치 살인사건의 유해를 발굴해내기도 했다.

그는 “법의학은 죽은 사람을 다루지만, 산 사람을 위한 학문이기도 합니다. 죽은 한 사람의 곁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 때문이죠.”라고 말한다. <명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마지막 손길- 국과수 중부분원 정낙은 원장> 편은 무려 50분 50초이다. 길이만큼이나 많은 내용을 담고 있고 감동의 여운도 있다. ‘명의의 영역’을 확장하였다는 보람도 있지만 음지에서 일하는 그들의 활약상을 소개했다는 보람도 크다.

아마도 명의 프로그램 중에 이토록 치열한 삶을 다룬 적은 없었다. 시신을 부검한다는 것도 치열하지만 경산의 코발트 광산으로 경북 김천으로 또 의정부로 출장을 다니며 활동하는 그의 치열한 삶을 찍은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7개의 3D애니메이션 중 3개가 국과수에서 제공한 영상이다. 경산 코발트 광산, 인체 뼈 구조, 가든5 저격 현장 애니메이션은 모두 정 원장의 노력으로 만들어 낸 집념의 결과물이다.

법의관은 부검만 하는 해부학 전문의가 아닌 것이 이처럼 3차원 영상을 만들어 과학수사를 진두지휘하는 과학자이기도 하며 또한 부검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 현장수사를 하여 사건을 재구성하는 수사반장이기도 하다.

또 한두 시간에 걸친 부검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검 소견을 쓰는 감정서를 써야 하는 일이 있이 부검 후에 남아있다. 그들이 제출하는 부검감정서의 글자 하나라도 틀린다면 죽은 이는 물론이고 살아남은 이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것은 죄에 대한 것일 수도 있지만 돈 문제가 걸려있기도 하다. “자살이냐? 타살이냐?”에 따라 보험금이 왔다 갔다 하고 남은 이들이 살인범으로 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줄타기처럼 매우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런가 하면 일의 강도가 높은 이유가 국내에 법의관으로 부검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다. 매일 부검을 하다시피 하는 그들은 쉴 여유조차 없다. 매일같이 야근과 조근에 쉴 틈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법의관들은 매번 손님을 대하듯 시신을 만나게 된다. 그들을 손님으로 맞는 사명감이 없다면 고인들로서는 부검이 얼마나 참혹하겠는가? 그들이 남긴 유언을 듣는 심정이 될 수밖에 없기에 부검의 손길은 더욱 정성스럽기조차 하다.

고인이 가는 마지막 길에 손님 대접을 한다는 사명감으로 그들은 온갖 정성을 다한다. 그런가 하면 대형재난 현장에서의 그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나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 그리고 태국 쓰나미 사건 같은 대형 재난 현장에서 신원 확인을 해내는 그들의 노력이 없다면 시신들은 유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는 생각하기조차 두려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부검실은 사고사나 질환사, 자살사건, 살인사건까지 수많은 사연들을 갖고 있다. 그곳은 시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법의관들로부터 마지막으로 대접을 받는 곳이기도 하지만 죽어서는 가능하다면 가서는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살아서 병원에 갈 일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죽어서 부검대에 눕는 일만은 적극적으로 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운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 원장 같은 명의가 있어서 이곳에 들어온 시신들은 조금은 위로를 받을 것이고 어쩔 수 없는 대형재난을 맞았을 때 이 사회는 조금 더 사람 대접받는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방송이 나가고 국과수 부검실을 찾는 시신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끝으로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촬영에 도움을 주신 국과수 중부지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정낙은 원장은 내가 회장으로 있던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의 학술이사를 맡아 애써 주었고 국과수 대전분원장, 원주분원장을 거치고 2017년에 정년퇴임 후 성대 과학수사학과로 교수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법의학연구소를 시청 앞에 오픈하고 바쁜 일정을 보내던 중 2022년 1월 1일에 소천했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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