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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청사초롱과 홍등' 촬영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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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청사초롱과 홍등' 촬영을 마치고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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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다큐멘터리 '청사초롱과 홍등' 촬영(왼쪽)과 쫑파티(오른쪽)
▲ 특집 다큐멘터리 '청사초롱과 홍등' 촬영(왼쪽)과 쫑파티(오른쪽)

2007년 한 해를 중국에서 보내며 결국 <청사초롱과 홍등> 5부작을 완성했다. 4월에 개인적으로 답사를 다녀왔고 5월 29일 국제 공동제작 워크숍이 있었다. 베이징을 오가며 회의가 있었고 8월 1일 중국 출장을 떠나 중국 전역을 돌며 10월 6일 귀국하는 67일간의 대장정이었다.

베이징으로 입국하여 홍콩에서 출국하는 67일의 촬영 일정은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방불케 하는 불가능에 도전이었고 그 일을 완수했다는데 나름 의미가 있었다. 쫑파티는 협력제작사인 지홍의 전 회장이 베풀어주었다. 생각했던 일정을 소화하고 무엇보다도 안전하게 귀국하게 된 것을 모두가 자축했다.

항공기로 베이징에서 인천공항까지는 570마일로 1시간 20분 걸린다. 인천에서 출발하여 갈 때는 좀 더 걸려 1시간 40분이라는데 12시 반 비행기로 출발해 서울 집에 도착하니 저녁 6시이다. 어쨌든 하루 종일 걸려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연말까지 50분 4부작 외에 50분 축약본을 한 편 더 만들어 방송하면 이번 프로젝트는 끝이 난다.

나는 편집실에 칩거하며 중국 측에 넘겨 줄 30분 10부작의 편집에 몰두했고 기적처럼 10월 30일 베이징 행 비행기를 탔다. 사전 심의를 받아 올해 내에 방송하기 위한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 중국 측에 원고를 전달하고 음악까지 넣은 완성본을 만들었다. 30분 8부작을 만들기까지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난산이었지만 정해진 일정 따라 이상 없이 진행되었다. 그렇게 해야 중국 측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완성고를 쓰고 조연출 및 서브작가들은 수시로 편집실을 드나들며 모두가 초긴장이었다. 특히 홍콩에서의 인터뷰는 광뚱어라서 번역가 찾기가 힘들어 영어, 중국 표준어하는 이들이 모여 합작으로 번역문을 만들었다. 동원된 알바생들은 십여 명에 이른다.

베이징에 도착하여 쉐라톤 호텔에서 CTV의 유 주임을 만나 완성된 HD테입을 전달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5월 29일부터 5개월이 지난 30분짜리 8편을 순산한 것이다. 좀 진통이 심했지만 오삭둥이를 순산했다. 그동안 많은 말들이 오가고 일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일을 마쳤다. 한국에서 최초로 중국과 다큐 프로그램 합작을 해낸 날이다.

말들은 서로 무성했지만 결국 우리가 최초로 해냈다. 67일간 3만km의 대장정 끝에 해낸 것이다. 처음 목표가 무사고 귀환이었는데 1차 목표도 이루고 프로그램까지 일정 내에 나온 것이다.

합작으로 기획되어 촬영하며 가장 큰 문제는 촬영기간 중에 섭외문제였다. 중국 측의 문화재 및 기업들의 섭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한국기업 위주로 섭외가 되어 우리 측의 시각으로 제작되었다. 인터뷰도 역사나 외교 등의 신중한 사안들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한국 측의 시각으로 제작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내가 중국 측에 납품한 내용 중에 부족한 부분은 중국 측이 보완할 것이라고 한다. 보완된 내용을 제공받아 내가 50분짜리 최종본을 다시 만드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상호간의 표현방식의 차이로 필요 없는 오해나 갈등이 많았으나 잘 마무리 된 셈이다.

가장 힘든 점은 역시 67일간의 출장기간 중의 3만km라는 이동거리이다. 매일 서울과 부산 간을 이동하는 거리인데 한 지역에서 며칠을 찍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동하는 날은 더 먼 거리를 달려야 했다. 한 여름에 사막지대를 찾아갔고 불볕더위 속에서 대륙을 누볐으니 스태프들의 고생은 더했다.

대륙의 한복판에서 타 방송사도 이런 고생에 못지않은 역작을 내기도 했지만 역시 3만km라는 장거리 이동은 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다. 처음 차로 전 일정을 소화하려던 계획은 역시 무모한 계획이었다. 우리가 짠 계획도 아닌 중국의 협력사에서 잡은 계획이었다. 중국에서 사는 이들도 미처 모른 무모한 계획이었던 것이다.

장거리 이동은 가능하지만 장기간 출장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계획이다. 그나마 촬영초기에 시안 등의 장거리 이동을 했길래 망정이지 한 달 넘어서 부터는 적은 이동거리라도 강행군의 연속이었다.(중국에서의 적은 이동거리라 함은 최소한 300km 정도이다.) 하루 너댓 시간의 이동은 계속되었는데 도로공사와 차량 체증으로 차속에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준비해간 비디오의 감상도 약이 될 수가 없었다.

결국 칭다오에서 상하이, 상하이에서 광저우까지 항공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려했던 것보다는 사고도 없었고 이런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된 것이다. 그나마 어려울 때마다 귀인들이 나타나 일이 풀려져 나갔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고 안 풀리거나 속상한 일들이 더 많았지만 해외 촬영은 마음을 비우고 최소한의 성과만 거두어도 의미가 있다.

특히나 체제가 다른 국가에서 사고 없이 안전하게 일정을 마친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런 일들을 가능케 한 것은 파트너를 잘 만나서 이기도 하고 스태프들의 노고이기도 하다. 스태프들이 숙소로 돌아와 하루를 마감할 때 나는 국내의 작가들에게 이 기록을 전하기 위해 매일같이 컴퓨터와 마주했다.

한글자판도 없어 힘든 작업이었지만 그래도 5부작을 완성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힘든 줄을 몰랐다. 귀국길에 “올 한 해에 마실 술을 다 마셨다.”는 조명감독의 인사를 들으며 술꾼을 남편으로 둔 아내의 심정도 실감했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기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다음 제작진에게 읽혀지길 바라며 글을 마감한다.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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