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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 칼럼] 사람 팔자가 어째 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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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 칼럼] 사람 팔자가 어째 이런가?
  • 김동길 박사
  • 승인 2014.10.1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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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하에 태어나서 나의 인생의 봄철은 일본 놈들에게 시달리며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식민지에 태어나 사는 일이 얼마나 부끄럽고 고달픈지 모를 겁니다.

다행히도 해방을 맞았습니다. 본디 평양에 살았기 때문에 소련군과 함께 왕검성에 입성한 김일성이라는 자가 얼마나 고약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그 때 벌써 알았습니다. 한 때 평안남도 인민위원회의 부위원장 자리에 있다가 곧 밀려나 '혁명가 가족 후원회'의 책임을 맡았던 김유창 씨를 통해 북의 실정을 들었습니다. 그는 일제 하에 마치 사랑방에 드나들 듯 감옥에 드나들던 유명한 공산당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군의 남한 진주를 걱정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김일성에 대해 회의적이고 또 비관적이었습니다. 내가 월남한 뒤에 이 노인은 곧 숙청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빈손으로 평양역을 떠나 원산으로 가서 일박하고 기차 타고 철원까지 와서 거기서부터는 걸어서 연천‧포천을 거쳐 의정부로 하여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피난민 신세가 되어!

그러나 나의 인생의 여름 한철은 보람이 있었습니다. 대학에도 다녔고 미국 유학도 했고 대학의 전임강사로 출발하여 교무처장의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인생이 가을철에 접어들면서 파란만장한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나의 타고난 기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민주화의 투사가 되어, 직장에서는 쫓겨나고 15년 징역형을 언도 받고 안양교도소에서 죄수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실의 가을'이 내게 있어서는 '실의와 역경의 가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초겨울인 나의 60대에, 새로운 기회가 나를 찾아왔습니다. 나는 정치에 투신하여 서울의 강남(갑)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당하게 당선이 되었으나,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나를 대통령 후보로 출마케 한다는 당초의 약속을 어기고 정 회장 자신이 출마함으로 나는 정계의 고아가 되어, 아무 일도 못하고, 정계를 은퇴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실패작입니다.

'친북‧종북'이 날뛰는 이 한심한 현실을 바라보며, 나의 청춘의 꿈이 산산조각이 났음을 실감합니다. 사람의 팔자가 왜 이렇습니까?

▲ [글. 김동길 박사. 1928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출생하여, 연희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후 미국 인디아나 주 에반스빌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보스톤대학에서 링컨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학교 교수, 교무처장, 부총장을 역임하고 조선일보사 논설고문, 제14대 국회의원, 신민당 대표최고위원을 거쳐 현재 사단법인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과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길은 우리 앞에 있다>, <링컨의 일생>, <한국청년에게 고함> 등 80여권의 저서가 있다. 출처: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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