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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서울극장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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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서울극장 폐업
  • 안태근
  • 승인 2021.09.0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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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극장
▲ 서울극장

어제부(8월31일)로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 위치한 서울극장이 폐업했다. 16시 40분에 황정민 주연의 '인질'이 상영되었고 나는 15시 30분 상영작인 외화 '팜 스프링스'를 보았다. 캘리포니아 사막지대의 휴양지를 배경으로 한 성인 코믹물이다. 영화가 끝나고 이게 마지막이라니 먹먹해질 뿐이다.

그야말로 한 세기가 저무는 느낌이다. 극장에 상영관이 하나이던 시절, 지금은 복합상영관 일색이라 단일관으로 불린다. 서울 극장은 한국영화계의 산실인 충무로 아래의 종로3가에 위치한 대표적인 한국영화 상영관이었다.

서울극장의 전신인 세기극장은 1958년 국쾌남 세기상사 사장이 대한극장과 더불어 1960년에 개관하였다. 객석간의 간격도 비좁아 개봉관이 될 수 없었던 세기극장을 1978년에 곽정환 합동영화사 사장이인 인수해 서울극장으로 신장개업한 것이 1979년이다. 서울극장은 당시 최신식 시설을 완비하고 성황리에 오픈하고 그야말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산실이 되었다.

부근에 단성사를 비롯하여 피카디리극장이 자리해 신작을 보러오는 관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던 곳이다. 한강 이남의 강남이 개발되기 전 영화인들에게 이곳은 종교 성지 메카와도 같은 곳이었다. 그런 그곳에 단성사가 문을 닫고 피카디리극장 마저도 CGV극장이 들어오고 하나 남은 서울극장 마저 어제부로 문을 닫으니 영화인인 내게는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서울의 인구가 늘어나며 1989년 베니스, 칸느, 아카데미 등 3개관으로 상영관을 늘이고 국내 최초로 멀티플랙스 극장을 시도하였다. 2013년 멀티플랙스극장이 대세가 되자 무려 12개관으로 스크린 수를 늘렸다. 그리고 서울아트시네마와 인디스페이스가 각 1개관씩을 임대하여 운영해왔다.

당시가 서울극장의 최전성시대이다. 신상옥 감독이 없던 시절, 영화계의 큰 손으로 충무로의 대소사를 관장하던 때인데 패기 찬 모습과 입담으로 거칠 것이 없던 무렵이다. 영화계에 잘 나가던 이두용, 김호선 감독 등 모두 곽 사장과 질긴 인연이 있었다. 이두용 감독은 합동영화사의 태권도영화를 양산해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었고 김호선 감독은 대작 '애니깽'을 그와 공동제작했다.

1980년 5공 정권에 의해 봇물 풀리듯 규제가 풀리며 성인영화관이 생겨나고 에로티시즘 영화가 만들어졌던 시절인 1982년 정인엽 감독의 '애마부인'이 개봉되어 중년부인과 신사들을 설레게 했고 1986년 엄종선 감독의 '변강쇠'라 전대미문의 영화가 개봉되어 극장을 찾아온 아주머니들의 웃음보를 터뜨리는 걸 목격했었다.

흥행에 성공한 외화도 너무도 많지만 '네멋대로 해라'를 리메이크한 1983년 짐 맥브라이드 감독, 리차드 기어 주연의 '브레드레스'를 보고 나오며 극장 밖의 풍경이 춤추는 듯이 보였던 추억도 있다. 또한 2018과 2019년에 개최된 ‘짧고 굵은 아시아영화제’며 나의 지도를 받은 한국외대생들과 함께 ‘2019 HUFS 스마트폰영화제’를 개최했던 일들을 잊을 수 없다.

저마다 다르겠지만 서울극장하면 내게 떠오르는 건 남다르다. 조감독 시절 이곳의 주인이며 합동영화사 사장인 곽정환 사장이 내게 물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알 리 없는 내게 그는 프로는 일등만이 존재한다는 그럴듯한 말을 해주었다. 그는 일등을 추구했고 그렇게 살다가 2013년에 별세하였다.

그리고 채 10년이 안되어 그의 극장은 폐업하고 타인에게 팔렸다. 물론 코로나가 직접 원인이긴 한데 오늘이 이곳의 마지막 날이라니 창업보다 수성이 힘들다는 걸 실감한다. 서울극장이 없어지는 것은 단순히 영화관 한 곳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의 젊은 날 추억이 사라지는 것이다. 서울극장은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등재됐었다.

▲ 안태근 박사
▲ 안태근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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