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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홍콩 촬영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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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홍콩 촬영 ①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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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심천 톨게이트와 홍콩 야경
▲ 중국 심천 톨게이트와 홍콩 야경

1950년대 홍콩을 간 한국영화인들은 선진화된 도시 홍콩의 모습에 놀랬다.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선진화된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촬영 시스템 및 스튜디오의 규모에도 놀랬지만 홍콩은 전혀 예상치 못하도록 발전된 나라였고 도시였다. 당시 일본도 그러했지만 홍콩은 확실히 서구화 된 도시였다. 영국의 식민지 통치는 150여 년에 이른다. 일본이 태평양전쟁 시기에 3년 여 지배했지만 전통적인 서구도시로 가꾸어졌다.

그래서 오래된 빌딩이 많고 새로운 건물이 조화를 이루며 홍콩의 스카이라인을 보여주고 있다. 홍콩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다. 그래서 세계 3대 미항에 들어가고 야경은 백만 불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월남전이 한창일 즈음 한국에 한 번에 올 수 없어서 중간 기착지인 홍콩에서 며칠 쉬며 오곤 했다는데 이 때 “홍콩 간다!!”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국제적인 환락도시의 명성에 걸맞은 유흥문화를 처음 접하며 그러한 말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홍콩은 영화를 통해 한국인에게 꿈의 도시로 다가왔다. 무협의 세계를 비장미로 승화시킨 홍콩 무협영화들은 1960년대부터 한국에서 항류(港流)현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이어졌다. 무협영화, 이소룡 영화, 성룡의 코믹액션영화, 주윤발의 홍콩느와르, 그리고 오우삼의 또 다른 영화들, 정소동 감독의 <천녀유혼> 등 홍콩영화의 흥행성적은 수입가 대비 늘 A+였고 그것은 한국에 홍콩영화인들 전성시대를 열었다. 죽은 장국영을 비롯하여 주윤발, 유덕화, 왕조현 등 그들은 한국 CF에 주요 출연자가 되었다.

이제 한물갔다고 하지만 아직 홍콩은 우리나라보다 소득수준도 높고 관광객 수도 다섯 배에 이른다. 객관적인 수치로도 경제대국, 문화대국, 관광대국이다. 한국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아직 모든 것이 불안하다. 한류현상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정치 상황도 위기 상황으로 비춰진다. TV 매체나 신문, 잡지 등 활자 매체 등으로 한국을 접하는 외국들이 보기에 한국은 복잡하고 불안정한 이미지다.

졸부는 어디 가서든 돈 자랑하고 잘난 체하는데 자기의 모습을 모르기에 큰 코 다치기 전까진 그 짓을 계속 하고 있다. 진짜 부자인 알부자가 그러거나 말거나 표정관리하며 비웃는 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그들이 머리 숙이며 존경할 수 있는 한국, 한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홍콩 여행을 다녀오며 다시 한번 느낀다.

<청사초롱과 홍등>의 마지막 촬영지가 홍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대륙에서 이곳으로 와야만 했다. 2007년 10월 2일(화) 아침 8시에 광저우에서 조계산 남화사로 출발했다. 한국 불교의 기둥인 조계종이 이곳 지명에서 유래했다. 북쪽으로 2시간 반을 달려 도착하니 사찰은 국경절을 맞아 사람들로 가득하다. 조계라는 지명은 높지는 않으나 산 아래 흐르는 계곡물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근처에 조계온천까지 있으니 과연 물이 좋은 곳일지도 모른다.

불교 전문가인 박운양 감독이 주지스님을 섭외하였으나 종교국 승인이 안 났기 때문에 다른 법사에게 이곳 절의 내력에 대해 들었다. 창건 1500년을 맞는다는 남화사는 한국조계종과 꾸준히 교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조계 계곡까지 확인은 못하고 먼 곳에서 산의 전경만을 촬영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사계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광뚱요리일 수는 없지만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들이다. 2시 반에 출발해 광저우를 거쳐 외곽도로를 타고 선전(심천)까지 달려오니 저녁 6시 반이다. 내일 중국 출국을 위해 지홍 프로덕션의 전 회장 일행이 먼저 와있었다.

중국으로의 촬영장비 반입도 힘들지만 반출 역시 힘들고 우리에게는 촬영 못지않은 중요한 작업이다. 그들이 그래서 온 것이다. 근 한 달 만에 만난 지홍 직원들은 건강한 모습들이다. 베이징에서 광저우까지는 2,750km로 특등열차로 23시간 걸렸다고 한다.

애초에 이곳까지 차 2대로 이동하며 찍기로 했었지만 한 달을 촬영 다닌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정이라는 것이었다. 비행기로 이동해도 긴 시간인데 차로 이동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인 일이다. 어쨌든 지홍의 전 회장이 준비해온 백두산 송이버섯으로 회식을 하였다.

아침부터 장비반출을 위해 심천의 해관(세관)에서 대기를 하였다. 어제부터 전회장과 베이징에서 같이 온 문화부 장 선생이 미리 작업을 하였다지만 오랜 시간을 기다려 11시에야 세관을 무사히 통과하였다. 우리는 그 작업과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기동력을 요하는 촬영에 큰 카메라를 들고 중국을 찾는 일은 무리이다. 너무도 힘들고 특히 올해 7월 1일 부터는 장비 반입이 더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

7백 위안을 주고 렌트한 차로 12시에야 홍콩으로 넘어왔다. 침사추이에 숙박지를 정하고 마카오로 출발했다. 배로 1시간 거리인데 3시 반 배로 들어가 현지 봉고차를 렌트해 옛 성당을 찍었다. 비둘기집 공원의 김대건 신부 동상을 찾아가니 해가 저물었다. 몇 번을 겪는 일이지만 찾아가면 해가 져 못 찍은 사례를 또 겪는다.

카지노의 화려한 야경을 찍고 홍콩으로 돌아왔다. 식사를 마치고 밤에 야시장을 돌아보다. 싸구려 물건들과 짝퉁 상품을 파는 침사추이 야시장은 예전 같은 흥취는 덜하다. 결국 홍콩도 중국화 되며 본래의 색을 잃어가는 듯해 씁쓸하기만 할 뿐이다.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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