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룡 배우는 1986년에 샤브샤브 요리전문점인 몽고리안을 오픈했다. 이어 체인점이 해마다 하나씩 늘어나며 호황을 맞았다. 그러면서 대중에게서 차츰 멀어져 갔다. 출연작 제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결국 두 해를 건너뛰어 1989년에 전세권 연출의 KBS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에 출연을 결정한다.
<바람과 구름과 비>는 신일룡 배우가 첫 출연한 TV드라마이다. 조선일보에 연재한 이병주 작가의 전 10권의 동명소설을 극화하였다. KBS 2TV 월화드라마로 50부작이 1989년 10월 9일에 첫 방영을 하여 1990년 3월 27일에 종영하였다. 드라마는 영화와 속성도 다르고 연기의 메커니즘도 다르다. 따라서 영화배우로서만 활동하던 그로서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김흥기, 김청, 노영국, 나한일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시청자들의 기대도 컸다.
그러나 드라마는 회를 거듭할수록 재미나 시청율 모두 지지부진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청자를 몰입시킬 수 있는 스토리와 그것을 표현하는 배우의 진정성이 살아있는 연기가 시청자들에게 와 닿지 않은 것이다.
대하 사극은 KBS가 매년 기획하는 간판 프로그램이다. 이 드라마는 스토리가 문제라기보다는 배역의 문제라는 말이 돌았다. 그리고 드라마의 시청율이 저조하게 되자 자연 주인공인 신일룡에게로 화살이 돌려졌다. 조선조 말 국운이 기울어 가던 무렵, 난세를 구할 수 있는 능력자의 역할이었다. 캐스팅이야 적역이었고 신일룡 배우의 2년 만에 TV 컴백이라 화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연예계에서 마음이 떠난 그에게 이 드라마는 너무 대작으로 감당이 안되었다. 주인공의 대사는 두 페이지를 넘기 일쑤였고 스튜디오에서 녹화되는 현장은 답답하기만 하였다. 긴 대사는 탤런트 누구에게나 고역이지만 능수능란하게 해내는 것이 바로 프로이다. 신 배우는 자신이 설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고 갈수록 녹화가 괴로워졌다. 많은 대사는 물론이고 수염붙이고 출연하는 것도 못마땅했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닌지 자신의 개성을 보여줄 구석이 없었다. 그는 운전기사에 커닝(cunning) 할 프롬프터 페이퍼를 들고 있으라고 하며 연기를 이어나갔다. 이를 보다 못한 전세권 PD가 부조정실 문을 열고 나와 신 배우에게 경고성 멘트를 날렸다. 신 배우 역시도 지지 않고 긴 대사를 직접 해보라며 맞받았다.
이미 마음이 떠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20여 년의 연기생활이 짧은 세월은 아니었고, 그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었지만 그에게 연기는 더 이상 목표가 아니었다. 그는 이 드라마를 끝으로 연예계에서 은퇴를 하게 된다. 연기생활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에 그의 비즈니스는 너무 커졌고 더 이상 출연료가 아쉬울 리 없었다. 스튜디오를 나서는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