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7 03:22 (토)
中 장쩌민 사망…노태우 정부 시절 한국과 수교 맺어
상태바
中 장쩌민 사망…노태우 정부 시절 한국과 수교 맺어
  • 이가은 기자
  • 승인 2022.11.30 22: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고속성장' 이끈 제3대 지도자
자본가 포용하기로 하는 등 중국 정책에 막대한 영향
중국 수탈 역사의 한복판에서 태어나 고속 성장 이끌어
장쩌민 전 중국 주석
▲ 장쩌민 전 중국 주석

[한국공정일보=이가은 기자] 중국 공산당의 제3대 지도자였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30일 사망했다. 향년 96세.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CCTV 등 주요 언론은 장 전 주석의 별세를 애도하며 홈페이지 배경을 흑백으로 전환했다. 중국 공산당 주요 건물과 해외 공관에도 반기(半旗·조의를 표하기 위해 깃봉에서 한 폭만큼 내려서 다는 국기) 게양하기로 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중앙군사위원회는 이날 공동 성명을 통해 장 전 주석이 이날 낮 12시13분 상하이에서 별세했다고 전했다. 장 전 주석의 사인은 백혈병으로 인한 장기 기능 부전이다. 

장 전 주석은 개혁·개방에 따라 주요 사회세력으로 성장한 자본가와 지식인을 포용해야 한다 내용의 3개 대표 사상을 발표, 공산당 당헌인 당장(黨章)에 포함시키는 등 중국의 주요 정책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장 전 주석은 최고직인 국가주석(政)과 중국 공산당 총서기(黨),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軍)까지 겸임한 최초의 인물이다. 집권 기간은 마오쩌둥(27년) 다음으로 15년을 집권했다.

장 전 주석은 중국 개혁개방을 주도한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의 뒤를 이어 총서기로 선출됐다. 이후 1989년 중앙 군사위원회 주석, 1993년 국가 주석직에 오르며 중국 최초로 당(黨)·정(政)·군(軍)을 모두 장악했다. 장 전 주석은 2003년까지 중국 최고 지도자로 재임, 이후 후진타오 전 주석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장 전 주석은 은퇴 이후에도 상하이방(上海幇)의 원로 역할을 하면서 정계에 깊숙이 개입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 정치적 입지가 약화됐다. 

장 전 주석은 외교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는 1992년 8월24일에는 한국과 수교했다. 1995년에는 중국 지도자로서는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1999년에는 러시아과 국경문제를 해결했고, 1997년과 2002년에는 미국을 방문했다. 장 전 주석의 이런 개혁·개방 정책에 힘입어 중국의 경제도 급속히 발전했다. 

장 전 주석의 집권기간(1989~2003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는 1조 6900억 위안(199조 5900억 위안으로 성장했다. 중국은 장 전 주석 집권동안 연평균 약 9.4%의 성장을 했다.

장 전 주석은 시대에 파룬궁 탄압이 시작됐다. 장쩌민은 초기에는 파룬궁에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심지어 표창까지 수여했지만, 점차 파룬궁 수련자의 수가 공산당 당원 수를 넘어서게 되자 파룬궁 탄압을 지시했다는 주장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