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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세상이야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 같지 않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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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세상이야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 같지 않도다
  • 최기영
  • 승인 2015.02.05 2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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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인 '입춘(立春)'이었다. 대체로 음력 정월에 들게 됨으로 새해를 맞이하여 갖가지 민속행사를 갖게 된다. 그 중 하나가 각 대문에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가 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뜻의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을 써 붙이는 일이다. 이것을 가리켜 '입춘첩(立春帖)'이라고 한다. 입춘방ㆍ입춘서ㆍ춘축ㆍ입춘축이라고도 부른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외에도 “부모는 천년을 장수하고 자식은 만대까지 번영하라”는 뜻의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산처럼 오래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이라”는 뜻의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란 글귀를 써서 붙이기도 했다.

입춘은 한마디로 말해 '긴 겨울이 지나 봄이 시작되는 문턱'이란 뜻이다. 하지만 말뜻과는 달리 엄동설한에 버금가는 매서운 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곤혹스러워 했다고 한다. 이런 입춘과 관련한 우리속담에 “입춘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 “입춘에 오줌독 깨진다.” 등이 있다.

입춘. 이름 그대로에서 느껴지듯 분명 봄의 절기이지만 입춘의 추위를 우습게보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격언이 아닐까싶다.

흔히 봄이 오긴 했으나 매서운 추위가 봄 같지 않게 느껴질 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을 쓴다. 오랑캐 땅에는 꽃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답지 않다는 뜻이다. 고달픈 인생살이를 비유적으로 일컬을 때 주로 사용된다.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도 없으니 /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저절로 옷의 띠가 느슨해지니 /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이는 허리 때문이 아니라네 /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위에 소개한 시는 중국 전한의 궁정화가 모연수란 자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초상화를 일부러 잘못 그려줌으로써 흉노족의 우두머리에게 시집을 가야했던 당대 최고의 미녀 왕소군(王昭君)의 심경을 당나라의 시인 동방규(東方叫)가 대변하여 시로 읊은 것이다. 봄이 와도 진정 봄을 느낄 수 없는 왕소군의 서글픈 심정을 묘사하였다.

위 시의 주인공인 왕소군을 포함하여 중국 역사 속에 전설적인 네 명의 미녀가 회자되는데,

첫 번째는 춘추시대 말, 월(越)나라의 최고의 미녀 '서시(西施)'이다. 눈살을 찌푸린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서시효빈(西施效嚬)ㆍ서시빈목(西施嚬目)은 서시가 살았던 마을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이 하도 뛰어나 같은 동네의 여인들은 무엇이든 서시의 흉내를 내면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서시가 지병으로 앓던 심장병의 통증으로 이따금씩 찡그리는 서시의 얼굴까지도 흉내를 냈다고 한다. 또한 서시가 가슴앓이를 한다는 의미의 서시봉심(西施奉心)이라는 말도 이러한 정황에서 유래되었다. 모두 본질을 망각하고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한다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오(吳)나라에 의해 패망한 월나라의 명재상 범려는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고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조국 월나라를 패망시킨 오나라에 대한 복수책으로 월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이라 손꼽히던 서시를 호색가인 오나라의 왕 부차에게 데려다 준다. 범려의 계략대로 서시의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 부차는 제대로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이에 오나라는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하루는 서시가 강가에 서있었는데, 맑고 투명한 강물이 서시의 아름다운 자태를 비추었다. “그 모습을 본 물속의 물고기가 그녀의 자태에 반해 헤엄치는 것을 잠시 잊고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하여 '沈' 잠길 침 자에 '魚' 물고기 어 자를 써서 '침어(沈魚)'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두 번째는 '초선(貂蟬)'이란 여인인데, 초선은 그 용모가 빛나는 달과 같았을 뿐 아니라 가무에도 능했다. 《삼국지(三國志)》에서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하기 위해 초선이 이용한 이른바 '미인계(美人計)'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이다. 초선이 미인계를 이용해 대사를 성사시킨 후 달밤에 뒷마당에서 왕윤이 무사하기를 달님에게 기원할 때, 왕윤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초선의 미모에 달조차도 구름 사이로 숨어버렸구나.”라고 하였다하여 '閉' 닫을 폐 자에 '月' 달 월 자를 써서 '폐월(閉月)'이라 불리게 되었다. 임금이 혹하여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정도의 미인이라는 뜻의 삼척동자도 다 알만치 유명한 경국지색(傾國之色)은 바로 초선으로부터 비롯된 사자성어이다.

세 번째는 당나라의 미녀 '양귀비(楊貴妃)'인데, 어느 날, 양귀비가 화원을 산책하다가 무심코 함수화란 꽃송이를 건드리게 되었는데, 함수화는 양귀비의 미모에 놀라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이에 현종은 “수화(羞花). 즉, 꽃을 부끄럽게 하는 아름다움”이라며 찬탄하고 그녀를 절대가인(絶對佳人)이라 칭했다. 이때부터 양귀비는 '羞' 부끄러울 수 자에 '花' 꽃 화 자를 써서 '수화(羞花)'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이후 현종은 양귀비에게 정신을 빼앗겨 나라를 돌보지 않게 되었고, 간신무리들의 농간에 나라의 정치는 부패하게 되었다. 양귀비는 나라를 어지럽힌 죄로 안사(안록산의 사사명)의 난 때 피난길에서 처형당했다.

끝으로, 네 번째 소개할 미녀는 오늘의 이야기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주인공인 '왕소군(王昭君)'이란 여인이다. 앞서 소개한 춘추시대의 서시ㆍ삼국시대의 초선ㆍ당나라의 양귀비와 함께 중국 역사의 4대 미녀로 지칭되고 있는 왕소군은 뛰어난 용모와 재주를 갖춘 남군의 양가집 딸로 태어나 16세에 한(漢)나라 원제의 후궁으로 들어갔으나, 단 한 번도 황제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었다.

당시 원제는 타고난 호색가였는데, 특이한 것은 수많은 궁녀를 궁에 들이고 자신이 직접 대면해 밤을 함께 보낼 후궁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궁정화가인 모연수란 자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 후, 초상화를 보고 그중에 제일 아름다운 여인을 골라 잠자리를 함께했다. 화공 모연수가 그린 화첩에서 후궁을 골라 불러들이자, 후궁들은 저마다 원제의 승은을 입어보려고 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쳤다. 그러나 평소 미모에 자신 있던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않았다. 모연수는 이를 괘씸히 여겨 왕소군 그림의 왼뺨에 검은 점 하나를 그려 넣었다.

당시 흉노(匈奴)의 침입에 고민하던 한나라는 그들과의 우호수단으로 자국의 여인들을 보내어 결혼시키고 있었다. 어느 날 선우(흉노가 그들의 군주나 추장을 높여 부르던 이름)인 호한야가 공주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러자 원제는 화첩에 그려있던 못난 후궁들을 데려다가 이렇게 말했다.

“선우께서 직접 고르시지요.”
그러자 호한야가 외쳤다.
“바로 저 후궁입니다.”
원제는 깜짝 놀랐다.
'내 여태 어찌 저런 미인을 몰랐을까?'

원제는 절세미인 왕소군을 실제로 보고 그 아름다움에 기겁한 나머지 호한야에게 혼인준비를 핑계로 사흘의 말미를 양해 받은 후에 그녀와 사흘 밤낮을 함께 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원제가 이런 상황을 수상히 여겨 세밀히 조사해본 결과 화공 모연수와 여러 후궁들 사이에 뇌물이 오갔던 전말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고 이에 모연수를 잡아다 바로 참수했다.

한편, 호한야와 혼인을 마치고 흉노국으로 가는 도중에 왕소군은 멀리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보고 고향 생각에 젖어 비파를 타게 되는데, 무리지어 날아가던 기러기들이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와 비파소리를 듣고 잠시 날갯짓을 잊고 땅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때부터 왕소군은 '落' 떨어질 낙 자에 '雁' 기러기 안 자를 써서 '낙안(落雁)'이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

왕소군의 이야기는 후세의 많은 문학 작품에 애화(哀話)로 윤색되었는데, 특히 시성(詩聖) 두보(杜甫)와 함께 중국 최고의 시선(詩仙)으로 추앙받는, 우리에게 이태백(李太白)으로 더 잘 알려진 이백(李白)이 지은 <소군원(昭君怨)>은 왕소군이 한나라 궁을 떠나 흉노의 땅으로 출발하는 때의 비애와 정경을 너무도 잘 묘사하였다.

소군이 구슬안장 추어올려 / 昭君拂玉鞍(소군불옥안)
말에 오르니 붉은 뺨에는 눈물이 흐르네 / 上馬涕紅頰(상마체홍협)
오늘은 한나라 궁궐의 사람인데 / 今日漢宮人(금일한궁인)
내일 아침에는 오랑캐 땅의 첩이로구나 / 明朝胡地妾(명조호지첩)

우리는 조국을 사랑하는 남달리 애틋한 마음으로 백성을 위해 오로지 제 한 몸 불살라 나라를 잘 이끌 것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 놓기만하면 대통령답지 않게시리 무엇에인가 금방 지쳐서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되니 조국의 앞날은 정녕 어찌 될 것이란 말인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그리고 또 믿었던 박근혜대통령 마저 지지하던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지금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갑자기 불어닥치는 엄청난 부귀영화의 바람이 아니다. 조금 허기지더라도 다함께 일궈 놓은 이 포근한 보금자리 안에서 서로 대면소통하고 다시 비상할 수 있는 큰 기회가 올 때까지 그저 모두가 웃으며 살고 싶은 소박한 행복을 갈구하는 것이다. 무릇 큰 마음을 가진 이라면 스스로를 좀 더 낮춰서라도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그 작은 무엇을 알아주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고는 절대 더 큰 비상은 아무런 의미도 가망도 없다. 이는 오랜 역사에서 배워온 사실이다.

춘래불사춘, 어느덧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 입춘이 왔지만 국민들이 느끼기에는 결코 봄이 봄 같지가 않다.

< 2015.02.05. 한림(漢林)최기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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