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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270일간의 기록- 일본 촬영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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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270일간의 기록- 일본 촬영 ①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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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과 한인 소녀의 사진은 묘한 분위기이다. 이 사진을 일본에서 입수하였다.
▲ 일본군과 한인 소녀의 사진은 묘한 분위기이다. 이 사진을 일본에서 입수하였다.

5월 5일(수) 전후 최대의 귀환항인 하카다 항에 도착, 귀환기념비를 찍다. 한글로 된 안내문까지 있다. 감사한다며 기념식수한 사람들은 진위파악이 힘든 정체불명의 이름들이다. 오후에 1천237명 규슈탄광 징용자들의 귀환항인 우스노우라 포구까지 세 시간 걸려 왔는데, 주민들의 조선인에 대한 기억은 없고 반응도 별로이다.

포구는 개발이 안된 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백엔샵에서 산 일본군가를 들어보니 일렬로 서서 행진하는 일본군이 눈에 선하다. 그 속에 한인 병사까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7만여 명이 귀환한 사세보 군항의 여객선 터미널에서 왔다. 배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종전 후 타지에서 입국하는 귀환자 모습을 상상해 본다. 7만 여 명 중에는 군속 귀환자가 많았다.

2시간 반을 소요,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오늘 숙박할 ‘바다의 건강촌’이라는 리조트는 1시간을 더 가서 노모자키의 하시마 (군함도)라는 섬 앞에 자리했다. 5월 6일(목)에는 한인들이 징용되어 온 지하 탄광이 있었던 군함도를 촬영했다. 나가사키는 외세 문물을 최초로 받아들인 항구다. 미쓰비시 조선소가 아직도 있고, 평화공원은 원폭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조성됐는데 각국에서 협찬 받은 비석들로 채워져 있다.

한국인 추모비는 기념관 옆 한구석에 숨겨진 듯 초라하게 숨어있다. 일제 당시 일본 거주 한인이 236만5263명이란 글이 쓰여있다. 근거는 내무성 경무국 발표이다. 그러나 아직 경찰자료는 비공개이다. 제1호 국립공원이라는 운젠산을 넘어 시마바라에 도착했다. 시간을 벌기 위해 한 시간 배를 타고 아라호를 건너 후쿠오카의 오무타시 미이께로 왔다.

원복선사(엔부꾸지)는 한인 유골이 보관되었다는 절이라 찾아놨는데 아쉽게도 15년 전에 유골은 환국되어 지금은 없다는 주지의 말이다. 일본의 사찰은 우리와는 달리 민가 동네에 있다. 우리를 본 앞집 할머니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사진 한 장을 갖고 나온다. 조선인 소녀를 안고 있는 일본군인의 사진이었다. 한국인 사진이니까 찾아 전달해주라고 했다.

군인인 듯한 사람과 조선아이의 표정이 시선을 끈다.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은 듯 긴장한 소녀는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반면에 남자는 소녀와의 인연을 간직하려는 따스한 표정이다. 구도 때문인지 소녀는 남자의 무릎위에 앉아있다. 사진 뒷면엔 소화 17년(1942년) 7월 19일 조선 함경남도 연포, 본인 이름, 반도의 아이와 함께 라고 적혀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다. 소녀는 당시 살아있다면 7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무슨 관계로 이 사진을 찍었을까? 단순히 점령지의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 같지는 않다. 오누이는 아니지만 오누이 같이 보이는 사진이 더욱 궁금해진다. 이 당시의 사진 포즈는 다 이랬을까? 내게 사진을 건네준 일본인 아주머니는 자신의 오빠 사진첩에서 발견한 것으로 자신의 오빠는 아니며 아마도 친구이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 사진을 사진속의 소녀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이었는데 당시나 지금이나 달리 방법이 없다.

나로서는 사진의 의미가 무얼까 싶었다. “반도의 어린이와 함께...” 다양한 뉘앙스를 풍기는 이 사진의 정체는 무얼까? 상징적인 이미지의 이 사진에선 당시 내선일체의 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토리스코라는 군인이 반도의 꼬마와 같이 찍은 사진, 일본인의 특성 때문인가... 사진을 건네주는 할머니는 할 듯 말 듯 뭔가 얘기를 감추는데, 사진의 사연을 진짜 모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군인나간 오빠가 친구에게서 받은 사진일까? 어쨌든 희귀한 사진이다.

한 시간을 달려 드라이버 가또 씨의 집에 여장을 풀었다. 오늘만 210km, 이틀간 500km를 달렸다. 5월 7일(금) 후쿠오카의 민노우라 탄광을 거쳐 재일사학자 김광렬 씨의 안내로 당시 친일파 조선인이 세운 송덕비, 미쓰비시 탄광 사무소 터, 쇼렌지, 야마진자, 아소 시멘트탄광, 합숙소 터를 촬영했다. 점심은 차속에서 해결. 김광렬 씨도 Key를 갖고 있는 미타테 묘지. 그 한 켠에 방치된 유골 14구와 위패 36기를 촬영했다.

이 유골들은 왜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기에 계속 있어야 하나. 그나마 유실이 안되어 천애고혼이 안된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할까. 김광렬 선생은 1927년 대구생이다. 1943년도에 우연히 후쿠오카 치쿠호우 지역의 징용한인에 대해 관심을 갖고 40여 년간 (1969년~현재)을 연구, 수집 중이다. 한국과 일본 양쪽에 모두 따돌림 당하는 고혼들의 억울함이 그로 하여금 오늘에까지 이르게 했다.

일본에서 오랜 세월 살았음에도 한국, 일본 그 어느 곳도 살 수 없다는 그이다. 일본인을 잊지 않고 한국을 OO들의 세상이라고 저주하는 그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 취재진과 동행한 그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기록을 남기는데 열정적이다. 78세의 나이를 잊게 하는 모습이다. 취재진의 시간적 조급함을 탓하면서도 최선을 다해주는 그의 모습은 아름다운 청년 김광렬의 모습이다. 그에게서 자료를 빌려 후쿠마 해변의 여관에서 계속 촬영했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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