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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이우석 회장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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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이우석 회장 ④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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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소룡기념사업회 이정후 부회장(중앙)과 이우석 회장(오른쪽)
▲ 한국이소룡기념사업회 이정후 부회장(중앙)과 이우석 회장(오른쪽)

이우석 회장은 아주 소탈하신 분이다. 평소 입는 옷도 그렇고 김치찌개나 감자탕, 코다리찜 등 좋아하는 음식도 그렇다. 양주를 모으는 취미는 있지만 막걸리를 주로 드신다. 과묵한 편이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나에게만 예외로 몇 년 만에야 속을 털어놓았다. 그동안은 밥을 먹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회장이라는 것에 약간은 경계를 하셨던 같다. 뭘 또 캐내려고 하냐는 우려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이 회장을 만나는 건 선배 영화인으로서 또 부모님을 만나는 것과 같은 심정일 뿐이다. 그에 관한 기록은 여러 언론에 보도 되었고 그의 회고록과 영상자료원에서 인터뷰를 하여 두꺼운 책으로 나와 있다. 굳이 인터뷰를 하지 않더라도 나로서는 익히 알고 있는 역사이다.

그래도 만나면 새로운 이야기를 듣기 마련이다. 그런 이야기는 미처 몰랐던 그를 다시 보게 한다. 그는 평생을 근면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의 선행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그가 선행에 관한 한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말은 자랑같이 들리기도 하는데 그만큼 특별하고 뛰어난 분이다.

아직도 신문을 구독하고 매일 5,000~7,000보를 걷는다. 아침에 걷기 위해 일부러 멀리 있는 콩나물 해장국집을 찾는다. 집 앞의 매봉산도 매일 올랐지만 근 2년 정도 오르지 않는데 넘어지면 위험하다는 주변의 권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팡이를 짚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뛰기도 한다. 올해로 만 나이가 87세로 아직은 건강할 나이이다.

그와 식사를 하기 시작하자 그 다음부터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을 같이 하였다. 때로는 매일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식사 후에는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그만큼 신뢰를 얻어 가까워 졌기 때문인데 주변의 지인들과 합석이 늘어나며 거의 다 뵈었다. 모두가 훌륭하신 분들이며 정진우 감독이나 김동호 위원장은 익히 알고 지내던 분들이었다.

때로는 자주 만나지 못했던 이두용 감독이나 이정후 한국이소룡기념사업회 부회장을 처음으로 인사시키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만큼 편하신 분도 없고 사람 만나기를 즐기시는 분도 드물다. 88세에 모든 것을 두고 건강하게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말버릇처럼 했지만 작년에 고희연을 대신해서 자서전 기념회를 갖고 오히려 더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다.

2022년에 오픈 한 인천 항동의 넥스트 스튜디오는 그의 생애의 결정판이다. 그 누구도 영화를 위해 번 돈을 재투자 하기는 쉽지 않은데 그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오늘날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영화인들의 도움이라며 해마다 연말에 자리를 마련하고 2022년에도 천만 원을 한국영화인복지재단을 통해 기부하셨다.

그의 기부는 한 두 번이 아닌데 고향인 성주군에 장학금 1억 원씩 두 번씩, 문화부 근무자들의 모임인 문화회에 3억 원, 대한노인회에 격려금 1억 원씩 두 번을 쾌척했다. 나는 주변에 이 같은 기부를 하신 분들을 만난 적이 없다. 그것은 자산이 여유로워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음 씀씀이가 여유롭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그는 두 가지 모두를 갖고 있다.

“정직이 빽이다”라며 평생을 정직하게 살아온 그이다. 아는 이들도 많고 고향 출신의 검사도 즐비하지만 결코 안 좋은 일로 청탁한 적이 없다는 그이다. 주변의 시샘으로 억울하게 불려간 적도 있지만 조사 후 무죄 판정을 받았다. 나중에야 그의 지인들이 보통 거물이 아닌 것을 알고 담당 검사가 놀랬다는 말도 들었다. 이 칼럼 한 편에 그의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다.

그를 만나 그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음을 감사히 생각한다. 이 회장도 내가 좋은 사람으로 편하다니 그 말에 감사할 뿐이다. 그와 날씨가 좋아지면 국내 여행을 갈 예정이다 그가 바라는 노후의 삶은 그저 편안함뿐이고 내가 동반자 역할을 하니 나 역시도 즐거울 뿐이다.

2021년에 그의 제안으로 고향 성주를 함께 가보았다. 큰 은행나무가 버티고 있는 그의 고향마을은 한 눈에도 멋진 동네였다. 판검사가 삼십여 명이 배출되었고 정재계 인사가 많이 출생하였고 문화계 인사로 그가 있으니 명당 마을이 분명하다. 내친 김에 부산도 방문하여 그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동아극장 터와 해운대를 거닐었다. 그의 이야기에는 인생을 달관한 어르신의 철학이 담겨있다.

그의 어록은 유머도 있고 타인에게도 들려줄 이야기로 가득하다. 인생은 길지 않지만 짧지도 않다. 그 인생길을 그저 묵묵히 거짓 없이 자신에게도 엄격하고 충실하게 살아온 그의 삶은 교훈적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어른 중에 한 분이시다. 그것이 내가 그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일대기 『동아수출공사 반세기, 이우석 평전』을 쓰려는 이유이다.

2022년 겨울 그의 아파트에서
▲ 2022년 겨울 그의 아파트에서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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