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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글로벌스타 권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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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글로벌스타 권영문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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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의 '용소야'에 출연 중인 성룡(왼쪽)과 권영문(오른쪽)
▲ 1982년의 '용소야'에 출연 중인 성룡(왼쪽)과 권영문(오른쪽)

그는 한국보다 해외에서의 활동이 더 많았던 영화인이다. 무술배우 권영문은 1944년 7월 26일 일본 규슈 오무다라는 곳에서 권홍우와 최갑조 사이에서 3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광복 후 그의 가족은 경주에 정착하여 그는 황남국민학교, 문화중학교, 경주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태권도 특기생으로 동아대 체육학과 입학한다. 그는 이미 6살 때 당수도에 입문하였고 당시 경주에서 촬영한 <논개>, <화랑도> 등의 영화에 아역배우로 출연하였다.

그의 끼는 이미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라는 아동연극을 공연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운동에 더욱 치중했고 한국전쟁 후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하였고 대학시절에는 청도관 및 경찰 사범을 지냈고 1965년 제46회 전국체전에서 고기일반부 팬텀급(58~62kg)급에서 우승하였다. 군 시절에는 태권도 교관을 지냈고 화천에서 청도관 사범을 지냈다. 제대 후 춘천에서 '대한호신무도'를 창시하였고 1969년 상경하여 남대문 국민학교와 미동국민학교 시범단을 지도하였다. 당시 순금 한 냥의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국기원 개관 시 어린이, 성인, 여성 시범의 지도사범을 맡았고 세계태권도대회, 아시아태권도대회 국제심판을 맡았다.

영화계 정식 데뷔는 남대문국민학교 시절인 1970년 한진흥업에서 제작한 합작영화 <정도>이며 동시에 촬영된 <협기(전북국)>에서 무술감독을 맡는다. <정도>는 한국 측 배우로 방수일이 출연했고 홍콩 측에서 백표, 진홍열(첸훙레) 출연했다. 이들은 합작영화 외에 두 편의 영화를 더 찍어서 갔다 한다.

그후 이두용 감독의 <용호대련>에서 무술지도를 맡았고 <돌아온 외다리> 이후 무술감독 및 악역으로 출연하였다. 한용철(챠리쉘)의 데뷔는 한용철이 디트로이트에서 살며 미국 태권도 대표선수로 입국하자 그가 주선하여 합동영화사에서 데뷔하게 되었다고 한다. .<파라문>에서는 프랑스에서 사범을 하던 이관영의 상대역으로 출연하였다.

이후 홍지운 작가가 쓴 <죽음의 승부>에 바비김과 황정리와 출연하였는데 이 영화가 당시 흥행에 성공하였고 <대적수>와 <귀문의 왼발잽이> 두 편을 영월에서 동시에 촬영하였다고 한다. 그후 <대련의 해당화>, 이혁수 감독의 <천하의 여권>에 임은주와 함께 출연하였다. 1976년 황풍 감독작이며 홍금보가 출연한 홍콩과의 합작영화 <사대문파>에 출연을 하였다. 그리고 남미의 콜롬비아로 가서 1년간 태권도 사범을 하며 영화활동 공백기를 갖는다.

다시 홍콩으로 돌아왔을 때는 성룡 전성기로 <용소야>를 촬영 중이라고 했다. 그는 다짜고짜 골든하베스트 사장인 레이몬드 초우를 만나 이력서와 영화 출연사진을 주어 다음날 바로 캐스팅되어 <용소야>에 출연하게 된다. 당당한 그의 배짱을 볼 수 있는 에피소드이다. 그는 당장 제2의 브루스리로 알려져 나유 감독작에 출연키로 했으나 나 감독이 사망함으로 인해 계획은 무산된다.

그후 유가량 감독의 <장패>에 출연하고 황정리와 공연한 <영웅(영 히로)>는 외국인 최초로 주인공을 맡은 영화이다. 그리고 왕관총, 고비 감독의 미국, 대만, 한국의 합작영화 <황색의 피부>에 출연한다. 당시 미국의 백상기 관장이 미국 영주권 을 받아주었다. 포학례 감독의 <만인참>에 출연 후인 1983년 그는 LA에 도장을 개업하고 '세계무술영화협회'을 시작한다.

그리고 박우상 감독의 <차이나타운(닌자 터프)>에 출연하는데 이 영화는 북미전역에 개봉된 최초의 한국영화이다. 이때 그가 운영한 선셋웨스턴의 2층짜리 체육관에는 700여 명이 수련생이 있었다. 당시 그는 미 영화사에서 무술감독 제의를 받았으나 제작, 각본, 감독, 주연의 <밤의 그림자>를 촬영하였는데 안타깝게도 제작예산 문제로 결국 제작 중단되었다. 3~40분 분량의 이 필름은 지금도 회상 장면으로 사용 가능하다며 완성을 계획 중이다.

그는 1984년 블랙댄싱 대회에 찬조 출연하였다가 1위를 하기도 했는데 그의 타고난 끼는 다방면으로 표출되었다. 1992년에는 미국마술협회원이 되어 1994년에는 sbs의 <마술과 무술>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그런가 하면 송재철 관장의 사부인 최대길 관장에게서 차력을 전수받기도 했다. 그는 한마디로 종합 엔터테이너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각종 무술대회에서 받은 상패 외에 각종 행사 및 봉사 활동으로 지금까지 받은 상장은 2천 개이고 상패만 천 개, 트로피만 500개이다. 보통사람의 기준으로 상상키 어려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지금까지 활동기록을 담은 DVD를 활용하여 각종 교육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한 연예사업을 구상중이다. 그의 창의력은 이제 비지니스 아이디어로 창출될 듯하다.

▲ 2015년 미국의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배우 권영문(왼쪽)과 필자
▲ 2015년 미국의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배우 권영문(왼쪽)과 필자

나와는 2014년 12월에 처음 만나 귀국할 때마다 연락을 주고 만났다. 2015년 1월 25일 제50회 세미나에 출연 이후 수없이 세미나에 참가해 주었고 급기야는 2015년 2월에 미국으로 가서 그를 만나 미주 지역에 사는 한국영화인 및 이소룡의 벗인 댄 이노산토(Dan Inosanto)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2017년 11월 26일, 제83회 이소룡 세미나에 출연하여 내게 세계무술연맹 태권도 명예7단 증을 수여해주었다. 남이라 생각 않고 나서는 동지 의식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 2017년 11월 26일 제83회 이소룡 세미나에 초청되어 배우 권영문(왼쪽)은 내게 태권도 명예7단 증을 수여해주었다.
▲ 2017년 11월 26일 제83회 이소룡 세미나에 초청되어 배우 권영문(왼쪽)은 내게 태권도 명예7단 증을 수여해주었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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