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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정창화 감독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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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정창화 감독 ③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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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6일 샌디에이고의 자택에서 정창화 감독과 이동삼 촬영감독(오른쪽)
▲ 2007년 3월 16일 샌디에이고의 자택에서 정창화 감독과 이동삼 촬영감독(오른쪽)

이소룡이 죽기 일주일 전에 정창화 감독을 찾아온 것은 훗날 신문기사로 크게 소개되었다. 극도의 탈진상태와 슬럼프를 극복해내기 위해서 본인은 연기에만 신경 쓰겠다며 정창화 감독에게 연출을 의뢰한 것이다. 정 감독은 혼쾌히 화답했으나 일주일 후 이소룡은 여배우 팅페이의 집 침실에서 의문사한다.

<사망유희>는 촬영 중 미완성으로 남은 그의 유일한 영화였고 제작사인 골든하베스트사로서는 이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완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창화 감독은 홍콩언론의 추측기사처럼 이 영화의 연출을 맡지 않았다. 죽은 이소룡과의 관계도 있었지만 자신이 그가 찍다 만 영화의 연출을 맡을 수는 없었다고 자신의 의지를 밝혔고 결국 <용쟁호투>를 연출한 로버트 클로우즈 감독이 천거되었고 그가 최종적으로 마무리 감독으로 결정되었다.

이때 정창화 감독이 <사망유희>를 완성했다면 영화는 아주 달라졌을 것이다. 서구인이 본 시각에서 만들어진 <사망유희>는 괴이한 영화로 팬들의 원망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 감독은 누가 만들던지 잘못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프로젝트에서 빠진 것이고 나로서는 구원투수일 수 있었던 그가 빠진 것이 내내 안타까울 뿐이다.

정창화 감독은 대제작사인 쇼브라더스를 나와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며 영화란 제작환경과 여건이 중요함을 새삼 실감했다고 토로한다. 그만큼 힘든 환경이었던 것인데 1977년 <파계>를 마지막으로 홍콩에서의 짧지만 화려했던 감독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신상옥 감독을 위시하여 최경옥, 임원식, 장일호, 김수용 등 많은 감독들이 쇼브라더스에서 일했지만 그는 그들 중 최고의 대우를 받았던 감독이다.

그가 만든 영화들은 확실하게 관객들의 호응을 받았고 아마도 지금까지도 대중적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세계적인 감독이다. 그의 영화를 섭렵한 <펄프 픽션>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그의 히트작 <킬 빌>을 그에게 헌정한다고 까지 하였다. 그는 당시 문공부 장관의 권유로 1979년 귀국해 ‘화풍영화사’를 설립한다. 정창화 감독은 홍콩에서든 한국에서든 연출을 계속했었으면 하는 주변의 기대와는 달리 1987년까지 제작자로만 활동하다가 은퇴하여 현재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살고 있다.

그의 활동이 계속되어 더 많은 연출작으로 미국에서의 활동도 기대되었던 최초의 감독이기에 그 아쉬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가 팬들에게서 잊혀진 2003년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렸는데 젊은 팬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그만큼 그의 영화는 세월을 두고 보아도 재미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나는 그를 만나 고등학교 시절 보냈던 팬레터 사연을 고백했다.

그로부터 벌써 20년이 흘렀다. 그사이 나는 그의 초청을 받아 회사에 휴가원을 내고 미국으로 찾아가 촬영하였다. 그리고 그가 귀국 때마다 만났다. 당시 촬영한 다큐 장면은 2020년 9월 26일 제116회 이소룡 세미나에서도 소개되었고 EBS <직업의 세계 일인자>와 <시네마 천국>에서도 소개되었다. 중요한 자료화면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때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영상자료원의 구술채록문이 만들어졌다.

개척자적인 기질과 결연한 의지로 내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많은 이야기를 통해 그의 진면목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는 내게 진정한 영화계 멘토이다. 지난 1월에도 안부전화를 드리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몇 달 만에 통화를 했다. 올해 만 나이로 94세인데 목소리도 좋고 건강하신 편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귀국하지 못했으며 서울 소식은 이해룡 배우를 통해 듣고 있다고 한다.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았으나 주치의로부터 자제하라는 말을 듣고 거절했다고 한다. 늦둥이 따님은 5년 전에 시집을 가서 LA에 살고 있으며, 신일룡 배우의 별세소식을 듣고 무척 아쉬워했다. 당시 자신이 귀국해 신 배우에게 홍콩행을 주선했는데 나유 감독부인이 LA로 가서 이소룡과 계약했던 것과 유사 상황이다.

신일룡 배우는 처음에 <귀계쌍웅(심판자)>에 출연하며 홍콩생활에 안착하는 듯 보였지만 기대처럼 못했다고 한다. 그것은 홍콩영화계에서의 적응이 필요한데 한국사람들과 어울리며 홍콩영화인들의 반감을 사게 됐으며 그 후로 타국에 가서 활동하는 등 다른 일을 하며 차츰 거리감이 생겼다고 한다. 결국 몇 년 후에는 한국에서 복귀하며 홍콩과는 멀어졌다고 한다.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입장이 바뀐 이야기라 흥미로웠다.

그는 고령이 되었지만 그는 확실히 젊고 아직도 건강하다. “감독님, 건강하세요^^ 화이팅입니다!!”

2015년 런던에서 개최된 한국영화제에서
▲ 2015년 런던에서 개최된 한국영화제에서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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