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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한국 다큐멘터리 명장 안태근 프로듀서의 시대정신”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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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한국 다큐멘터리 명장 안태근 프로듀서의 시대정신” ①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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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뉴욕에서 'G20' 특집 제작 촬영
▲ 2010년 뉴욕에서 'G20' 특집 제작 촬영

어느 때부터인가 내겐 자연스러운 수식어가 붙었다. 그것은 '다큐멘터리 명장'이라는 과분한 호칭이다. 처음 듣기엔 계면쩍기도 했지만 차츰 듣다보니 이젠 익숙해졌다. 1975년 나의 첫 다큐멘터리 <폭류>를 촬영하고 50여 년 가까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으니 과히 틀린 말도 아니다. 많이 만든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간 185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첫 작품인 <폭류>는 중앙대 2학년 워크숍영화인데 청계천 변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 이웃의 삶의 모습을 통해 우리네 인생을 논하고자 했으니 첫 작품치곤 주제가 거창했다. 그것은 우리 이웃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만들어낸 다큐였다.

그리고는 <한국의 춤> 등 시리즈를 통해 우리 문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기획 제작하였다. EB에 입사하여 <전통문화를 찾아서>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찾아내 제작하던 소재를 EBS라는 제작 시스템이 갖추어진 조직에서 제작비를 대어주고 월급까지 받아가며 제작하니 내 인생에서 최고로 신나던 때이다.

이 프로그램을 84편 제작했다. 5년이라는 긴 기간 제작되며 1995년 폐방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이 만들었을 것이다. 아쉬움에 <우리의 전통문화>라는 미니 다큐까지 포함하면 100여 편을 만들었다. 내 전체 다큐 목록 중에서 가장 많이 만든 다큐 시리즈이다.

그 후 <다큐 이사람>, <역사 속으로의 여행>, <이야기로 풀어보는 풍수기행>, 그리고 메디컬 다큐 <명의> 까지 185편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 편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중에는 특집 다큐멘터리도 상당수 포함됐다. 소의 해였던 1997년에는 설날 특집, 부처님 오신 날 특집, 추석 특집까지 도맡아 제작하기도 했다.

기억나는 대형 다큐로는 2004년에 만든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3부작, 2007년 만든 <청사초롱과 홍등> 5부작이 있다. 이 다큐들은 기획안 통과되어 거액을 지원받아 제작된 다큐이기도 하다. 2006년에 만든 <신상옥 감독 추모 다큐>, 그리고 지금 내가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 사업을 하게 했던 2010년에 만든 <안중근 순국 백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도 뺄 수 없는 다큐이다.

기획자로 참여한 <극한 직업>, <직업의 세계 일인자>, <글로벌 프로젝트 나눔>, <다큐 프라임>도 내 제작 목록엔 들어가지 않지만 내겐 의미 있던 작업이다. 나의 이런 기록을 유튜브 채널 ‘다큐 명장 안태근TV'에 올리고 향후 다큐PD로서의 행보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아래 글은 2013년 1월 8일 「뉴스피플」 잡지에 실렸던 고명진 문화부 기자의 글이다.

<나는 다큐멘터리 PD다>의 저자 안태근 프로듀서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뉴스피플이 들어본다. <전통문화를 찾아서>, <다큐 이사람>, <역사 속으로의 여행>, <풍수기행>, <명의> 등 178편이라는 한국 최다 다큐멘터리 연출기록을 가진 안태근 프로듀서의 대표작은 2004년 광복절 특집 3부작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과 2007년 한중수교 15주년 특집 5부작 <청사초롱과 홍등>이다. 그 외에도 다큐멘터리, 드라마, 애니메이션, 종합구성을 통틀어 1,100여 편의 각본 및 연출을 했다는 것이 더욱더 놀라울 뿐이다. 제작이 심플한 일반구성 프로그램 제작을 제외하면 한국 최다 연출기록일 것이다.

“방송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고 그 실현이다. 어제까지 책상위에서 잠자던 기획안도 내일 방송을 위해 오늘 준비해야 한다는 각오여야 한다”고 그는 그의 책 <나는 다큐멘터리 PD다>에서 밝힌 것처럼 그의 다큐멘터리 정신은 뚝심에서 비롯됐다.

“다큐멘터리의 기본 정신은 ‘사실 기록’에 있다. 또, 당대의 현실과 당대의 현안들에 충실해야한다. 따라서 비판적 시각을 겸비하는 것이 필수이고, 그렇지 않고서는 당대 사람들의 현실과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담아낼 수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다큐멘터리론에서 근거한 연장 활동이 아닌가 싶다.

안태근 프로듀서는 1991년 EBS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22년째 방송 프로듀서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방송 프로듀서이기 이전에 영화감독으로도 10여 년 동안 꾸준히 활동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1975년에 중앙대 예술대학 영화전공 학생으로 <폭류>라는 첫 워크숍 영화를 시작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여, 1980년 12월 제1회 부산단편영화제에서 제5공화국 정권을 풍자한 단편영화 <동춘>으로 금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83년 제9회 한국청소년영화제에서는 이산가족 만남을 소재로 한 <맥>으로 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그 외에도 각종영화제에서 작품상, 편집상, 특별상을 비롯해 10여 년 동안 약 20여 개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1981년도에 영화계에 입문하여 1986년도까지 5년간 임권택, 정진우 감독의 조감독으로 경험을 쌓았고 그 이후 5년 동안은 홍보영화를 20여 편을 만들었다. 데뷔작은 1986년 다큐멘터리영화 <살풀이춤>이며 시나리오 작가로는 1987년 <사방지>이다. 1990년 영화진흥공사에서 주관하는 금관상영화제에선 <귀항>이라는 작품으로 작품상, 감독상, 기획상, 조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또 방송사 입사 후에는 EBS 최우수작품상, 이달의 PD상 등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는 12살 소년시절 우연히 보았던 1967년 신상옥 감독의 <꿈>이라는 영화를 접하고 영화감독의 꿈을 꾸었다. 그때부터 인생의 목표를 영화감독에 두고 영화를 전공하고 영화감독으로 10여 년 활동하다가 어릴 때부터의 꿈 하나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작가, 영화감독, 방송 프로듀서로서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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