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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고 정태원 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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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고 정태원 학우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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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석동 교정에서 나(왼쪽)와 정태원 학우(오른쪽)
▲ 흑석동 교정에서 나(왼쪽)와 정태원 학우(오른쪽)

2011년 6월 11일 친구 정태원의 부음 소식을 후배로부터 들었다. 그와 나는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동기로 단짝 친구였다. 대학시절 내내 영화를 토론하고 함께 극장가고, 점심도 함께, 휴학도 같이해 군대에 갔으며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했다. 그가 2005년에 중앙대 병원에서 후두암으로 입원은 하였으나 수술은 안 받았고 정신력으로 버티며 긴 투병 생활을 했다.

나의 글에 그의 이름이 자주 나오기에 소개한다. 학생감독 정군이 바로 그이고 서울AMG의 동료이기도 했다. 고인은 휘문고를 나왔고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였다. 그런데 재학시절 내내 극단 자유극장에서 김정옥 교수의 조연출을 하였다. 졸업 후 계원예고에서 교편을 잡았고 얼마 후 광고회사 오리콤에 입사하였다. 이 때 도윤주 선배, 최정일 후배와 함께 근무하였다.

그는 1980년대 중반 오리콤을 퇴사하고 자신의 광고영화사를 방배동에 차렸다. 나도 이 회사의 <계몽사>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그리고 평소부터 관심이 많았던 추리소설 잡지사를 창간하여 월간 「미스테리」를 발행한다. 나도 구독하였지만 한국 최초의 본격추리잡지를 표방하며 몇 해 동안 발행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잘 안 맞는 장르가 추리소설인 듯하다. 결국 폐간되었고 추리소설 번역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추리소설 소장가이며 번역가였다.

그가 기(氣) 치료를 배운 건 운동을 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합기도를 수련했는데 목포 도사를 만나 기 치료를 배우고 그도 기 치료사로 활동한다. 그러던 중 후두암이 발병하였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잘 투병하여왔다. 그의 사부 목포도사 따라 목포와 함평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몄으나 오늘 갑자기 그의 부음에 접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 중앙대 3학년 시절, 임철순 총장님(왼쪽 네번째)과 함께 찍은 사진.
▲ 중앙대 3학년 시절, 임철순 총장님(왼쪽 네번째)과 함께 찍은 사진.

마지막 까지도 번역 원고작업을 했던 그는 엄청난 정신력으로 고통을 감내하며 가족들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동문회의 부회장으로서도 봉사하였고 산악회에도 참여하여 많은 추억을 남기고 갔다.

나로선 고인과 함께 단편영화를 찍는다고 잠실이며 한강변, 태능 푸른공원을 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재주 많고 어학에 뛰어나 일본어를 독학으로 익혔다는 그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나와는 재학시절 무술영화연구회 활동도 함께 하였고 영화서적을 사러 청계천이며 서대문 고서방을 순례하기도 했었다. 청계천에서 「키네마 쥰보」 수십 권을 함께 사서 나누었던 기억도 난다.

그의 부친은 영화미술가 정우택 감독이다. 주로 신필름 영화에 많이 참여했는데 안양스튜디오 옆의 관사에 살았다. 그의 집에서 홍콩잡지 「영화정보」를 얻었는데 부친은 그 잡지에 실린 홍콩영화 세트 등을 참고하여 세트 구상을 하였던 것 같다.

이렇듯 부친의 영향으로 영화에 일찍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외에도 문학, 사진, 음악에 전문가였던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내겐 큰 슬픔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두 남매도 모교의 중앙대 동문이며 찬영 군은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이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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