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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윤진, 그 여배우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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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윤진, 그 여배우가 사는 법
  • 박나은 기자
  • 승인 2017.04.19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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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페퍼민트앤컴퍼니)

[한국정경신문=박나은 기자] 배우 김윤진, 가까우면서도 멀게만 느껴지던 배우로 인식된다. 국내 극장에서 그를 자주 만날 수 없기 때문일까. 실제로 그는 미국 지상파 드라마에서 활약했다. 지금도 미국 드라마 출연을 위한 오디션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녀가 최근 개봉한 영화 '시간 위의 집'으로 국내 관객을 만났다.

실제로 만난 김윤진은 조근 조근한 말투로 소신을 말하는 여배우였다. 특히 국내 영화계의 문제점과 자신이 느끼고 있는 책임감도 가감 없이 쏟아냈다. 조금은 멀게 느껴졌던 그였는데 깐깐할 것 같다는 이미지도 그저 보기 드문 여배우에게서 오는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오히려 그는 꽤나 근사한 배우이면서 주변의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정감 있는 배우 쪽에 가깝다.

“사실 대중은 저를 멀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가끔 나오는 배우'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렇겠죠? 하지만 저의 주무대는 한국이라고 생각해요. 할 수 있으면 해마다 작품을 들고 나오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는 거죠. 제가 가지고 있는 선택권 안에서 다양성 있는 작품을 찾다 보니 공백기가 자연스럽게 길어지는 것 같아요.”

(사진=페퍼민트앤컴퍼니)

■ 김윤진, 왜 하필 '시간위의 집'이었나

고심 끝에 국내 영화로 돌아온 김윤진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선택권 안의 다양성 있는 작품'이라는 범주 안에 이번 작품인 '시간위의 집'도 들어갈 수 있을까. '시간위의 집'은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교도소에 25년간 수감돼 있던 미희(김윤진)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 과거의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본은 재미있게 봤어요. 그 이후에 원작을 봤는데 국내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 부분을 한국적인 요소로 바꾼 것이 눈에 띄더라고요. 분명 좋은 영화니까 리메이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하셨겠죠? 좋은 원작이 있는 것에 대한 믿음과 동시에 걱정도 들었어요. '시간위의 집'은 반전이 6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잖아요. 아무래도 그 부분이 걱정이 됐죠. 그럼에도 이 작품을 선택한 건 각색이 잘 돼서 어떻게 보면 원작보다 더 잘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에요. 한국영화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반전, 그 부분이 개인적으로 정말 좋았어요.”

김윤진이 '시간위의 집'의 대본을 보고 믿음직스러웠던 것처럼 관객들도 김윤진에 대한 거는 기대가 크다. 요즘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남발되고 있지만 김윤진 만큼은 진짜 믿고 보기에 충분한 배우라는데 이견을 보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다양한 작품을 통해 이를 직접 증명해내지 않았나. 하지만 그는 그 '믿음'을 함께 작업한 스태프의 공으로 돌렸다.

“분명한 건 내가 잘해서 영화가 잘 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오랜만에 국내 작품을 하게 됐는데 배급사 사이에 눈치싸움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다시 한 번 느꼈어요. 내가 잘해서가 아니고 힘이 있는 영화를 했을 때 특혜를 받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연기는 하면 할수록 더 까다롭고 진짜 힘든 거라고 느꼈죠. 정답이 없잖아요.”

그 힘든 걸 김윤진은 언제나 그랬든 완벽하게 연기해냈다. 후두암에 걸려 겨우 나오는 목소리를 내뱉는 노인 미희였다가, 아들을 향한 사랑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젊은 미희가 되기도 했다. 앞서 '국제시장'에서도 노인 분장을 한 김윤진이었다. 같은 분장이지만 경험 덕일까. 이번 연기는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오히려 25년이라는 간극을 뛰어넘어야 하는 '시간위의 집'의 연기가 더 힘들었을 법도 한데 말이다.

때문에 김윤진은 그 간극을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미희가 후두암에 걸렸다는 설정이다. 들릴 듯 말 듯한, 또 쇳소리가 잔뜩 섞인 목소리는 김윤진의 고민으로 탄생한 콘셉트다. 그 목소리는 실제 영화에서 음산한 분위기를 더욱 극대화시키기도 하고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국제시장'과 달리 '시간위의 집' 속 미희는 25년 수감생활을 견뎌야 했고 순식간에 아들이 눈앞에서 사라졌죠. 매 순간이 지옥 같았을 거예요. 그걸 전달하기 위해 원래 나이보다 훨씬 나이가 든 분장을 원했어요. 그래서 후두암 설정도 넣은 거고요. 목소리에 신경도 많이 썼어요. 아무래도 현장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목소리가 있어요. 그래서 마이크도 꼭 달아서 연기하고 그랬어요. 결국 영화에서는 직접 낸 목소리가 나왔지만요.(웃음) 아무래도 기계적으로 손을 보면 미세한 떨림이나 호흡이 뭉그러 거든요.”

“아, 그리고 좋은 수분크림이란 크림은 다 썼어요. 하하. 잠을 잘못자면 베개자국이 생기잖아요. 40대가 되면 피부 탄력이 없어서 회복이 잘 안 돼요. 피부에 본드를 사용해서 전체적으로 바르고 드라이기로 말려서 주름이 생기게 하는 방식으로 분장을 했어요. 그 위에 검버섯을 입힌 거예요. 12시간 정도를 고정하고 있는데 그 이후에 다시 젊은 미희를 연기해야했어요. 그런데 이 자국이 안 없어져서 애를 먹었죠.(웃음)”

(사진=페퍼민트앤컴퍼니)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

이번 작품에서 주도적으로 극을 이끌었던 김윤진의 모습은 어딘지 익숙하다. 앞선 작품들에서도 그는 스스로 중심을 지키고 극을 이끌었다. 실제 김윤진도 그랬다. 그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쉬리'의 출연은 물론이고 한국배우로서 최초로 미국 드라마의 주연 자리를 꿰찼다. 미국드라마 '로스트'라는 기회를 잡은 그는 이어 '미스트리스' 시리즈로 기반을 다졌다.

“제가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시대가 그랬던 것 같아요. 만약 제가 늦게 태어났다면 '쉬리'라는 영화에 참여할 수 없었겠죠. 당시에는 '쉬리'가 정말 할리우드에 버금가는 영화였어요. 주도적으로 뭔가 바꾸는 시대에 태어났으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게 아닐까요?(웃음) 가능성이 하나 트이니까 운 좋게 기회를 잡았고, 또 동양 배우들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된 거죠.”

“물론 미국 활동에 대한 자부심은 있어요. 처음으로 한국인 캐릭터가 주요 인물인 '로스트'라는 드라마를 만났는데 애로사항도 많았죠. 그래도 이젠 더 이상 동양인 캐릭터를 미국 드라마 안에서 본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됐어요.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그냥 지나가는 역으로 등장만 해도 희귀한 장면이었는데 말이죠.”

미국에서 영역을 넓히며 기반을 다져 놓은 김윤진이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이 내 주무대”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영화계에 여성 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는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어느 때보다 더욱 진지한 자세로 그 현실을 마주한 그였다. 선배 입장에서 자책감이 들 정도라는 말은 그만큼 한국영화계에 갖는 애정이 남다르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제가 30대였을 때는 여성 배우들이 할 영화가 많았어요. 그런데 요즘에 후배들을 만나면 시나리오가 너무 없대요. 속상한 일이에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저희 세대 여배우들이 좀 더 열심히 했어야 됐나 싶기도 해요. 실제로 감독님들을 만나도 '여자 영화가 너무 없다'는 말을 자주 하세요. 그런데 안 바뀌어요. 문제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다들 쉬운 선택을 하게 되니까요. 꾸준하게 여자 중심 영화를 재밌게 만들면 분명히 선택 받을 수 있다고 봐요. 사실 조금씩 변화는 일어나고 있어요. 체감되지 않아서 문제인 거죠.”

김윤진은 이번 활동이 끝나면 다시 미국으로 떠난다. 또 새로운 배역을 찾기 위해 발로 뛰는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김윤진은 “배역은 그냥 주어지는 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런 신념으로 작품에 임하는 그 태도가 지금의 김윤진을 만든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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