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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장형일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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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장형일 PD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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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9월, EBS를 방문한 장형일 PD(왼쪽)와 필자
▲ 2012년 9월, EBS를 방문한 장형일 PD(왼쪽)와 필자

장형일 PD는 1938년 7월 17일 충북 괴산생이다. 부친은 장덕신이며 전쟁 전 진남포에서 월남하여 괴산에 정착하였다. 그는 영화를 꿈꾸며 고등학교 시절 장편소설을 집필하였고 1959년 조정호 감독의 <전후파>로 영화계 입문하여 12년간에 걸쳐 조감독 활동을 했다.

이때 모셨던 감독들이 <두고온 산하>의 이강천, <열녀문>, <로맨스 그레이>의 신상옥, <보은의 구름다리>의 최경옥, <황금벌판의 결투>의 김용덕, <착하고 아름답게>의 임원식이다. 비교적 길게 조감독 생활을 한 것인데 당시로서는 보통 10년 이상의 조감독 생활을 할 때이다.

그는 1971년에 <검은 장갑을 껴라>의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 데뷔작을 촬영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촬영 중에 제작 중단된다. 당시로는 흔한 일이었는데 이런 우여곡절을 겪다가 1971년 KBS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무협드라마 <삼각산> 등의 조연출을 거쳐 1973년 4월에 방송된 KBS무대 <귀환>으로 비로소 PD로 데뷔했다.

50분 드라마인데 대학교수가 참전을 기피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껴 아내에게 고백 후 참전한다는 휴먼 드라마였다. 이후 죄수들의 인간군상을 그린 <무명>을 만든 후 어린이 인형극 <플란다스의 개>, <집 없는 천사>를 연출 후 국무총리의 지시로 <전우>를 제작한다.

그는 한국방송 드라마에서 한 획을 그었는데 야외촬영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것이다. 종래 연극스타일의 드라마를 영화적으로 진일보 시킨 것이다. 그가 김홍종 PD와 함께 만든 <전우>는 당시 큰 인기를 끌었고 한국방송에서 로케이션을 시도하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TV문학관>은 올 로케이션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었는데 단막극 붐을 일으켜 영화 같은 영상미학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그가 가장 재미있게 연출자로서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등신불>은 해외에서도 수상하는 명품드라마였다.

악전고투 끝에 김홍종 PD와 번갈아가며 제작 후 역사인물드라마인 <맥>을 백여 편 연출 후 백분 드라마인 <꽃구름 속에>, 3시간 드라마 <얼어붙은 바다> 미니시리즈 <서울의 지붕 밑>, <TV문학관> 시리즈, 그리고 <개국>, <고향을 어찌 잊으리까?>, <교토 25시>, <청춘극장>를 연출했다.

▲ 장형일 PD(가운데)와 그의 대표작인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의 역할을 한 배우 안재모(왼쪽)와 김영철(오른쪽)
▲ 장형일 PD(가운데)와 그의 대표작인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의 역할을 한 배우 안재모(왼쪽)와 김영철(오른쪽)

그리고 SBS로 이직하여 <국화와 칼>, <안중근>, <형제의 강>, <덕이>, <야인시대>, <장길산>, <북만주의 칼을 가는 사람>, 그리고 2012년 채널A에서 <불후의 명작>을 연출하였다. 한국 드라마 초창기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장인정신으로 버티며 굵직한 드라마를 제작한 그는 변해버린 제작환경에도 불구하고 2012년까지도 현장을 지킨 최고령 PD다. 2001년 제37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에서는 SBS의 <덕이>로 연출상을 수상했다.

방송 PD로 입지전적인 그는 타고난 드라마 PD로 끝없는 열정과 노력으로 늦게까지 현역에서 활동하였다. 그를 만나 많은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정말 특별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연출한 드라마 대본 및 스틸을 온전히 보관하고 있었고 수많은 DVD를 수집하고 심지어는 주말의 명화를 모두 녹화해두고 있었다.

나도 만만치 않은 수집광인데 그는 나를 능가한다. TV로 나가는 영화 녹화는 물론 신작이 나오면 단골가게에서 연락이 온단다. 나에게 수집 기록장을 보여주었는데 아마도 한국 최다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량이다. 제작에 있어서도 분명한 나의 롤 모델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관심사도 비슷하고 자연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다루었던 드라마는 내가 즐겨보았던 드라마였고 내게는 좋은 교재였다.

그의 활동상을 EBS <직업의 세계 일인자>에서 소개했다.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애로사항이 전혀 없었다. 자신의 지료들을 모두 소장하고 있으니 제작이 수월했다. 단지 너무 오래된 드라마는 그도 소장하지 못하였는데 <전우>의 한 장면을 우연치 않게 발견하여 소개했다. 이 다큐멘터리가 후학들에게 보여주는 좋은 영상교재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 그가 갑자기 운명을 달리했다. 2013년 10월 26일에 영면 소식을 듣고 급히 장례식장을 가니 고두심 탤런트가 눈시울이 붉어져 나를 보는데 차마 눈길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만큼 슬픔이 절절한 눈길이었다.

2012년 10월 28일 그를 모시고 영상자료원에서 한국영화100년사 세미나를 가졌었다. 당시 75세라는 나이에도 소년 같은 열정을 가슴에 품고 사시는 그는 영원한 청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이별할 줄은 몰랐는데 그나마 대중과 함께 그의 영화, 드라마 제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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