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3-29 12:25 (금)
[안태근의 탕!탕!탕!] 류관순 열사의 동상
상태바
[안태근의 탕!탕!탕!] 류관순 열사의 동상
  • 안태근
  • 승인 2021.06.15 13: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관순 열사 동상
▲ 류관순 열사 동상

류관순 열사를 모르는 한국인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3·1독립운동이 100년을 넘어서며 우리의 관심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분의 정신을 더욱 연구하고 있는가? 그분의 생애와 위대성은 알고나 있는가? 나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단 10분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교육의 탓으로 돌리기 전에 무관심한 우리의 태도가 문제이다. 우리와 정부는 그분을 알기 위해, 알리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살면서 여러 복잡한 상황으로 역사 과목이 수능에서 빠지기도 하며 정치인들은 역사의 존재 이유는 정쟁의 방편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만큼 중요한 과목은 없다. 영어, 수학이 중요하지만 국가를 잃고 민족이 해체되고도 중요한지 묻고 싶다. 어른들은 어른들의 역할을 하고 자서전을 통해 후손들에게 전할 말을 남긴다. 그러나 시대가 어수선해지면 어른들은 제 역할을 포기하고 자서전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역사가 중요한 것을 국민 모두가 안다. 자서전이 가문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도 어른을 뵐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알게 된다. 문득 단편적으로 남기신 구절 한 구절이 모두 소중한 말인 것을 알게 된다. 자서전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어른을 다시 불러낼 수는 없다. 역사는 기록이다. 기록한다는 것은 망각하지 않기 위함이다. 가르치지 않는 역사는 더 이상 역사가 아니다. 서론이 길어졌지만 오늘의 화두는 류관순 열사이다.

그 분의 동상은 서울 남산 자락의 국립극장 아래 남산2호터널 입구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녹음이 우거진 여름철에는 그분의 얼굴 뵙기가 쉽지 않다. 얼굴이 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 쉽다. 관심을 갖고 동상을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얼굴이 닮지 않은 것은 고사하고 모습과 동상의 상징성도 적다. 더구나 동상 아래의 ‘류관순 상‘이라는 문구가 시선을 끈다.

왜 그분의 동상 이름 뒤에는 의사나 열사 등의 호칭이 없을까? 어린 시절에는 누나라고만 배웠고 그렇게 불리웠는데 백 년이 지난 지금 그분의 이름 뒤에는 이제라도 당연히 열사 표기를 해야 한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3·1독립운동사에서 그분이 차지하는 비중을 본다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하나 뿐인 목숨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희구하였던 독립열사 아닌가? 다른 여러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빼고서라도 그분의 활동이 폄하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류관순 열사의 동상은 이전하거나 새로이 건립되어야 한다.

천안시청 내에 그분의 기념관이 있고 그분의 고향인 병천면에 류관순열사전시관이 교회 부속으로 있는 듯한데 열사에 합당한 규모는 아닌 것 같다. 지금이라도 번듯한 류관순열사기념관이 세워져야 한다. 그리고 열사 호칭을 홍보해야 할 듯하다. 그분의 기념사업회 활동이 안타까울 정도로 미약한데 작금의 현실에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정부의 인식 수준을 보는 듯하다.

류관순 열사의 동상을 지나면 수표교가 보인다. 수표교는 청계천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이전해 보존하고 있다. 그렇게 수표교는 지금도 남아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에서 팽겨쳐진 류관순 열사, 그 분의 동상을 새로이 제작하고 국회의사당 앞에 세우자. 아니면 청와대 광장 앞은 어떨까? 왜 그 자리에 앉아있는지 모르고 있는 무능한 정치가들. 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할 배짱 있는 독립소녀 류관순 열사 아닌가? 그분의 기를 받아 모두가 새나라 건설에 매진했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 안태근 회장(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 문화콘텐츠학 박사)
▲ 안태근 회장(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 문화콘텐츠학 박사)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