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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헌 변호사(법무법인 천고) |
[한국정경신문] 대마불사(大馬不死). 대마불사는 본래 바둑 용어이다. 쫓기는 대마가 위태롭게 보여도 필경 살 길이 생겨 죽지 않는다는 뜻인데, 쫓기는 쪽에서는 수습과 타개에 최선을 다하므로 여간해서 죽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즉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대마불사는 조금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대기업이 망하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려둔다는 뜻이 내포돼 있는 듯하다. 대우조선 등 대기업에 막대한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이유도 대마불사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채권단의 한진해운 법정관리 결정에 대해 언론은 '대마불사 신화가 깨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논리에는 나도 반대한다. 하지만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그리고 청산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부분들을 따져봐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일단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써 우려하는 것은 국내 법률시장의 위축이다. 한진해운이 담당한 화물과 관련한 운송 분쟁이 발생하면, 법적 다툼을 한국 법원에서 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한진해운이 사라지면 많은 국내 기업들이 머스크해운 같은 해외 기업에게 화물을 맡길 것이고, 분쟁이 발생하면 한국 법원이 아닌 영국 런던이나 일본 도쿄에서 법적 다툼을 벌려야 할 것이다.
화물 일감만 해외 거대 기업에게 뺏기는 것이 아니라, 해상법과 관련한 각종 법률 서비스 시장도 영국과 일본에게 뺏기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국내 법률시장은 위축될 것이고, 국제거래와 관련한 국내 법률 전문가를 양성하는데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국내 중견기업, 중소기업들이 받을 큰 타격이다. 인력과 자금에서 여유가 있는 대기업들은 이미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그리고 청산에 대비해 각종 대책들을 수립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정보력, 자금력, 인력 등 모든 면에서 여유가 없는 중견기업, 중소기업들은 두 눈 뜨고 현 사태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변호사인 내가 기껏 할 수 있는 일은 한진해운의 선박과 함께 압류된 국내 기업들의 화물에 대해 신속히 압류 해제할 수 있도록 돕는 것과 압류 해제된 화물이 재운송 될 때 추가 운임비를 내지 않도록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 도산하는 기업들이 나올 수도 있고, 수많은 실업자들이 양산될 수도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에 내수시장이 더욱 얼어붙을 수도 있다.
지금이야 말로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정신을 살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사태에 대해 수습과 타개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정말 '대마불사'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일각에서는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현대상선에 넘긴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어불성설이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만큼 모든 결정권은 법원의 손에 넘어갔다. 한진해운의 운명과 관련해 법원 측의 견해가 아닌 이야기들은 모두 낭설에 불과하다.
법원의 결정은 한국 경제와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 만큼 법원이 신중에 신중을 기해 '대마불사'의 기적을 이뤄내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