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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세상이야기] 참척의 아픔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 가장 중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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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세상이야기] 참척의 아픔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 가장 중죄다!
  • 최기영
  • 승인 2014.10.03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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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문제로 부모를 살해한 패륜범의 소식들이 이따금씩 뉴스로 보도될 때마다 “정말 말세구나!”싶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어찌 금수만도 못한 행동을 하고도 떳떳하게 살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배은망덕하고 흉악한 사람의 비유로 '효경(梟獍)'이란 단어가 있는데, 이는 어미 새를 잡아먹는다는 올빼미와 아비를 잡아먹는다는 짐승이라는 본디의 뜻을 가진 말이다.

이와는 상반된 개념으로 '자오(慈烏)'란 단어도 있는데, 은혜 갚음할 줄 아는 새라는 뜻으로, 까마귀를 달리 일컫는 말이다. 이를 다른 말로는 '안갚음'이라고 한다.

중국 이십오사(二十五史) 중의 하나인 《당서(唐書)》의 기록에 의하면, 까마귀는 새끼가 깨면 60일 동안 먹이를 물어다가 먹이는데, 그 까마귀가 자라나면 역시 60일 동안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어, 길러 준 은혜에 보답한다고 한다. 이것을 '돌이킬 반'자에, '먹일 포'자를 써서 반포(反哺)라하며, 우리에게 유명한 고사인 반포지효(反哺之孝)의 유래이기도 하다.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는 예부터 부모의 은혜와 더불어 스승의 은혜와 나라님의 은혜를 중시해왔는데, 현실은 전혀 그러하지 못하다. 참으로 통탄해 할 일이다. 나라의 근간이 뒤흔들리고 상하와 좌우의 구분을 못하게 됨으로 인해 국가적 위기의 처지에 놓인 가장 큰 원인은 한마디로 교육의 뿌리가 썩었기 때문이라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 뿌리에서 양질의 양분을 흡수하지 못하는 나무한테 어찌 훌륭한 실과(實果)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 옛날 아주 먼 옛날, 한 젊은이가 고봉준령(高峯峻嶺)으로 유명한 적악산(치악산의 옛 이름) 자락을 넘고 있었는데, 커다란 먹구렁이가 장끼 한 마리를 휘감아 집어삼키려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젊은이는 재빨리 등 뒤의 활을 꺼내 뱀을 겨누어 쏴 죽이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장끼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어둑어둑해진 날이 완전히 저물려하자 젊은이는 서둘러 가던 길을 재촉하였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저 멀리 인가 한 채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내달려 대문 앞에 서서, “이라오너라” 하니, 깊은 산 속에서 보기 드문 예쁜 처자가 나와 젊은이를 친절히 안내했다.

심산을 헤매느라 지쳤던 젊은이는 금방 곯아 떨어졌고, 한참 후 무엇인가가 옥죄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커다란 먹구렁이가 자신의 몸을 칭칭 감고는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까 산중에서 네놈의 화살에 맞아 억울하게 죽은 뱀의 아내이다. 나와 내 남편은 하늘에서 큰 죄를 지어 인간들의 세상으로 내쳐졌고, 용이 되어 다시 승천하려면 땅에서 뱀으로 천년을 살아야한다고 해서 그 긴긴 세월을 서로를 의지하며 보내왔는데, 오늘이 바로 꼭 천년이 되는 날이다. 그런데 네놈이 내 남편을 죽였으니, 나는 너를 죽여 내 남편의 원수를 갚고 새벽을 알리는 종이 치기 전에 용이 되어 승천을 할 것이다.”

무서운 기세로 젊은이를 잡아먹으려하는 순간, 어디선가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젊은이를 잡아먹으려하던 뱀은 급히 도망을 갔고, 젊은이는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동이 트고 젊은이는 간밤에 종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가보니, 그곳에는 어제 목숨을 구해줬던 꿩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었다.

젊은이는 그곳에 절을 세우고 중이 되었다. 이 절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200미터)에 있는 사찰인 강원도 원주의 '상원사(上院寺)'이다.

사람들은 또 그 뒤부터 적악산(赤岳山)을 '雉, 꿩 치'자에 '岳, 큰 산 악'자를 써서 치악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물론 사실의 근거 없이 그저 민간에서 구전되어 온 전설일 뿐이다. 하지만 이 짤막한 이야기가 만물의 영장인 우리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는 가히 작지 않을 것이다. 인간도 배은망덕을 밥 먹듯 하는데, 비록 미물이지만 자기의 목숨을 구해 준 것에 대해 죽음으로라도 보은을 한다는 뜻 깊은 가르침을 내포하고 있는 뜻 깊은 전설인 것이다.

보생이사(報生以死). 즉, 생명의 은혜는 목숨 바쳐 보답하고, 복사이력 인지도야(服賜以力 人之道也). 즉, 베풀어주심에는 힘으로써 보답함이 인간의 도리이다.

세월호참사와 시작된 둘로 갈라진 갈등의 고리로 인해 나라 전체가 정지된 상태인데 수도 서울의 중심부인 서울시청 본관 한복판에 붙어있는 홍보판은 사건이 난지 5달이 훨씬 넘은 오늘에도 < 희생자들이 마지막 한 분까지...부디 살아 돌아오라 >고 써 붙여 있다.

평소 같았으면 수 십번은 바뀌었어도 바뀌었을 홍보판의 내용이 아직도 그대로인 까닭은 이곳이 안산시도 아닌 서울시장님의 결연한 굳은(?) 의지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될 정도로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서울시장님(?)께 서울시민으로서 감히 한마디 조언합니다. 1000만 서울시민을 포함한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세월호사고로 죽어간 불쌍한 희생자들을 들먹여 정치적 이득을 보려함을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호참사는 역대 어느 사고보다도 이미 범국민적 애도가 있었고, 아직도 그들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수가 무려 5000만에 가깝습니다. 그들의 죽음을 일부러 헐뜯고 욕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말입니다. 일부 못된 정치인들과 거기에 합세한 정신나간 유가족 몇명이 국민 모두를 끝도 없는 나락으로 몰고 가는 현실이 정말 문제입니다. 애도의 진심은 이미 완전히 퇴색되고 이제는 이념적 대립의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사건으로 달려든 악덕 정치인들의 농간에 결국 나라는 거덜나고 유가족들은 두 번 울게 될 것입니다.

참척의 아픔을 어디에다 비유하겠습니까?

가장 견디기 힘든 아픔을 가진 이에게 하루라도 빨리 과거를 잊고 현실로 돌아오도록 해야 바른 일이지, 괜한 걱정해 주는 척하며 그토록 지워내기 어려운 고통을 후벼 파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요?

당신의 표현대로 진정 시민을 위한 정치가라면 당장 홍보판의 내용을 바꾸세요. 안산시청 앞도 아닌 진도군청도 아닌 서울시청의 광장에다가 분향소까지 만들어 놓은 이유는 지금도 서울시민이 분향하러 안산이나 진도까지 가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함인가요?

분향의 기간도 기간이거니와 이치적으로도 전혀 맞지 않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함이 아닌 순수한 인정에 의한 것이라면 바로 얼마 전 조국을 지키다 장렬히 전사한 피끓는 젊은 천안함 장병들의 분향에도 똑같이 신경 썼어야죠.

참척(慘慽)의 아픔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 가장 중죄인 것을 반드시 명심하세요.

< 글. 한림(漢林)최기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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