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2-24 15:43 (토)
[안태근의 다큐세상] 이정영 선배를 그리며
상태바
[안태근의 다큐세상] 이정영 선배를 그리며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9.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생 때 설악산으로 여행을 가서 비선대에서 한 컷
▲ 대학생 때 설악산으로 여행을 가서 비선대에서 한 컷

정영이 형은 서울 출생으로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13기생이다. 나의 3년 선배로 학교를 같이 다녔다. 13기 선배들은 학교를 같이 다니며 일화가 많다. 이정영, 김영준, 조성훈, 이한상 등 복학생 선배들은 우리와 학교를 함께 다니며 워크숍 촬영 시 스태프로 함께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당시 여러 선배들이 산을 좋아했는데 김항원, 김영준, 그리고 동기생 임경택도 산을 잘 탔다. 서울 인수봉에서 클라이밍 코스를 타며 촬영한 산악 소재의 단편영화 <꾼>도 기억이 난다. 아마추어의 영화치고는 아주 잘 찍어 산악영화제에 출품하라고 권했었다. <꾼>이라는 제목은 전문 산악인을 뜻하는 제목이다.

당시 산행은 많은 학생들의 취미생활로 산은 젊은이의 광장이었다. 등산화는 찾아보기 힘든 시절로 등산화 대신 군화나 운동화를 신고 산행을 했다. 각 대학마다 산악부가 있어서 산행인구가 늘어났고 동네마다 산악회가 결성되어 휴일이면 너도나도 산으로 갔다. 정영 형은 클라이밍 위주로 산행을 하던 크로니 산악회 회원이었다.

그는 촬영을 전공해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졸업 후 교보생명에 취업해 촬영팀에서 일했다. 그의 광화문 사무실에 놀러갔을 때 행복해 하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어느 날 그가 그 좋은 직장을 팽겨치고 설악산 양폭산장(지금의 양폭대피소) 산장지기를 한다고 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결국 산장지기는 하지 못했지만 그는 자주 설악산을 찾았다.

양폭산장은 설악동에서 올라가도 힘든 코스인데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 가는 길목이라 거쳐갈 수밖에 없다. 대청봉에서도 하산한다 하여도 쉽지 않은 코스이다. 그 대신 최고의 절경을 보여준다. 중청, 소청을 거쳐 희운각대피소, 무너미고개, 천당폭포를 거쳐 양폭산장에 도착한다. 죽음의 계곡을 거쳐 비선대로 내려와 신흥사와 설악동까지는 빠른 이들의 걸음으로도 종주 시간은 다섯 시간 이상이다. 초보자의 경우에는 시간 예측을 할 수 없다.

재학 중에 설악산으로 단체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남들은 운동화 차림이었는데 외제 등산화를 신은 그는 날다람쥐처럼 설악산을 누볐다. 그는 바람돌이였다. 산이 곧 놀이터이고 집이었다. 그의 설악산 사랑을 당시에 느꼈다. 설악산은 정말 좋은 산이다. 그렇지만 날씨가 좋을 때의 이야기이다. 너무 험하고 높아서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다.

EBS에서 근무하며 방송종료 후 방송되는 <애국가>의 장면을 촬영하러 설악산 대청봉을 오른 적이 있다. 백담사를 출발해 소청봉 봉정암을 올라 설악동으로 하산하는 강행군 코스이다. 카메라 삼각대를 짊어진 조연출은 실신 직전이었고 결국 다른 이가 삼각대를 맡았다. 설악산은 그 정도로 험하고 힘든 산이다.

정영 형은 정말 못 말리는 산악인이다. 재학 중에도 서울 근교의 산행을 즐겨하여 산을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설악산을 그 정도로 사랑하는 줄은 아무도 몰랐다. 나도 설악산을 좋아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도 정영 형이 그 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산을 좋아했던 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영 형은 명동의 YWCA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하산했구나 싶었다. 나는 결혼식에 참석하여 사진을 찍어주었다. 신부는 이대 산악부 출신으로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신혼살림을 차리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던 그가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로 뇌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성모병원으로 옮겨져 몇 개월 만에 깨어났다. 그리고 우리 곁으로 살아 돌아왔지만 아무래도 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었고 지방으로 내려가 소식이 끊겼다. 우리는 형을 다시 만나 술도 마시고 예전처럼 아무런 일 없다는 듯이 지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의 소식은 일체 들을 수 없었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가 없다지만 형의 경우는 특별했다. 행복한 날들의 이야기를 미처 듣지도 못하였는데 궁금하기 짝이 없다. 서서히 그의 죽음은 전설처럼 동문 사이에 퍼져나갔다. 그를 둘러싼 일화는 나도 모르는 여러 버전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딸 유경도 지금은 40세를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을 터인데 소식을 아는 이는 없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