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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중국 촬영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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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중국 촬영 ④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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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 막고굴 인근의 명사산 월야천
▲ 돈황 막고굴 인근의 명사산 월야천

열사의 둔황지역을 한여름에 촬영하게 되었다. 둔황은 중국 간쑤성 서부 사막지대에 있다. 새벽 4시 반, 밤하늘에 별들이 무수한데 특히나 북두칠성은 떨어질 듯 가까워 보인다. 밤 사막길을 달려 호텔에서 간단히 샤워와 조식을 하고 답사에 나섰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명사산(밍샤샨)은 바람 불면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바람의 기류를 타 모래로 부터 보호되는 곳에 우리나라 경복궁의 향원정 같은 탑 건축물이 눈에 띈다. 예부터 있어온 절이라는데 사막 한가운데 “웬 절?”인가 싶다. 절 옆의 작은 호수는 반달의 형상을 하고 있어 ‘월아천’이다. 시대무협 한 장면을 찍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이곳에 어둠이 내리며 달까지 걸린다면 최고의 명장면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걱정되는 것은 막고굴의 촬영 가능성 여부이다. 막고굴은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굴이다. 섭외팀은 둔황이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확인을 확실하게 못했다는데 중국에서의 상황이란 예측이 불가하다. 이래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는 얘기가 나왔을까?

내가 들은 이야기는 중앙방송을 통해 공문을 띄운 상태라는 것이다. 내가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나 섭외팀의 노력을 신뢰한다. 대안으로 도록 확보나 중앙방송의 자료화면을 쓰자는 의견도 나왔다. 비싼 항공요금을 쓰며 장거리를 가는 상황에서 막고굴의 17호 내부촬영이 가능할지 스스로 믿음을 가져본다.

우선 시안에서는 삼사성 박물관에서 고구려 고분벽화와 같은 ‘예빈도’를 촬영하고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 장군 관련 기록을 찾아야 한다. 막고굴 촬영 후기이다. 촬영은 우여곡절 끝에 무산되었지만 방송은 잘 나갔다. 외경을 촬영하고 고화질의 사진집을 촬영하여 편집했는데 방송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엄청난 촬영료를 원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출장비 전액을 주어야 하는 고액이었다. 상상키 어려운 요구인데 이유는 한국의 KBS가 그렇게 주고 촬영하였기 때문이라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은 그들에게 돈 많은 부자나라로 인식되어 있었다.

다음은 2007년 당시의 기록이다. 중국에서의 촬영에는 돈 문제가 항상 개입된다. 아무리 작은 곳이라고 해도 항상 돈 요구가 있는데 갑자기 자본주의화 되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돈 밝힘 증세는 크거나 작거나 끊이질 않는다.

그 액수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인데 어제 만난 코디는 막고굴 촬영 시 한국의 방송사가 4만 위안을 지불하고 찍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참으로 돈도 많은 방송사이다. 아무렴 그냥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방송사가 그렇게 큰돈을 지불하며 촬영했는지는 사실여부를 확인해보고 싶다.

내가 읽은 돈황 관련 책 중 하나는 독일인 PD가 쓴 것인데 막고굴 촬영을 협의했더니 7만 위안의 촬영료를 제시해 촬영을 포기했다고 한다. 돈 버는 것에 대해서는 염치 볼 것 없는 중국인들의 숭금주의 사상인데 따라서 흥정의 성사여부에 관련 없이 턱하니 높은 금액을 책정해 놓은 것이다.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나 서울의 창덕궁, 경주의 불국사를 찍겠다는 방송사에 이런 고액의 사례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짧지 않은 25년간 촬영을 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사전에 설득력 있는 공문 한 장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선조들의 유물을 가지고 흥정을 하는 나라는 그리 흔치 않다. 물론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법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사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물론 문화재 보호를 위해 조명을 금하거나 맨손의 접촉을 금지할 수는 있다. 이러한 높은 촬영요금의 책정은 이유 없는 기준이다. 한마디로 찍지 말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안중근 의사의 유적지인 뤼순의 감옥이나 731부대의 만행현장인 전시장 역시도 접근금지 지역이거나 촬영불가 지역으로 묶여 있다. 오히려 홍보를 하며 촬영을 권장하여야 할 이들 유적지조차도 쉽게 허락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시안의 박물관에 걸린 ‘예빈도’는 모조품이다. 사전에 협조공문을 보냈건만 모조품조차도 촬영이 불가능한 것이다.

일본 도쿄 중심가에 자리한 평화박물관에서 촬영을 오히려 권장하며 최대의 협조를 아끼지 않는 것에 비해 너무도 상이한 경우이다. 만들어 놓고 홍보를 해야 할 경우에도 접근을 막는 이유를 물으니 방송되면 관람객이 안 온다는 답변이다. 중국에서의 이런 고액 촬영료는 결국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의 입장료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높다란 벽속에 갇혀있는 중국촬영에 근본적으로 회의를 갖게 한다. 이전에도 이러한 촬영 섭외요금 문제로 협상이 결렬된 바 있다. 50여 일의 촬영 섭외비로 팔만오천 위안을 요구한다. 한화 천백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고급문화재 섭외도 아닌 일상적인 일정의 섭외비로 받아들일 수 없는 높은 금액을 제시한 것이다.

베이징 중앙방송 촬영소(허베이성 스튜디오)에서 드라마타이즈 8꼭지의 사례 역시나 연출, 촬영을 본인들이 직접 한다며 7만 위안을 제시해 역시나 결렬되었다. 우리가 직접 찍거나 연출할 수 없다는 조건은 근본적으로 협상이 안 되는 상황이다. 하려면 직접 나서서 해봐라 식이다. 이 내용들은 중국에 들어와 이십여 일을 찍으며 겪은 일들이다. 앞으로 남은 일정에는 또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가 생길지 나도 궁금하다. 이렇게 쓴다고 해결 될 일은 아니지만 동료, 후배들을 위해 기록으로나마 남기고 싶다.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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