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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세상이야기]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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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세상이야기]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 최기영
  • 승인 2014.10.04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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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던진 막말로 안 그래도 시끄러운 정국을 더욱 어지럽게 하고 있다. 아무리 달린 입이라 해도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 될 말이 있는 법인데,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것이다.

후당 때의 재상 풍도(馮道)는 '오조 팔성 십일군(五朝 八姓 十一君)' 즉, 다섯 왕조에 걸쳐, 여덟 개의 성을 가진, 열한 명의 임금을 섬긴 처세의 달인이었다. 그는 당나라가 망하며 오대십국시대가 열리는 과정에서 5개 왕조ㆍ8성ㆍ11명의 천자를 섬겨 30년 동안 고관을 지냈고, 재상을 지낸 기간이 무려 20년에 달했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현실정치를 펼쳐 새 왕조를 옹호하였는데 이를 두고 지조가 없는 정치가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지만 자신의 저서 《장락로자서(長樂老自敍)》를 통해 “자신은 황제를 섬긴 것이 아니라 나라를 섬겼다”고 말했다.

《신원사(新元史)》를 포함해 중국 이십오사(二十五史) 중의 하나인 《전당서(全唐書)》의 〈설시편(舌詩編)〉을 통하여 유명한 문장을 남겼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혀는 제 몸을 베는 칼이로다 /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어 두면 / 閉口深藏舌(폐구심장설)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 安身處處牢(안신처처우)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란 말은 세 치 혓바닥이 몸을 베는 칼이란 뜻이다. 즉, 쓸데없는 말을 함부로 하다가는 큰일을 그르치기 쉬운 법이니 항상 입조심하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을 두고 항상 '각하(閣下)'라는 존칭을 붙였었다. DJ 시절부터 각하라는 말 대신 대통령이란 직함 뒤에 '님'자를 붙여 '대통령 님'이란 존칭으로 쓰게 됐다.

한자말에는 상대방을 높이기 위해 상대방의 호칭을 직접 말하지 않고, 상대방이 거처하는 공간 명칭 다음에 아래 하(下)자를 쓰는 표현법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경복궁의 근정전을 쓴다하여 '전하(殿下)'라 불렀고, 조선조 인조 때부터 왕세손에 대해 각하란 호칭을 붙이도록 했다.

이후 각하란 존칭은 실제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때부터 쓰다가 해방을 맞고 대통령과 부통령, 국무총리, 부총리, 장관과 심지어는 육군 장군들에게도 다양하게 붙인 존칭이 되었다. 그러다가 박정희 대통령 때에 와서 각하란 존칭을 미국 대통령을 부르는 단어인 Mr. President와 같게 맞추어 오로지 대통령에게만 붙이게 하였다. 이어 전두환 대통령 때까지 본격적으로 쓰이다가 노태우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각하라는 표현을 금하게 했지만 차기 대통령인 김영삼 때까지도 공공연히 불러지다가 DJ정부 때에 각하라는 호칭은 거의 사라진 것이다.

심지어는 대통령이라는 직함도 아예 생략하고 이름만 부르는 것이 다반사가 되어버렸다. 존칭이란, 말 그대로 남을 공경하는 뜻으로 높여 부르는 것을 말한다. TV를 보면 사십도 안 된 연예계 선배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역시 상대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뜻에서 하는 표현이라 어색해도 상대를 고의로 폄하하는 상황보다는 차라리 보기에 낫다. 대통령을 두고 감히 년이니 놈이니 하는 무식한 사람들을 두고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가 이젠 위도 아래도 없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기성인들의 이런 행태를 보고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 수학공식 혹은 영어단어를 배우기 이전에 웃어른을 공경하고 남을 존중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나라가 바로 서게 될 것이다.

명심할지라. 지금 이 나라의 위기는 다름이 아닌 바로 이런 것들이다.

풍도는 군벌 정권의 혼란 시대에 5왕조(후당ㆍ후진ㆍ요ㆍ후한ㆍ후주)ㆍ11군주를 차례로 섬겨서 항상 재상의 지위를 유지했으므로 후세 사람들에게 무절조ㆍ파렴치한의 대표적인 인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난세에 처하여 민중 생활의 안정을 잘 보살폈으므로 사람들로부터 관후한 어른이라고 칭찬을 받기도 했다.

『 후주의 태조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어서 백성들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알았으며, 글도 제법 많이 읽은 사람이었다. 그는 인재를 중히 여기고 정치 개혁에 힘썼다. 그의 치세로 인해 5대시대의 혼란이 점차 호전되기 시작했다. 후주 초기에, 유지원의 동생 유숭은 태원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후주의 통치에 복종하지 않고 하나의 할거정권으로 남아 있었다. 역사상에서는 이를 북한(北漢, 10국 중 하나)이라고 한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후주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유숭은 거란의 요나라에 붙어서 요나라 군주를 '숙황제(叔皇帝, 숙부 황제)'라 부르고 자신은 '질황제(侄皇帝, 조카 황제)'를 자칭했다. 그러고는 요나라의 도움을 받아서 후주를 여러 번 공격했으나 그때마다 매번 패했다. 후주의 태조는 슬하에 아들이 없어서 시황후의 조카인 시영을 양자로 삼았다. 시영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능이 출중했으며 커서는 무예가 특출했다. 954년, 태조가 사망하자 시영이 황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세종이다.

세종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정이 아직 안정되지 못한 이때가 중원을 공격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북한의 군주 유숭은 자신이 모은 군사 3만에다가 요나라에서 빌려온 기병 1만여 명을 합쳐서 노주로 진격했다. 이 소식이 도성 변경에 알려지자 세종은 즉시 대신들을 불러놓고 대책을 의논하다가 '친정(親征)', 즉 자신이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출정하겠다고 했다. 세종의 결심이 보통이 아닌 것을 안 대신들은 만류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 늙은 신하가 앞으로 나서면서 세종의 친정을 반대했는데, 그가 바로 태사 풍도(馮道)였다.

풍도는 후당의 명종 대부터 재상으로 있었다. 그 후 나라가 네 번이나 바뀌었지만 여전히 재상이나 태사, 태부 같은 요직에 있었으며, 임기응변에 능한 자라 새 황제들은 모두 그를 등용하기 좋아했다. 세종은 풍도의 반대에 이렇게 말했다. “지난날 당 태종도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출정하여 마침내 천하를 평정하지 않았소?”

이에 풍도는 “폐하와 당 태종 중에 누가 더 영명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풍도가 자신을 얕잡아보고 이런 말을 하자 세종은 언성을 높였다. “우리의 군대는 강하오. 이런 강한 군대로 유숭을 치는 것은 태산으로 달걀을 치는 것과 같소.” “그렇다면 폐하께서는 자신을 태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풍도의 이 말에 노기충천(怒氣衝天)한 세종은 소매를 뿌리치고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한편, 조선 영조 때의 가인(歌人) 남파(南波)김천택이 역대 시조를 수집하여 펴낸 최초의 시조집 《청구영언(靑丘永言)》에도 작자미상의 이런 시조가 올라 있다.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남의 말 내하면 남도 내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음이 좋왜라

해석하자면, 내가 남의 말을 하니, 남도 내 말을 한다. 말이 말을 낳아 말 때문에 말이 많으니 말을 말아야겠다는 내용이다.

이 혀 놀림을 경계하고 조심한다고 해도 그리 쉽지만은 않음을 이르는 짧은 일화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 옛날 중국 북주에 하돈 이라는 장수가 살았다. 그는 싸움터에서 큰 공을 세웠는데, 받은 상이 작다고 늘 불만이었다. 그래서 조정을 원망하는 말을 하고 다니다 결국 미움을 받게 되어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하돈은 죽기 전 자신의 아들을 불러놓고 “이 아비는 세치 혀 때문에 죽는 것이니 잘 기억해 평생토록 말을 조심하라”며 송곳으로 아들의 혀를 찔렀다. 그 아픔과 상처를 간직해 평생 세치 혀를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훈계를 준 것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가슴에 새겨 말을 삼가고 행동을 신중하게 했다. 그러나 그 아들역시 벼슬이 높아지자 교만에 빠져 말을 함부로 하게 되고, 결국 황제의 손에 의해 직접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

우리는 흔히 유명 정치인들이 말을 잘못해서 견디기 힘든 일을 당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일러 '구설수에 오른다'고 표현하는데, 구설수(口舌數)란, 한마디로 말을 잘못해서 고초(苦楚)를 겪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수(數)'는 '운수'를 의미한다. 누구든 말이 많다 보면 실언(失言), 즉 말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쓸데없는 구설수에 오르지 않으려면 말을 아껴야 한다. 글이야 잘못 쓰면 고쳐 쓰면 되지만, 말은 한번 뱉고 나면 다시는 주워 담을 수가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 많음을 늘 경계했는데, 고대 희랍의 유명 정치가이자 웅변가인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는 “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고 말했다.

언필칭(言必稱), 말을 아끼자. 내 입안의 세 치 혓바닥이 몸을 베는 칼이다!

< 글. 한림(漢林)최기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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