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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홍콩 골든하베스트의 레이몬드 초우 회장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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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홍콩 골든하베스트의 레이몬드 초우 회장 ②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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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초우 회장을 영화 안목을 보여준 이소룡의 홍콩 컴백영화 '당산대형'
▲ 레이몬드 초우 회장을 영화 안목을 보여준 이소룡의 홍콩 컴백영화 '당산대형'

1960년생 이후 세대에게 ‘홍콩 영화계의 대부’로 불리는 레이몬드 초우(鄒文懷)는 홍콩 굴지의 영화사인 골든하베스트의 설립자이다. 그는 모두 600여 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주요 작품의 경향은 무협 및 무술, 코미디, 괴기 등 모든 장르를 망라한 것이었다. 특히 창립 직후 이소룡은 자신의 영화 흥행기록을 계속 경신했는데 다른 영화 기록은 이에 견줄 수 없었다.

참고로 1971년의 <당산대형>은 3,197,417 HK$를 기록하며 홍콩영화의 흥행기록을 경신했다. 그리고 1972년의 <정무문>은 4,431,424 HK$, 1972년의 <맹룡과강>은 5,307,351 HK$였다. 이로 인해 신생영화사인 골든하베스트는 <용쟁호투>를 미국과 합작할 정도로 기초를 다진다.

골든하베스트는 40만 HK$로 설립된 회사였으나 전세는 차츰 쇼브라더스를 제쳤다. 이소룡 사후 허관문을 기용해 <미스터 부> 시리즈를 만들어 쇼브라더스를 제치고 영화계 패권을 장악한다. 그런가 하면 성룡의 등장은 대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골든하베스트는 철저한 외주제작방식으로 유명배우나 감독들이 창업한 프로덕션의 영화를 제작 지원하고 배급을 맡는 새로운 스타일로 자리를 굳힌다. 당시 성룡은 위화, 홍금보는 보화 등의 영화사를 갖고 있었다.

이소룡 사망 후 2~3년간 대만에서는 300여 편이 만들어지는데 그 과반수가 이소룡을 모방한 쿵후영화였다. 이렇게 제작된 영화는 140여 국가에 수출되었다. 당시 백만 홍콩달러가 넘는 다른 영화로는 왕우가 일본의 가쓰 신타로와 함께 출연한 <외팔이와 맹협>의 흥행기록인 1,558,814 HK$뿐이며 황인식이 주연한 <합기도>의 경우는 873,804 HK$였다.

1973년, 이소룡 사후 그의 모방영화 제작이 줄어들 즈음 소림사영화며, 코믹 쿵후영화, 강시영화 등이 새로운 무술영화 장르로 등장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관객들은 더 이상 이소룡 짝퉁영화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스타들이 새로이 등장하였는데 <사형도수>, <취권>의 성룡이 그 중심인물이며 <귀타귀>의 홍금보, <최가박당>의 허관문 형제, <소림36방>의 유가휘, <신타>의 왕우(汪禹, 王羽와 다른 배우), 서소강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런가 하면 허관걸, 허관문 형제의 <미스터 부>시리즈가 흥행기록을 경신한다. 1부가 <반근팔냥>이고 2부가 <귀마쌍성>이었다. 이소룡 영화를 패러디해 포복절도 시키는 이 영화들의 인기는 홍콩인들을 매료시켰다. 이런 흐름은 주성치 까지 이어진다. 특히 성룡의 영화는 골든하베스트의 대표작이 되었다. 성룡의 출연작 중 <사제출마>부터가 골든하베스트 영화이다.

1980년 골든하베스트 제작, 성룡 감독‧주연의 '사제출마'
▲ 1980년 골든하베스트 제작, 성룡 감독‧주연의 '사제출마'

당시 감독으로는 장철, 호금전, 나유, 정창화 감독이 꾸준히 자신의 장기를 살린 영화를 만들었고 장철 감독의 무술감독 출신인 유가량이 <소림사> 시리즈로 단연 두각을 보였다. 그리고 강대위, 성룡, 홍금보도 각자 감독 데뷔를 하며 감독, 주연작을 양산한다.

이후 홍콩영화는 우후죽순으로 스타와 영화가 흥행기록을 경신하며 최전성기를 맞는다. 정소동 감독, 왕조현, 장국영 주연의 1987년작 <천녀유혼>, 1990년 서극 제작의 <소오강호>, 1992년 임청하 주연의 <동방불패> 등과 이연걸 주연의 정통무협, 그리고 오우삼으로 대변되는 홍콩느와르 영화가 최전성기를 이끈 주인공이다.

1986년 <영웅본색>으로 정상에 오른 주윤발은 1989년 왕정 감독의 <도신>으로 도박영화 장르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 그리고 주성치는 코믹 쿵후영화로 맞서며 홍콩 흥행기록을 경신한다. 1990년 <천장지구>의 유덕화는 오우삼 영화와 다른 청춘느와르영화의 스타로 떠오른다. 1995년에는 골든하베스트와 캐나다 합작의 당계례 감독, 성룡 주연의 <홍번구>가 미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다.

이렇듯 동남아를 벗어나 전 세계가 주목하는 홍콩영화였으나 중국 반환 후 홍콩영화는 생기를 잃으며 쇠퇴기를 맞는다. 그렇다고 홍콩영화가 와해된 것은 아니고 잠시의 휴지기를 맞는 것뿐이었다. 2002년 양조위의 <무간도> 시리즈는 홍콩느와르의 건재함을 보여주었고, 주성치는 2001년 <소림 축구>, 2004년 <쿵후 허슬> 등의 영화를 발표한다. 홍콩영화의 영광과 맥은 이렇게 이어진다.

1980년 골든하베스트 제작의 '홍번구'
▲ 1980년 골든하베스트 제작의 '홍번구'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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