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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탕!탕!탕!] 십이륙(10.26)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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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탕!탕!탕!] 십이륙(10.26)을 아는가?
  • 안태근
  • 승인 2021.10.26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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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12주기에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을 천명한 황기철 보훈처장
▲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12주기에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을 천명한 황기철 보훈처장

10월 26일을 아는가? 무엇보다도 내년 대선에 나선 분들에게 묻고 싶다. 어느 한 분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꽃 한송이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오전 10시에 남산에 자리한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는 비대면 실황중계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2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매년 가져오는 행사이지만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 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일명 우한폐렴)로 인해 소박한 기념식을 가졌다.

그래도 황기철 보훈처장이 참석하여 또 거창한 약속을 했다. “내년이 한중수교 30주년인데 중국과 협의하여 의사님의 유해를 모셔오려 한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은 없을 것이다. 올해가 의거 112주년이니 내년 3월 26일은 의사의 순국 112주기가 된다. 땅 속에 묻힌 안 의사의 유해가 과연 우리를 기다려주실지 의문이지만 유해가 있을지 없을지는 발굴해보아야 알 일이다. 안 의사의 유해는 꼭 발굴되어야 한다. 우리는 부디 후손된 의무를 저버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안 의사는 1879년생이다. 황해도 해주의 제2 갑부의 장손으로 태어나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분이었다. 당시 풍습대로 일찍 장가들어 귀여운 자식도 둘씩이나 있었다. 부친이 돌아가신 후 가산을 정리해 진남포에 삼흥학교를 설립하였고, 돈의학교도 인수하였다. 그것은 교육만이 살 길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28세 때의 일이다. 그러나 풍전등화 격인 나라의 운명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그는 무장 독립운동에 나서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대한독립의군의 자격으로 여러 전투를 치루었다. 때로는 승리하고 때로는 패하기도 하며 우여곡절을 겪으며 독립군 활동을 하던 그에게 이토 히로부미의 만주 시찰 소식이 들린다. 그가 어느 역에 내릴지는 알 수 없어 그는 우덕순과 조도선을 채가구 역에서 기다리게 했고 자신은 단독으로 하얼빈 역에서 기다렸다.

운명의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반, 이토 히로부미는 대륙 진출의 헛된 야망을 품고 기차에서 내렸다. 안 의사는 서두르지 않고 의장대를 사열하던 이토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아무것도 모르던 이토가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걸음을 옮기던 그때, 안 의사는 환영 인파속에서 나와 군대의 대열 사이를 비집고 나서서 이토를 향해 3발의 총격을 가한다. 총알은 이토의 가슴에 명중하고 이토는 68세를 일기로 머나먼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한다.

안 의사가 이토를 쏜 이유는 열다섯 가지에 이른다. 첫째, 한국의 민황후를 시해한 죄. 둘째, 한국 황제를 폐위시킨 죄. 셋째,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맺은 죄. 넷째,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죄. 다섯째, 정권을 강제로 빼앗아 통감 정치 체제로 바꾼 죄. 여섯째, 철도·광산·농림·산지를 강제로 빼앗은 죄. 일곱째,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하여 경제를 혼란에 빠뜨린 죄. 여덟째, 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죄. 아홉째, 민족 교육을 방해한 죄. 열째,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키고 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죄. 열한 째, 한국사를 없애고 교과서를 모두 빼앗아 불태워 버린 죄. 열두 째,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열셋째, 현재 한국과 일본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한국이 아무 탈 없이 편안한 것처럼 위로 일본 천황을 속인 죄. 열넷째, 대륙(중국)을 침략하여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열다섯째, 일본 천황의 아버지를 죽인 죄이다. 참으로 죄 많은 이토의 삶이다.

일본의 남쪽 바다 앞 야마구치현 죠슈번에서 태어나 먼 바다를 바라보며 침략의 꿈을 키운 자가 받은 응분의 댓가는 총살이다. 31살의 젊은 청년 안중근, 대한독립의군 안중근이 이 일을 해냈다. 이 역사적인 오늘 기념식에서 ‘안중근 의사의 노래’가 아쉽다. 순국일에는 불리지만 의거일에도 불려야 한다. 학교에서 안 가르쳐주니 아무도 모르는 노래가 되었다. 노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기억해야 한다.

▲안태근 회장(안중근 뼈대찾기사업회)
▲ 안태근 회장(안중근 뼈대찾기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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