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영화 만들기는 감독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대학 가서도 바로 단편영화를 만든 건 아니다. 1학년 때에는 교양과목을 들어야 했고 2학년 2학기에 들어서 처음으로 <폭류>라는 세미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청계천변에 사는 사람을 통해 인생을 논하고자 한 거창한 내용이니 단편영화로서는 표현이 힘든 실패작이다.
그동안 시나리오도 쓰고 학생영화 촬영현장과 선배들의 영화를 열심히 보았지만 직접 만들어 보니 많이 달랐다. 곁에서 지켜보는 구경꾼으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교수님들 역시도 학생들이 알아서 만들라며 일체 간섭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3학년에 올라가 이소룡의 <용쟁호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적상춘>, 그 후속편인 <폭춘>을 만들었다. 그리고 친구가 연출한 <난파선>에 출연하기도 했고 <길>이란 시나리오를 선배에게 써주었다. 이즈음 주변에서는 나를 안 감독으로 불렸다. 만나면 명화 이야기를 꺼내어 영화박사로 불리며 모두 내게 안 감독이라고 부르며 영화계로 진출하라고 격려해주었다.
4학년 때 군입대하여 인제에서 근무를 마치고 1980년에 복학하여 5공 정부를 풍자한 <동춘>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영화인협회에서 주최한 제1회 한국단편영화제의 금상(최우수상) 수상작이다. 이 상을 받으며 나는 영화계 진출을 내심 결정했다.
졸업영화로 만든 영화는 한국최초의 무술 실험영화인 <공>이다.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하늘의 달을 딴다는 내용인데 남들은 취직시험 준비를 하는데 나 홀로 촬영을 다니고 편집을 하였다. 지금 학생들은 스마트폰으로 쉽게 제작할 수 있는 상황인데 당시는 그러하지 않고 16mm필름을 사용해 제작을 하였는데 이상의 십여 편은 비교적 많은 편수이다. 당시에는 연출 희망자가 적어 나는 매 학기마다 한 편씩을 만들었다.
졸업 후에 영화계에 입문하여 조감독 활동을 하면서도 독립영화 제작자로 활동했다. 사실 상 나의 독립영화 프로덕션인 '서울AMG'라는 영화 서클을 만들어 회원들과 함께 1983년에 <맥>, 1984년 <한국환상곡>, 1985년 <맥>을 만들었다. 이렇게 매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카메라를 장만했기 때문이다. <맥>을 만들어 한국청소년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하고 상금 150만 원을 받았는데 그걸로 마련한 것이다.
1986년에는 영화진흥공사의 문화영화 소재공모에 입선하여 <한국의 춤 살풀이>를 만들어 감독 데뷔를 한다. 이렇게 정리하면 직접 감독한 영화는 모두 8편이고 연기와 시나리오 등이 2편이다. 이들 영화를 통해 영화를 독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독 데뷔 후 36편의 문화영화를 제작, 감독하는 독립영화 감독을 5년간 하다가 EBS에 PD로 스카우트되었다. 영화계 10년 종사 후의 일인데 앞의 5년은 기다림을 배웠고 뒤의 5년은 열심히 촬영 현장을 누볐다. 촬영 후에는 수전증이 걸릴 정도로 술을 마셨다. 당시에는 정말 술 권하는 시대였고 내 스스로도 대접하느라 많이 마셨다. 혹독한 시련기인데 체력이 받쳐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만드는 영화마다 호평을 받았고 영화제에서 수상한다.
30세 중반에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감독상을 받았다. <귀항>이라는 영화인데 작품상부터 촬영, 조명상까지 주요 상을 수상했다. 이듬해에도 <철판을 수놓은 어머니>로 작품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했는데 수상이란 한 번 하기가 어렵지 받게 되면 노하우가 있는 듯하다. 그렇게 이십여 개의 상을 받으니 방송국에서 오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리고 EBS에서 24년 간 근무하며 천여 편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건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기에 때문이다. 하도 많이 만드는데 절기 특집은 도맡아 제작을 했다. 많이 만들다 보면 역설적으로 잘 만들게 된다. 굳이 대표작이라면 <전통문화를 찾아서> 시리즈, <일제강점기의 영화>,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3부작, <청사초롱과 홍등> 5부작,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 <명의> 등이다.
나의 천 편 제작 이야기를 박중훈 배우에게 들려주었더니 믿지 않았다. 영화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홍콩 쇼브라더스 60년의 제작량과 같다. 답은 내가 EBS에서 근무했기 때문인데 박중훈 배우는 '수능 특집', '수능 강의'까지 제작했기 때문이라는 말에 이해를 하였다.
시나리오는 1988년 <사방지>로 데뷔해 이미 원로작가이다. 조감독 시절부터 글쓰기에 매달려 작년까지 모두 59편을 집필했고 이중 39편 정도가 내가 직접 연출하거나 타인들에 의해 영화, 혹은 문화영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파란만장한 나의 제작기이다. 이 모든 건 기록이 남아있어 정리가 가능하다.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집필한 나의 저서는 38권이다. 그중 『한국영화 100년사』 시리즈가 9권, 이소룡 관련서가 『이소룡 평전』 등 6권이다. 그 외 대학 강의를 20여 년간 하며 교재로 출간하고 영화 전문서 등이 지금도 계속 출간되고 있다. 이건 처음부터 예상된 것이 아니고 그저 만들고 쓰다 보니 어마어마한 량이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역전의 성공담이고 말을 달리하면 기네스 기록감이며 한 마디로 말해 비정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