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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임권택 감독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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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임권택 감독 ①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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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제18회 전주국제영화에서 임권택 감독(왼쪽)과 필자
▲ 2017년 제18회 전주국제영화에서 임권택 감독(왼쪽)과 필자

임권택 감독은 1936년 전남 장성 출생으로 1962년에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했다.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건 1970대 초인데 그가 만든 영화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1971)를 천호동 천호극장에서 보았다. 성격배우 김희라과 김창숙이 주연한 이 영화는 다른 한국영화와 달리 고급스러웠다. 그동안 봐온 액션영화와 달리 유학파의 영상인 듯 새로웠다.

도대체 감독이 누구일까 하며 포스터를 유심히 보고 임권택 감독 이름 석자가 각인되었다. “아! 이런 감독도 있구나!” 싶었다. 제목이 인상적인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는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1971)가 있지만 이 영화 역시 만만치 않다. 소년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제목도 특이하지만 그만큼 인상적인 영화였는데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없다. 한국에서는 흔치 않았던 여성 감독 황혜미의 각본에 보한산업이 제작하였다. 오래된 영화도 아니건만 포스터며 스틸 사진 하나가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그의 영화 시나리오를 청계천에서 사서 읽었다. <삼국대협>(1972)이란 영화대본이었다. 말론 브란도를 연상시키는 김희라가 일본의 가쓰 신따로의 맹협 연기를 하는 사무라이로 나오고 홍콩의 검객 외팔이도 나오고 조선의 일지매도 나오는 영화였다. 당연히 우스웠다. 당시가 그런 시대였고 그의 필모그래피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명동 시리즈에서 그의 이름을 봤지만 별로였다. 나의 관심에서 그는 멀어져 갔다. 그리고 군 전역 후에 복교한 1980년, 신입생 민병관이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를 마냥 극찬하며 열변하기에 궁금해 졌다. 민 후배는 성실남으로 그의 영화 연출의 꿈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 그가 극찬한 영화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는 볼 수 없는 영화였다.

그리고 그의 영화 <왕십리>(1976), <족보>(1978), <깃발없는 기수>(1979) 등을 보고 이 사람은 남다르다 싶었다. 그의 1980년 작 <만다라>는 충격이었다. 누구는 “그게 영화냐, 정사진이지”라고 폄하했지만 “너는 눈도 높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는 영화계에 입문했고 변장호을 거치고 정진우 감독의 우진필름에서 일 할 때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우진필름에서 <아벤고 공수군단>(1982)을 촬영 중이었다. 촬영을 나가고 또 나가도 누구도 이 영화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진짜 대작이었다.

나는 정진우 감독의 영화 <여명의 눈동자> 이후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에 투입되었고 2년 후 영화진흥공사에서 주최한 한국청소년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자 공사에서는 임 감독을 추천하며 그를 소개를 해주었다. 임 감독은 “어, 너구나...” 반겨주었고 나는 곧 찍을 <이명수 특공대> 연출부로 투입되었다.

정진우 감독과 임권택 감독은 전혀 다른 연출을 내게 보여주었다. 따라서 나는 각기 다른 색깔로 연출수업의 흰 도화지를 칠해 나갔다. 정감독이 정해진 사전콘티 아래 정확한 계산으로 영상미를 추구한다면 임 감독은 오픈된 스타일로 이른바 현장스타일이다. 그렇다고 임 감독이 콘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촬영 전 봉고차에 모여 콘티를 설명해준다. 현장 상황을 보며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다.

정 감독의 현장진행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고 임 감독은 태양광을 기다리며 땅에 물을 뿌려가며 기다리면서 찍는다. 임 감독은 이미 제작자 이상으로서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도 그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영화연출의 이상적인 상황은 정 감독 같은 친구를 둔 임 감독이다.

임권택 감독의 숨은 걸작 중 한 편이 바로 신일룡 주연의 <아벤고 공수군단>이다. 우진필름의 정진우 대표가 제작한 우리 시대 최고의 전쟁영화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걸작이다. 1982년 에 신일룡, 김희라, 정윤희, 남궁원, 윤양하, 이대근, 남포동, 유영국, 최병근, 윤영애, 장정국, 이해룡 외 유영하, 전무송이 출연했다. 당시 인기 스타와 액션 좀 한다는 배우는 총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벤고는 알렉산더, 벤더플, 고 중령 등 부대 리더들의 머리 글자를 따서 만든 특수부대명이다. 전쟁에서 특공대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나리오도 좋고 전쟁영화로써 잘 짜여진 영화이다. 적진에 침투하여 임무를 완수하고 장렬히 죽음을 맞는 특공대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그리고 적진에 홀로 남아 새로 부여된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는 주인공 오일규, 그를 기다리는 여인의 애틋한 러브라인은 영화의 백미이다.

민족의 생존을 위해, 기필코 승전을 거두기 위해, 성 중위를 대신해 스스로 적진의 투입되어 생포되는 기만전술을 펼친 고 중령. 그는 만나기 위해 천신만고 끝에 월남한 부인 등의 스토리는 가슴 짠한 내용들이다. 그 모두 조국의 운명을 위한 책임감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성 장군의 회고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규모면에서나 스토리나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다시 만들 수 없는 영화라고 생각하며 특히 도입부의 주점 액션신은 가히 압도적이다. 그렇게 만나자 마자 헤어진 두 남녀의 이별은 더욱 안타깝게 와닿는다. 당시 50회 촬영을 기록했는데 한국 최초의 기록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2시간 10분. 대한극장에서 개봉되어 학생 단체 관람을 하였지만 제작비를 건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대종상에서 반공영화상을 받고 해외 수출하여 적자를 만회했다. 제작자 정진우 대표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완성하기 어려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1984년 임권택 감독, 신일룡 주연의 '아벤고 공수군단'
▲ 1984년 임권택 감독, 신일룡 주연의 '아벤고 공수군단'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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