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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 스토리] 술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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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 스토리] 술 ②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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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팔달문 시장에는 술 드시는 정조의 동상이 자리했다.
▲ 수원 팔달문 시장에는 술 드시는 정조의 동상이 자리했다.

정조 때 형성된 시장거리가 지금의 수원 팔달문 시장이다. 시장 한 켠 ‘불취무귀(不醉無歸)’글 소개비가 있다. 취하지 않으면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인데 정조시대 백성들이 술에 취할 정도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사자성어이다. 술꾼들이 좋아할 법한 글귀인데 그 옆에 정조가 술 드시는 동상이 자리했다. 무더운 여름이라면 이곳에 앉아 정조대왕과 대작하고픈 생각이 들 것이다.

나 역시 술을 말하기에 적잖은 내공을 쌓았기에 몇 자 적어본다. 그동안의 지론은 마실 수 있을 때 많이 마시라는 것이었다. <술은 눈물일까 한숨이랄까?(酒は涙か溜息か)>라는 엔카는 자기를 버리고 떠난 님을 그리며 술을 벗하는 가사이다. 그 외에도 숱한 술 노래가 만들어져 불리어지는데 술을 좋아하면 눈물을 쏟게 된다. 본인도 본인이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 얘기이다. 적당히 마시면 약이란 말도 있지만 그 적당히 라는 것처럼 어려운 것은 없다.

몇 개월 동안 못 만나 반가운 마음에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술이 술을 부르고 그야말로 백배사주가 된다. 같은 친구들끼리의 술자리라면 그래도 봐줄 만하다. 그러나 선후배가 같이 있는 자리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술자리라면 더 에티켓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에티켓은 취해 도망간지 오래이다. 이쯤이면 술판은 난장판이 된다.

술장사를 물장사라고 하는데 보통사람은 할 수 없는 직업이다. 술꾼 상대하기는 천하장사도 쉽지 않다. 친구 H는 말술을 자랑한다. 그나마 횡설수설 하지 않고 마셔도 마셔도 끄떡없다. 정말 대단한 주량인데 그도 사람인지라 자세히 보면 취해있다. 다행히 친구는 절대로 술을 강요 안한다. 그러나 대다수 술꾼들의 악취미가 같이 취하자는 것이다. 절대 혼자 취하지는 않겠다는 것인데 술 안마셨을 때는 성인군자인 사람이 그러는 것을 보면 과연 술은 대단한 음식이다.

그러나 어머님이 내주시는 대추술은 건강을 위해 마시는 술이고 장인어른에게 드리는 마오타이주는 장인의 건강을 위해 드리는 마음의 선물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마시는 와인은 사랑을 무르익히는 술이다. 땀 흘린 노동 뒤에 마시는 막걸리는 땀의 가치를 높여주는 힘의 근원이다. 그러나 쉼 없이 마셔대는 소주에는 어머니와 부인과 딸의 마음고생이 녹아있다.

친구 H는 흥남부두에서 고향을 떠나온 부모님과 거제도와서 살았다는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국제시장>과 닮았다. 그는 전직 대통령과 갑장인데 비슷한 유년기를 겪었다. 그는 대학입시로 서울에 와서 생활했고 대학 졸업 후 군 복무를 마치고 파리로 유학 가서 한국과 파리에 두 군데 화실을 두고 창작활동을 하였다. 뛰어난 재능에 유학을 통해 새로운 안목으로 서양화의 경지를 끌어올린 입지적인 서양화가이다.

그가 한창 때에는 소주잔이 식탁위에 놓인 적이 없는 두주불사의 주량이었다. 그래서 그와 한 잔 하려면 전 주부터 각오하고 컨디션 조절을 해야 했다. 그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자신의 작업에 몰두하였다니 그의 체력은 알아줄만하다. 실제로 젊었을 때 도 대표 아마추어 권투선수로 출전하였었다. 그런가 하면 기타 연주도 일가견이 있는데 한 가지 잘하는 사람은 다른 것도 쉽게 잘하는 것을 보여주는 끼가 분명 존재하는 것을 그를 통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천재라고 정의한다. H화백은 그런 점에서 분명 천재성이 있다.

그런 그를 요즘 들어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술을 끊었기 때문이다. 선배 C도 몇 년 전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끊었다. 그는 우리에게 기적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쫓아다니는 말은 술꾼이다. 과연 술이란 세긴 세다.

후배의 차를 타고 역삼동 영동전화국 앞에서 신호대기를 받은 후 서행으로 출발하는데 뒤에서 다른 차에 받혔다. 내려서 보니 상대 차 운전자는 만취상태였다. 곧 경찰차가 와서 역심지구대로 가서 그를 음주측정을 하니 0.165가 나왔다. 당장 면허취소 상태이고 운전자는 바로 구속되었다.

우리 차의 뒤 범퍼를 받았길래 망정이지 인사사고를 냈으면 면허취소 정도가 아니라 패가망신할 수준이다. “술을 많이 드셨냐?”는 질문에 많이 마셨다는 그는 이미 눈이 반쯤 감긴 상태였다. 어쩌다 대리운전을 안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에서 끝난 게 천만다행한 일이란 걸 그도 술이 깨면 느낄 것이다. 우중 심야의 음주운전, 절대로 안 될 일이다. 술 한 잔의 시작이 자신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구야! 지금부터 술 좀 줄이자.”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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