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3-29 21:17 (금)
[안태근의 다큐세상] 단 한번 뿐인 내 인생
상태바
[안태근의 다큐세상] 단 한번 뿐인 내 인생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몇 가지의 일들을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EBS PD시절
▲ 몇 가지의 일들을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EBS PD시절

누군가 내게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말한다. 작가, 감독, PD, 교수라는 직업에 대한 부러움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까 해서 하는 말일테다. 한 평생을 살며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내 경우 이 직종에 종사하니 하루 종일 영화를 보거나 TV를 봐도 잔소리 들을 일이 없다. 실제로 아침에 외출해 밤까지 영화를 보러 다닌 적도 적지 않다. 다른 직업을 가졌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팔자 좋은 소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게 영화보기나 TV보기는 필수적이며 직업적인 일이다.

돌아보건대 영화는 나의 희망이었고 방송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영화를 보며 나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TV드라마를 보며 나는 두 마리의 양을 잡고자했다. 극장을 드나들며 영화를 보던 시간만큼이나 TV 앞에서 작은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당시는 10인치 미만의 작은 TV가 보편화 되었었다. 국산 TV는 드물고 밀수내지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일제 소니TV가 있었다. TV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극장엘 덜 갔다.

당시 mbc가 막 개국하여 일본풍의 검술극을 드라마로 만들었는데 제목은 잊었지만 재미있게 봤었다. TBC는 일찍이 민영방송으로 출발하여 재미 제일주의를 표방하였었다. <쇼쇼쇼>는 대표적인 오락프로그램이었다. KBS는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에도 중량감 있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기억나는 프로그램은 <구룡반도>, <맥>, 이후 <토지>, <지금 평양에선>, <TV문학관>등이다.

극장 나들이도 계속됐지만 접근성이 용이한 TV 시청은 하루 중 큰 일과였다. 하도 열심히 보니까 주변에서 말리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가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보니 1981년에 KBS에서 있은 여름 방송학교에서 방송작가 연수를 받게 되었다. 각 분야의 현업자들이 망라된 교육이었는데 김수현 작가를 비롯하여 자로 잰듯한 드라마 연출을 한다는 최상현 PD, 대학동기 유지인 탤런트, 그리고 코미디, 쇼 분야의 PD들에게서 연출 강의를 들었다.

다시 영화 조감독을 하며 느낀 것이 영화는 방송에 비해 영세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영화는 나의 희망이었기에 놓칠 수가 없었다. 열악한 환경만큼이나 나도 빨리 지쳤다. 내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는 아쉬움으로 머리도 굳어가는 느낌이었다. 탈출구로 내가 시나리오를 쓰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쓴 시나리오가 장르별로 10여 편이 넘는다.

조감독 활동 이후의 나의 연출 활동을 쉰만큼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다. 1986년 다큐멘터리 <한국의 춤 살풀이>를 시작으로 홍보영화와 교육영화를 1년에 십여 편 가까이 연출을 했다. 당시에는 임권택 감독도 국방부 교육영화를 찍었다. 몇 년에 한 편을 연출하는 현실에서 생활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부지런히 만들다 보니 40여 편을 연출했고 영화상도 20여 개를 수상했고 그리고 방송계에 입문했다. 방송계는 한마디로 온실 속이었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사람들도 넉넉했다. 그만큼 덜 치열할 수도 있고, 영화계는 삭풍이 몰아치는 황야였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투전꾼들의 살벌함이 있었다. 그것에 비하면 방송국은 느긋하기조차 한 따뜻한 온실이다.

그렇다고 방송국이 마냥 편하고 순조로운 곳만은 아니다. 이곳도 시청률이라는 족쇄가 항상 PD들을 옥죄인다. 그래도 영화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임권택 감독이라는 명장이 나오기까지 수많은 흥행 실패작이 있었다. 온실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예전의 치열함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마냥 느슨해질 나도 아니다. 새로운 기획안을 쓰며 나름 담금질을 하고 있다.

요즘은 새로이 하는 영상작업이 줄어든 만큼 새롭게 쓰는 책들이 늘어났다. 그 모든 것이 내겐 소중하다. 콘티를 짜며 나누어 주고 선후배들과 함께 했던 영상 일들이나, 홀로 하는 글쓰기가 있기에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두 가지 일은 다른 듯하지만 창작이라는 점에서 같다. 큰돈은 못 벌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것, 그것은 분명 부러운 일일 수도 있다. 지금도 현장에서 일하고 강의를 하고 있는 내 인생에 후회는 없다.

내가 하는 것들 중에 뺄 수 없는 일이 각종 사업회 일이다. 돈 버는 사업은 아닌데 ‘한국이소룡기념사업회’,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안중근의사뼈대찾기사업회’ 일이다. 그것에 하나 더해 ‘한국다큐멘터리학회’의 회장까지 맡고 있다. 그야말로 일 풍년이다. 다음 회부터는 나의 사업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