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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정창화 감독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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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정창화 감독 ②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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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에 시달리며 '용쟁호투' 촬영을 마친 이소룡
▲ 부상에 시달리며 '용쟁호투' 촬영을 마친 이소룡

같은 회사에 있었던 정창화 감독과 이소룡의 일화 중 하나를 국내에서는 처음 밝힌다. 다음은 정창화 감독과 이소룡의 만남 기사이다. 이소룡이 죽기 3일 전 정창화 감독을 찾아와 차기작을 의논하고 함께 하기로 구두 약속을 하였다. 그런데 이소룡의 급사로 공수표가 되었다는 기사 내용이다. 아래는 신문 기사를 번역한 것이다.

“이소룡의 미완성 유작인 『사망유희』는 이소룡의 망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미 촬영된 부분을 복사해서 그의 영당 앞에서 태워버렸다. 추문회는 이소룡 생전의 유지를 계승하기 위하여 한국감독 정창화를 초빙하여 이 영화의 뒷마무리를 짓게 하였다.

정창화는 <천하제일권>으로서 유럽과 미국에서 아주 높은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이소룡도 생전에 정창화의 감독 능력에 대하여 높이 평가했었다. 이소룡의 측근에 의하면 이소룡이 <천하제일권>을 본 후, 정창화와 영화를 찍을 의향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당시 이소룡은 홍콩에서 <정무문>을 촬영하고 있었다. 쌍방도 만나서 영화를 만들 계획에 대하여 상세하게 토론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창화가 한국에 가서 <흑야괴객>을 촬영하여 시간상에서 문제가 생겨 이소룡이 <사망유희>를 찍기 전에도 홍콩에 오지 못하게 되어, 영화를 찍을 계획은 무산되었다. 이소룡이 <사망유희>의 일부를 찍은 후에야 정창화는 한국에서 홍콩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합작해서 영화를 만들 계획이 또 다시 제출하게 되었다. 당시 이소룡은 정창화에게 시나리오 준비토록 하였으며, 단시간 내에 준비해서 촬영을 시작하려고 하였다. 영화명은 <대전흑표범(大战黑豹)>이라고 하고, 시나리오는 모두 이소룡의 형상, 무술 및 성격을 모델로 해서 썼다. 시나리오가 완성된 후 이소룡도 읽고 기본상 만족하였다. 다른 세부적인 절차는 일부 상의를 통하면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는 이소룡이 죽기 1주일 전이었다.

이소룡이 죽은 후 <대전흑표범>은 적당히 출연할 수 있는 배우가 없어서 거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가화의 추문회는 정창화를 초빙하여 이소룡의 유지를 계승하여, 그의 생전의 미완성작인 <사망유희>를 완성할 의향이 있었다.” (이하 생략)

정창화 감독이 골든하베스트로 옮긴 후 첫 작품인 <흑야괴객>을 만들 던 중에 회사에서는 이소룡과 태국에서 <당산대형>을 촬영하게 된다. 따라서 이소룡과는 연이 없었던 정 감독이다. 그리고 3년이 후딱 지나가고 이소룡은 홍콩 제1의 스타가 되었다. 스스로 감독까지 겸한 <맹룡과강>이 홍콩의 흥행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데뷔작 <당산대형>이 홍콩 흥행기록을 경신하며 그의 두 번째 출연작인 <정무문>이 다시 흥행기록을 경신하고 세 번째 출연작인 <맹룡과강>은 최고의 흥행대작으로 경신 행진을 이어갔다. 이소룡으로서도 예상할 수 없는 이러한 기록행진 속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후속작의 선정은 점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는 한국의 법주사에서 착상한 <사망적유희>를 기획했다. ‘사망탑’으로 불리는 탑을 지키는 각국의 무술고수들을 물리치고 보물을 탈취하는 이 스토리는 서서히 구체화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최고라는 무술가를 초빙해 절권도로 쓰러뜨리는 그의 아이디어는 <맹룡과강>을 마친 후 현실화되었다.

이미 <맹룡과강>에서 합기도의 대가 황인식을 극중에서 물리친 바 있는 이소룡은 한국의 지한재 합기도 총재를 초빙해 한국 합기도를 확실히 무찌르겠다는 생각을 구체화시켰다. 그는 지한재에게 초청장을 날렸고 지한재는 훗날 그가 무도계에서 매장된다는 생각을 미처 못하고 홍콩으로 날아와 극중에서 무참하게 완패한다.

그것은 이소룡의 치밀한 계획이었다. 나머지 무술고수들도 압둘 자바, 대니 이노산토스 등 지인들을 초빙해 무난히 촬영을 마쳤다. 그러나 다른 무도인들의 초빙 계획이 순조롭지 못했고 시나리오도 구체화 되지 못하고 그의 머릿속에만 있었다. 촬영은 답보상태에 들어갔고 그사이 홍콩 최초의 미국합작영화인 <용쟁호투(Enter the Dragon)>의 촬영이 먼저 시작되었다. 이때 당시의 이소룡의 심적 상태는 기쁨으로 패닉 직전이었다.

자신의 꿈인 할리우드 입성을 보장하는 이 영화의 성공을 위해 그야말로 올 인하였고 촬영은 고군분투의 나날이었다. 무술감독까지 겸하여 사력을 다한 <용쟁호투>의 촬영이 끝날 즈음 그의 심신은 극도로 지쳐있었다. 더구나 촬영 중 다친 새끼손가락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무술배우로서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칼럼에 소개된 게재일 불명의 홍콩 신문기사(정창화 감독 제공)
▲ 칼럼에 소개된 게재일 불명의 홍콩 신문기사(정창화 감독 제공)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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