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는 조카 해룡의 이야기이다. 해룡은 승현 형의 장남으로 이민 2세이며 1988년생이다. 달라스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UCSD(캘리포니아 주립대 샌디에이고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삼성에 입사하여 매니저로 근무 중이다. 조카는 34살인데 영어와 한국어 두 언어가 가능해 졸업하면 본인의 희망대로 앞으로 큰일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조카는 18살 때인 2006년에 방한하여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미국감독과 유창한 영어로 통역을 맡아주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한국을 방문하였는데 차츰 한국이 좋아졌단다. 처음엔 복잡하고 많은 사람에 적응이 안 되어 돌아가고 싶었다는데,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오고 싶다고 한다. 당시의 방문 비용도 본인이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마련했단다.
2007년에도 귀국했는데 교회 여름학교의 영어강사 자원봉사자인데 3주 일정이 짧다고 더 있기를 희망하니 한국에 정이 든 것 같다. 졸업하고 한국에서도 근무하고 싶다고 하는데 비록 국적은 미국이지만 커가면서 한국인화 되어 가는 것 같아 곁에서 보기에 좋았다.
재외동포가 700만 명을 헤아리는 시대가 되었다. 그들은 비록 몸은 외국에 나가 살지만 마음은 고국에 와있다. 나가 살면 애국자가 될 수밖에 없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같은 민족이고 한민족이다. 70세 고령에도 고국을 찾아오는 사할린 동포의 마지막 한 마디는 “고국에 뼈를 묻고 싶어서...”이다. 어쩔 수 없는 회귀본능이다. 미국에 살더라도 가능하면 한국에 가까운 서부지역으로 몰리는 현상도 이와 비슷한 것 아닐까?
조카는 예전에 한국 학교를 체험하고 싶다 하여 모 학교에서 청강을 한 적도 있다. 물론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인기짱이었다. 미국에 가서 느낀 것이지만 미국 학생들은 유순하고 밝다. 학교에서 야간자율 학습시간 없고 휴일이면 교회에 모여 스포츠를 즐기며 노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행복한 삶을 사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또래의 한국학생들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네 학생들은 학원에 가서 밤늦게 귀가를 한다. 안 시키면 그만이라지만 싫으면 가지 말라고 해도 본인 스스로 가방 들고 학원으로 향한다. 안가면 뒤처지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도 물론 과외세대이고 학원도 줄기차게 다닌 세대이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모진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놀며 슬슬했던 기억인데 요즘 아이들처럼 공부했다면 1등도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UCSD로 유학 간 한국학생이 현지 학생보다 공부를 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아이들에겐 아이들 나름대로의 삶을 즐길 권리가 있다. 우리 학생들에게 보다 폭 넓은 자기계발의 시간을 주고 취미와 봉사활동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래서 학교나 학원보다 더 넓은 세상이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스스로 깨우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의 인생을 스스로 찾아가게 하고 본격적인 공부는 대학에서...!!” 하지만 우리 사회의 정서상 자기계발 학원과 취미학원 나아가 봉사학원까지 생겨나 또 학생들을 옭아맬 것이다. 당시 일 년 만에 다시 만나 대학생이 된 조카를 보며 문뜩 든 생각이었다.
해룡은 작년에 한국계 2세 여성을 만나 올해 6월 6일에 아들을 낳았다. 조카 세대는 부모들이 보기에 너무 욕심이 없다. 부모세대는 자식을 강하게 키우려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자식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불안정한 생활에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려는 아버지 세대와 안정된 환경에서 자란 차이이다.
교회에서 있었던 아버지의 영결식에서 했던 조카의 조사이다. “아빠는 영어를 잘 못했고 자신은 한국말을 정확히 못해서 서로 소통이 안 되어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세대차가 있어서 아빠에게는 NO가 안 되었다. 무조건 YES여야 했는데, 지금 와서야 성실하게 일만하려고 했던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카의 인생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