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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언론, 감시견(watch dog)역할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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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언론, 감시견(watch dog)역할 하고 있나?
  • 김충식 기자
  • 승인 2019.04.24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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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기능 3대기능 정권과 맞닿아 있어
▲ 김충식 편집국장
▲ 김충식 편집국장

 

언론학자들은 언론의 여러 기능 중 세 가지를 기본기능으로 보고 있다. 첫째 의제설정, 둘째 적대자, 셋째 감시견이다.

첫째 의제설정은 아젠다(agenda)라고도 불리는데 '회의 등에서 거론되는 의제나 안건'을 뜻하기도 한다. 언론용어로 사용될 때는 현재 여론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쟁점 또는 이슈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버나드 코헨은 '신문과 외교정책'이라는 저서를 통해 말하기를 “언론은 정보와 의견의 단순한 조달자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엇을 생각할 것이냐를 사람들에게 말해주는데 있어서는 항상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독자들에게 무엇에 대하여 생각할 것이냐를 말해주는데 있어서는 성공적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가 있고, 실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산다.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여론이지만, 언론의 기능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언론의 순기능을 얘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의제 설정'의 기능에는 대중에게 무엇을 알려야 할 것인지 혹은 무엇을 알리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능이 있다. 이것은 대중의 상식 혹은 특정 지식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쟁점, 특히 국가운영이나 정책상의 주용 사안에 대해 일반 대중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엠바고는 의제설정 기능에서 최소한의 시간적 제어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의제설정 개념은 11972년 맥스웰 맬콜과 도널드 쇼우에 의해 처음 수립됐다.

둘째 적대자, 영어로는 'adversary'이고 '적(敵)'이라고 한다. 이는 전투나 전쟁에서 말하는 승패의 유무로 생사와 운명이 달린 군사적 의미의 적(敵, enemy)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경기나 논쟁, 토론 등의 경쟁으로 승패를 다투는 상황에서 상대방인 경쟁자로서 적(敵)을 말한다. 다시 말해 경쟁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겨야 할 대상으로서 상대방이 'adversary(적)'인 것이다.

언론의 적대자라는 개념은 정부와 공생적 관계가 아닌 경쟁적인 적대자의 관계를 유지해야만 정부의 통치권력의 오남용을 감시, 견제, 비판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 낼 수 있다는 신념을 토대로 한다. 역사적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수세기에 걸쳐 지배 통치권력, 즉 정부로부터 끊임없는 통제와 간섭에 시달려왔다. 언론이 투쟁해야 할 가장 큰 적이 바로 통치권력, 즉 정부였기 때문에 언론의 적대자 개념은 18세기 이후 자유언론 사상의 중심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이 개념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현 시대에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분명 자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맞으리라 생각된다.

셋째 감시견, 감시견으로서의 언론의 역할은 정부의 통치행위와 사회를 감시하는데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파수꾼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언론의 감시기능은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위탁된 정치권력을 오남용하는 것을 견제하고, 동시에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비판함으로써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토대로 한다.

'감시견'이라는 말은 '짖는 개'를 의미한다. 집에 도둑이 들어오면 개들이 소리를 내어 짖어대는 것을 두고 감시견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다. 최근 언론이 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깨지지 않는 절대 다수가 있고, 이러한 지적에도 움직이지 않는 정권이 있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감시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로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의 명언 '언론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는 말은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만 정부 또한 건강해지는 것이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들린다. 워싱턴 포스트 지의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로 닉슨 대통령이 사임을 한 사건은 언론이 부당한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하는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인 1위(2017년 기준)로 꼽힌 분이 손석희 앵커다. 손 앵커는 2016년 4월 27일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언론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언급하며 이렇게 얘기한 바 있다.

“언론은 언론학자들 사이에서 흔히 개에 비유되곤 합니다. 애완견(Lapdog) 랩독은 말 그대로 권력의 애완견 같은 언론으로 주인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달콤한 간식을 받아먹는 그 안락함에 취해버린 언론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랩독은 결코 권력구조에 비판적일 수 없습니다. 다만 거기에 동화되고 기생할 뿐이지요. 권위주의 시대의 언론은 이런 비판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경비견(Guard dog)은 언론 그 자신이 기득권 구조에 편입되어서 권력화 되었고, 그래서 권력을 지키려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들이 지키려 했던 대상을 향해서도 공격적이 되는 것. 물론 그것은 지키려 했던 대상의 권력이 약해졌을 때, 혹은 지키려 했던 대상이 자신의 이익과 반하게 될 때의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 슬리핑독(Sleeping dog)은 매우 중요한 이슈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눈을 감고 있는 언론입니다”라고.

이 때가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 모습을 바꾼 보수언론을 지칭한 것으로 기억된다. 애완견은 당시 정부로부터 잘 길들여진 언론들을 지칭한 것이고, 경비견은 권력화된 언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여 권력마저 공격했던 언론을 지칭한 것이고 세 번째 슬리핑독은 침묵했던 언론을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지금은 어떠한가? 최근 언론의 의제설정을 보면 갑툭튀 기사가 눈에 띈다. 수십년이 지난 사건을 꺼내들고 나오는 경우가 있다. 마치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 캐비닛에서 꺼내온 문건처럼 나오는 보도들. 뿐이랴, 목포 손혜원 사건도 갑자기 흐지부지 사라지는 모양새다.

언론의 기능과 사명을 다하고 있는 미디어가 몇 개 보이지 않는다. 자유시장경제가 무너져가고 있고, 정부의 정책에 의아심을 품는 이들이 점점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제대로 된 지적은 커녕 비판기능조차 없이 오히려 받아쓰기에 열심이다. 공부하지 않고 취재하지 않으니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참다못한 독자들이 기자가 쓴 기사에 댓글로 한마디 한다. “기레기 양반, 공부하시오!”

언론은 스스로 돌이켜보아야 한다. 언론이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순간 이 땅의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독재만이 남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할 말을 하지 못했던 언론은 훗날 다시 적폐로 남을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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