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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습니다] 배우 신일룡의 영화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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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습니다] 배우 신일룡의 영화들 ②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5.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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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신일룡 배우에게 '한국영화100년사'를 증정하는 필자
▲ 2013년 신일룡 배우에게 '한국영화100년사'를 증정하는 필자

신일룡 배우의 필모그래피는 한국영상자료원 기록에 의하면 59편이다. 그리고 등록되지 않은 홍콩 및 인도네시아의 영화가 몇 편 더 있다. 그의 한국영상자료원 기록은 다음과 같다.

황진이 (1986)

미스김 (1985)

낮과 밤 (1984)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1984)

외박 (1983)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1983) - 윤보

밤이 무너질 때 (1983)

애마부인 2 (1983) - 상현

적도의 꽃 (1983)

일송정 푸른솔은 (1983) - 이범석

아벤고 공수군단 (1982) - 오일규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1982)

애인 (1982)

경의선 (1982)

불새 (1980) - 영후

당산대형(신) (1977)

심판자 (1976)

아라비아의 열풍 (1976)

신설 (1974)

달래 (1974)

행운 (1974)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1974)

잊을 수는 없겠지 (1974)

맹물로 가는 자동차 (1974)

토요일밤에 (1974)

일요일의 손님들 (1973)

청춘 25시 (1973)

동풍 (1973)

깊은 사이 (1973)

육군사관학교 (1973)

애인교실 (1973)

석양에 떠나라 (1973)

똘똘이 해상특공대 (1973)

특별수사본부 배태옥 사건 (1973)

가버린 사랑 (1973)

증언 (1973)

호랑이장군 (1973)

축배 (1973)

죽어서 말하는 여인 (1973)

그 얼굴에 햇살을 (1973)

삼일천하 (1973)

서울의 연인 (1973)

여로(속) (1973)

비원 (1973)

생사의 탈출 (1973)

황소타고 시집왔네 (1973)

섬개구리 만세 (1972)

청춘교사 (1972)

정과 정 사이에 (1972)

인왕산 호랑이 (1972)

특공외인부대 (1972) - 정계빈

총각선생 (1972)

평양폭격대 (1971)

이조괴담 (1970)



다음은 희귀작으로 알려진 그의 출연작들이다. 1972년작 <인왕산 호랑이>는 일제강점기 한국인과 일본 무도인들의 대결이다. 일본의 무도인들이 한국의 전통 무도인 택견을 없애기 위해 택견 도장을 습격하여 수련생들을 죽이고 택견의 고수인 인왕산 호랑이라 불리는 청운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인왕산 호랑이는 맹인 안마사로 위장하여 일본인 앞잡이인 나왕재의 소굴로 잠입한다. 이유는 나왕재가 무예도보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동생을 찾아온 일룡은 동생을 범한 일본인 무술고수와의 대결에서 눈 부상을 입고 맹인이 된다.

동생의 극진한 간호로 부상을 극복한 그는 인왕산 호랑이와 함께 무예도보지를 놓고 일본인들과 목숨 건 한 판 대결을 벌여 책을 지켜낸다. 당시의 정서로는 이런 스타일의 구성이 흔했다. 주요 인물 설정은 정의를 지키려는 주인공, 그를 둘러싼 순정가련형의 여인들, 악당 고수의 설정이다. 훗날 만들어지는 태권액션영화의 설정 또한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973년작 <동풍>은 한진흥업 제작, 윤삼육 각본, 이신명 감독, 정광석 촬영, 신일룡, 오지명, 이대엽, 윤소라, 제임스 쿡 출연이다. 이소룡 영화의 흥행 소문이 나자 한국에서 기획 제작되었다. 주인공은 이소룡에 대항마로 신일룡이 캐스팅되었다. 그는 이미 장일호 감독의 <인왕산 호랑이>로 검증된 바 있는 액션스타였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제임스 쿡까지 초빙해 제작되었다. 내용은 세 사람의 고아원 출신 남자들이 성인이 되어 범죄자와 형사가 되어 겪는 갈등구조이다. 이신명 감독으로서는 한국형 이소룡 액션영화를 꿈꾸었을 것이다.

1974년작 <증언>은 영화진흥공사 제작, 김강윤 각본, 임권택 감독의 전쟁영화이다. 신일룡, 김창숙 주연으로 윤일봉, 강민호, 김희라, 황정순, 이순재 등 당시 대한민국의 유명 배우들이 총출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일룡은 소대장으로 출연하며 전형적인 군인상을 보여준다. 반공을 메시지로 군부대의 전격적인 지원과 미니어처 촬영 등 당시 최대의 제작비를 투입한 국책영화로 제작되었다. 당대를 대표하는 전쟁영화로 한국전쟁 초기부터 서울 수복까지를 한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1977년작 <심판자(귀계쌍웅)>는 홍콩의 골든하베스트사와 한국의 화천공사 합작으로 신고되었지만 홍콩의 오리지널 영화다. 줄거리는 기자인 장양민(신일룡)이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듣고 선배인 윤 형사(홍성중)의 충고도 뿌리치고 사실 파악을 위해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직접 홍콩으로 가서 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인도네시아를 가기 위한 설정인지 갑작스러운 석유 시추 설정으로 사건은 총격전 영화로 바뀐다.

이 영화는 정창화 감독이 홍콩에서 감독한 영화이지만 국내의 화천공사가 합작영화 기준에 맞추어 재구성한 위장합작으로 수입된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 더빙조차 낯설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사 목록에 골든하베스트, 화천공사 합작영화로 우상호 원작, 장천호 각본 그리고 정창화, 나유 공동감독으로 신고되었다.

<여방절판(푸크란 베란타이/Endless Fight)>은 1977년 인도네시아의 푸아드 샴술 감독작이다. 신일룡 배우가 무술감독까지 맡았고 우리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데비 신시아 듀이(黛比.新徳薇) 외에 인도네시아 배우들이 거의 출연하였고 왕도, 최남현, 박동룡 배우가 특별출연했다.

신일룡 배우가 홍콩에서 활동 중 인도네시아에 초빙되어 그곳에서 촬영한 영화이다. <귀계쌍웅>에 출연하며 그곳에서 알려졌기 때문이고 후반작업은 홍콩에서 하였고 한국 로케이션까지 했다. 권선징악의 액션영화인데 설경의 한국도 소개되며 총 맞은 여인을 안고 떠나가는 엔딩이다.

신일룡 배우는 한국영화사100년사에서 보석 같은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타국을 오가며 그와 같이 부각된 배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국내의 화제작은 물론이고 그 외 많은 출연작들도 팬들에 의해 꾸준히 회자되며 관심을 받고 있다. 그의 때 이른 별세 소식이 팬들에게 더 안타까운 이유이다.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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