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5 23:56 (목)
[안태근의 탕!탕!탕!] 안중근 의사 순국일
상태바
[안태근의 탕!탕!탕!] 안중근 의사 순국일
  • 안태근
  • 승인 2021.03.10 0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월 14일은 사형선고일, 3월 26일은 사형이 집행된 순국일...올해 순국 111주기
▲안태근 회장(안중근 뼈대찾기사업회)
▲ 안태근 회장(안중근 뼈대찾기사업회)

얼마 전 역사 전문가를 자처하는 분이 방송에서 큰 실수를 했다. 방송에서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과 사형일을 혼동하고 이를 검증 없이 그대로 방송했다. 발렌타인데이로 인해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 너무 알려지며 이 날을 사형당한 순국일로 기억한 것이라 추정된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틀리다. 사형선고일은 2월 14일이며 사형이 집행된 순국일은 3월 26일이다. 올해가 벌써 111주기이다.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은 3월 26일이며 형 집행은 오전 10시에 시작되었고 마지막 묵념의 시간이 주어졌고 그 후 10시 4분에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일본인 검시의에 의해 죽음이 확인된 것은 10시 15분이었다.

사형장은 지금 여순감옥이 세워놓은 장소가 아니다. 역시 안 의사가 거주했던 감방도 실제 장소와 다르다. 모두 여순감옥 측이 관람객들을 위해 임의로 정한 장소일 뿐이다. 안 의사는 순국 후 통관에 처리하는 일반인 잡범과 달리 침관에 모셔 안치실로 옮겨졌고 세 명의 의거 동지인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에게 마지막 친견을 하도록 했다.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정근과 공근은 그날 감옥 밖에서 형의 시신을 인수하고자 했으나 거부되었고 기차에 실려 여순지역에서 쫓겨났다. 이후 안 의사는 여순감옥의 수인묘역(죄인묘지) 2열에 안장되었다. 처음에는 목비가 세워졌다. 1944년에 이곳을 방문한 고 신현만 씨가 증언했다. 이후 묘비에 관한 증언은 없었지만 중국의 대련일보 기사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1958년 이곳을 부친 이충렬 씨와 함께 참배했던 이국성(1946년생) 씨가 생존한 마지막 목격자이다. 그를 만났던 고 김영광 의원은 그를 대동하여 묘 추정지를 탐방하였고 그토록 그곳을 발굴하자고 제안하였지만 묵살되었다. 2008년 첫 발굴사업 때에도 이 지역을 외면됐다.

2010년 3월 26일 EBS특집 다큐멘터리로 방송된 <안중근 순국 백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에서 왜 이지역이 안 의사의 유력한 매장 추정지인지를 밝히고 있다. 이 다큐는 PD협회가 시상하는 TV 시사교양부문 이달의 PD상을 수상했다. “작품의 진정성을 높이 산다”라는 심사위원의 심사평이다.

그리고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가 출범했다. 안 의사의 유해를 발굴하여 더 이상 지하에서 진토되지 않도록 각계에 호소하기 위함이다. 의사의 유해가 우리를 마냥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가오는 3월 26일은 안 의사의 순국 111주기이다. 과연 의사의 유해는 지하에서 우리를 기다려주고 있을까?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