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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한국무용가 이경화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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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한국무용가 이경화 ②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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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화
▲ 이경화

이경화 교수는 사단법인 오연문화예술원(전 우리춤예술원)이사장을 맡고 있고 중국 베이징의 중앙민족대와 방위과기대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바쁘게 지내는 그녀는 2006년 대전에서 열린 '제11회 한밭국악전국대회'에서 소고춤 작품으로 대통령상을 받아 최고의 무용인으로 꼽혔다. 또한 사단법인 박병천류 진도북춤보존회 이사장으로 13년 재임하면서 진도북춤을 전승 보존하는 역할과 보급 홍보에 힘쓰고 있다.

이 교수는 나와 같은 세대로서 같은 시대를 살았고 나의 프로그램 <한국의 춤 살풀이>에 출연한 것이 37년 전이다. 이경화 교수와 <한국의 춤 살풀이>을 찍으러 10월에 설악산을 갔었다. <한국의 춤 살풀이>은 영상미를 보여주어야 했고 왠지 살풀이춤은 대청봉에서 찍어야 그림이 완성된다고 생각되었다. 그것은 살풀이춤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배가시키기 위한 장치일수도 있었다.

오색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이 최단 거리이기는 하지만 너무 가파른 등산로이기에 우리는 한계령에서 대청으로 오르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이 코스 역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서 일찍 출발해 1시경부터 등산을 시작했는데 다섯 시간 정도 걸려 중청산장을 100m 앞두고 탈진했다. 빤히 산장의 불빛이 보이는데 모두 움직이질 못했다. 죽음의 공포까지 느꼈다고 한다.

나 혼자 사력을 다해 올라가 산장지기를 불러 구조를 받았다. 다음 날부터 멀리 공룡능선을 배경으로 살풀이춤 사위를 담았다. 등산객들은 “헬기타고 올라왔냐?”며 놀라 쳐다보곤 했다. 그러나 너무 센바람으로 춤사위가 제대로 살지 못했다. 이틀을 자고서야 겨우 춤사위를 찍을 수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비구니 스님이 있어 명장면이 연출되었다.

후에 이 교수는 제자를 내게 소개시켜주었는데 그 제자가 현재 나의 아내이다. 이 교수를 그 후에도 자주 만났는데 여전히 바쁘고 또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젊음의 비결, 그것은 열심히 사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서울 약수동에서 태어나 문화촌에서 오래 살았다. 인왕초등학교를 다니기 전부터 무용을 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무용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달랐다. 귀한 집 자식이 남들 앞에서 춤을 춘다는 것은 부모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결국 그녀의 남다른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부친의 권유로 시작한 그림실력도 출중해 전국중학생미술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중학교 때 드라마센터에서 열린 무용 콩쿨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녀에게 이제 무용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고 수줍음 타던 소녀는 혼자 서울예고의 최현 선생을 찾아간다. 이제 부모도 더 이상 방관자일 수 없었다. 이후 서울예고의 최현 선생은 이 교수의 춤 스승이자 함께 무대에 선 동반자였다.

서울예고 시절 만난 또 한 분의 스승이 김매자 교수이다. 그녀의 영향으로 이화여대 무용과에 입학했다. 교육대학원을 졸업 후 국립무용단에 입단하고서도 김백봉 교수에게 부채춤과 산조춤을 사사했다. 그녀의 춤 공부는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명인열전이라 할 수 있다. 송범 교수에게 창작무, 김천흥 명인에게서 무산향, 그리고 한영숙 명인에게 살풀이춤, 김수악 명인에게 진주검무, 또 박병천 명인에게 진도북춤, 김병섭 명인에게 설장고, 이매방 명인에게서 승무와 살풀이춤을 사사 받았다.

특히 한영숙 명인에게 살풀이춤을 배운 것은 나의 영화 <살풀이춤>에서 제자로 출연하게 된 인연이다. 살풀이춤을 소재로 다큐를 찍으며 최고의 명인들을 내가 따로이 섭외하며 벌어진 상황이었다. 실제 제자가 아닌 사람과 출연을 못하겠다고 하던 한명인은 결국 같이 출연을 하게 되었고 이 교수는 촬영 후 한 명인의 제자가 되었다.

이대 졸업 후 1979년 제1회 전국신인무용콩쿠르 금상을 수상하는데 그녀의 첫 직장은 국립무용단이었다. 3년을 작정하고 입단한 그녀는 계획대로 3년 후 퇴직하고 대학 강사생활을 시작한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 석사를 마친 그녀는 부산대, 부산여대, 국민대, 한양대 등 대여섯 개 대학에 출강하던 그녀는 계원예고에 자리를 잡고 무용부장으로 25년 간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한다.

그녀는 1986년 아시안게임의 개막식 안무를 맡았고 1988년 서울올림픽 폐막식 행사에서 최연소 안무가로 참가했으며 폐막식에서 열린 공연 ‘등불의 안녕’을 안무했다. 1996년에는 명지대학교 대학원 박사 학위를 받는 한편 꾸준히 자신의 무대를 만들어 공연한다.

그녀는 한국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과 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이수자로 지정되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행사에서는 ‘누리북’의 안무와 지도를 맡았다. 2005년에는 계원예고를 퇴직하고 중국으로 진출하여 우리 춤을 전수하고 있다. 그녀의 이런 춤 공부는 그녀의 우리춤에 대한 열정에서 출발했다. 우리 춤의 세계화를 위한 그녀의 열정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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