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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EBS 다큐멘터리-'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270일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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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EBS 다큐멘터리-'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270일간의 기록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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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엄청난 소재를 만났다.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3부작이다.
▲ EBS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엄청난 소재를 만났다.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3부작이다.

내게 해외촬영하면 떠오르는 다큐가 2004년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내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일제강점기 해외로 나간 사람들의 총수는 몇 명이나 될까? 제국주의 치하 전쟁의 광기 속에 그들을 따라 일본군으로 징병되어 나가고 군속노무자로, 또 그들에게로 끌려간 위안부들, 또 광산에서, 공장에서, 댐 공사장에서 죽어간 사람들까지 총 500만 명으로 추정되는 많은 한국인들이 어디로 어떻게 끌려갔고, 어떻게 희생되었고, 어떻게 살아 돌아왔을까?”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들의 궤적을 추적해보는 총 160분 3부작이다. 나의 촬영은 한국 외 7개국에서 있었고 관련하여 270일간의 기록을 남겼다.

시작은 2003년 12월 24일(수)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기사를 들고 국민대학교 역사학과 장석흥 교수를 만났다. 일제강점기 해외로 나간 한인들에 관련해 첫 연구가 시작돼 귀환문제 관련 세미나가 열렸다는 기사이다. 500만 명이 해외로 나갔고 그중 귀환자는 250만 명이란다. 믿기지 않는 숫자이다.

2004년 1월 11일(일) 전OO 작가와 장 교수를 찾아 각종 자료와 책을 받았다. 국민대 한국학 연구소 해외한인귀환사연구팀 1년의 성과물들이다. 1월 25일(일)에 초고 구성안이 나왔다. 그야말로 틀만 잡았다. 가제를 광복절 특집 <일제강점기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로 잡았다. 일본교과서는 가해자로서 책임 회피에 급급해 강제연행을 왜곡하고, 중국은 지도자의 생각에 따라 변화하는 역사관이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서는 동아시아 3국 전체의 역사관을 바로 짚어야 왜곡을 피할 수 있다.

2월 19일(목)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혜경 박사의 검토 의견을 받았다. 각 방송사가 일찍이 기획하였고 혹은 촬영까지 했다가 (연구 미비로) 중단되었던 아이템이란다. 2월 22일(일) 40여일의 산고 끝에 50분 3부작의 구성안을 만들어 장 교수를 만났다. 오후 2시부터 7시까지의 토론을 겸한 마라톤 회의. 구성안은 지적거리가 많았고 읽어야 할 책, 논문은 아직도 산재해 있다. 전 작가의 얼굴이 심상치 않더니... 급기야 이쯤에서 손을 떼고 싶단다. 끝인 줄 알았더니 이제 시작이라네.

3월 19일(금) 새로 일하기로 한 전진환 작가와 수정 구성안을 갖고 장 교수를 만났다. 3월 22일(월)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의 첫 촬영날이다. 국민대 사학과에서 장석흥 교수와 중국의 유학생 손염홍 양의 도움을 받아 중국의 당안관 자료를 찍다. 이 자료들은 베이징 당안관의 한국인 관련 자료인데 일제강점기 이후 중국에 있었던 한국인에 관련된 기록이다. 오늘 촬영 중 가장 인상적인 자료는 한인동지 대표인 조득환과 박수기가 기성 한인단체에 보내는 귀국독촉 결의문이다. 얼마나 귀국을 갈망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문의 편지이다.

3월 23일(화) 국내출장을 떠나 독립기념관에서 연구원 김도형 박사의 안내로 일제강점기 당시의 문서, 사진 등의 자료들을 촬영했다. 신용하 교수를 만나 즉석 인터뷰를 하였다. 우리들의 망각과 스스로에 대한 따끔한 경고의 일성을 들었다. 광복 전 조선총독부는 항복직전 강제연행 및 모든 정책에 관련된 문서를 몇 날 며칠을 두고 소각했다고 한다. 예하 면사무소에 이르기까지 문서를 모두 소각했다고 하지만 하늘을 손으로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당시 군산중학교 학생의 학적부를 보니 거기에 강제동원 된 시간이 몇 날 며칠부터 언제까지 있었는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3월 24일(수) 어제에 이어 계속 자료를 촬영했다. 촬영이 끝날 즈음 김도형 박사가 웬 노인을 대동하고 왔다. 남태평양 라바울 섬에 징병되어 갔던 분인데 본인도 처음 만나는 라바울 출신의 군인이란다. 노인과 함께 그의 집이 있는 아산으로 와서 인터뷰 및 당시의 사진을 촬영했다.

3월 25일(목) 정부자료보존소에서 일제 당시의 지적원도 등을 촬영했다. 한국을 강점한 일제가 토지를 신고하게 해 미신고 토지를 강제 수탈한 토지대장이다. 일제가 패전 직전에 행한 증거 말살에서 남아있는 기록들이다. 3월 26일(금) 국민대에서 귀환문제 세미나가 열렸다. 주제는 ‘해방 후 중국지역 한인의 귀환문제 연구’이다.

4월 1일(목) 한국외대에 방문교수로 와있는 김게르만 교수에게서 러시아 한인 이주사를 인터뷰했다. 오후에 해방 후 월남 피난민 수용소인 인천 송현동의 대주중공업 근처에서 시베리아에 끌려갔던 강제징병자들의 모임인 ‘시베리아 삭풍회’ 이병주 회장을 인터뷰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연구가 채 끝나지 않았다는 부담이 큰 아이템이다. 일제강점기의 해외이주자가 500만 명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숫자 파악이 안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박창순 제작본부장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나로선 고석만 사장이 취임하며 제작본부의 4CP(총괄)를 맡아 관리자로서 다시 자리한 상태에서 장기 제작은 무리일 수도 있었다.

당시 이 아이템도 매력적이었지만 사실은 제작에 대한 매력이 더했다. 나는 작가들과 회의를 거듭하며 기획안을 수정했고 곧 있을 해외 촬영을 준비하였다. 이 기획안은 방송문화진흥회의 기획안 공모에 지원해 훗날 수상을 하여 3부작 제작비로 1억5천만 원을 지원받게 된다. 백만 원 단위의 프로그램 제작하던 나로서는 실로 엄청난 제작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만큼 대작이며 거대한 기획이었다. 우리는 곧 해외촬영 계획을 수립했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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