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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탕!탕!탕!] 100년 후의 역사 기록을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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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탕!탕!탕!] 100년 후의 역사 기록을 생각해보자
  • 안태근
  • 승인 2021.09.15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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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왼쪽)과 이토 히로부미(오른쪽)
▲ 이완용(왼쪽)과 이토 히로부미(오른쪽)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같은 시대를 살며 대한제국을 망국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공작 정치로 악명을 떨친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은 비슷한 운명이었는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잣집에 양자로 들어가 성공과 권력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본인은 물론이고 나라의 미래와 국운을 망치고 만다. 대한제국은 일제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일제는 태평양 전쟁을 도발하고 원자폭탄 공격에 무조건 항복을 하고 만다.

공작이란 어떤 목적을 위하여 사전에 꾸미는 일로 좋은 의미는 아니다. 공작은 어차피 밝혀지게 되어있는데 시간이 흘러가면 진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사필귀정이란 옛말이 그래서 생겨난 것이리라. 이완용은 1905년 11월 18일, 학부대신으로 을사늑약의 체결을 지지하고 서명함으로써 을사오적(乙巳五賊)의 주동자로 매국노가 되었다. 조선통감인 이토 히로부미가 1907년 그를 내각총리대신에 앉히자 정미7조약을 공작하여 외교권을 포함한 나라의 모든 권한을 일제에 바친다.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사필귀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토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처단되었다. 그리고 이완용은 1909년 12월 22일, 이재명 의사에 의해 자격(刺撃)을 받아 폐를 다치고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결국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두 사람 모두 당대 권력의 수혜자로 권력의 실세가 되어 의롭지 못한 행위에 응당의 처단을 받은 것이다.

한때의 호강과 권력은 시기가 지나가면 무상하기 마련이다. 꽃이 지고 계절이 바뀌는 것과 똑 같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때에는 그럴 줄 모르고 또 알았다 하더라도 지키려고 발버둥 치다가 결국에는 패가망신하는 것이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걸어온 길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우리는 권력무상을 수없이 보아왔고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권력은 붙잡는다고 붙잡히는 게 아니고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하여도 결국 권좌는 바뀌게 되는 것이다. 재임 중의 치적은 간데없이 악덕은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려던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는 그들이 보인 악행으로 응당의 처단을 받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악인들의 말로이기에 당연한 것이다. 이름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죗값을 역사에 남긴다. 결국 그들의 후손은 조상에 대한 이름 석 자를 떳떳이 밝힐 수 없는 것이다.

요즈음 벌어지는 공작 정치를 보면 과연 역사는 흘러도 공작정치는 그치질 않는다는 것을 실감한다. 권력을 잡고 그것을 지켜내려는 의지는 처절하기 그지없다. 권력이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고 100년 권세를 누리려 하니 여러 가지 볼썽사나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요즘 때 아닌 수양딸이 화제이다. 그런데 수양딸 하면 이토 히로부미와 요화 배정자가 떠오른다.그녀는 권력자의 숨겨둔 내연녀였다. 왜 인간사는 이리도 똑같은지 모를 일이다. 원래 인간의 속성이라고 생각해본다.

100년 후 그들의 후손이 당대 조상들이 어떤 일을 하였는지 떳떳이 말 할 수 없다면 그처럼 불행한 일도 없다. 공작정치를 공정으로 알고 있는 자들의 말로가 어떠할 지는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의 말로가 보여주고 있다.

▲안태근 회장(안중근 뼈대찾기사업회)
▲ 안태근(문화콘텐츠학 박사,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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