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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영웅주의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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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영웅주의의 함정
  • 여상환 국제경영연구원 원장
  • 승인 2016.11.25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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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경신문=여상환 국제경영연구원 원장] 서부극의 대스타로 전 세계의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존 웨인」이 세상을 떠나자, 같은 영화배우 출신이었던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그는 영웅 없는 시대의 영웅이었다'고 했다.

'영웅시대'란 말은 소설가 이문열이 처음 만들어낸 말은 아니다. 영웅과 시대를 얽어놓은 단순한 복합명사가 아니라 역사상의 구체적인 어느 시대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온 말이다. 서사시라고 하면 으레 영웅시를 떠올리게 되는데, 바로 이 영웅시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시대로서 원시사회로부터 국가사회에 이르는 과도기, 좀 더 좁혀서 이야기하자면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영웅시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를 지칭한다.

이렇듯 영웅은 인물과 시대가 맞아떨어지면서 탄생한다. 그리고 영웅이란 이를 포장, 미화한 현란한 역사적 수사를 잠시 젖혀놓고 보면, 한 개인의 영욕과 부침을 가능케 한 엄청난 시대적 소용돌이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민중의 비극을 딛고 피어난 꽃이다. 따라서 영웅은 언제나 수많은 민중의 비극을 딛고 피어난 꽃이다. 따라서 영웅은 언제나 정치적 소용돌이, 전쟁의 참화 속에서 절대적 권위의 철갑을 두른 채 만인 위에 군림하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현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영웅을 배척한다. 이미 한 개인의 권위와 특정인의 능력만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웅이란 말 자체가 전제주의적 속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존재에 버금가는 너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영국의 격언에 '두 사람의 영웅은 나란히 있을 수 없다.(Two heroes can not stand together.)'란 말이 있는데, 이 격언이 영웅주의의 비민주성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 동양의 격언에도 '양웅불구립(兩雄不俱立)'이란 말이 있는데, 영국의 격언과 똑 같은 뜻이다. 그래서 현대사회는 고전적인 의미의 영웅이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만약 그런 영웅이 존재하는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의 후진성을 상징하고 있을 뿐이다.

「H.하이데」는 말했다. '개인의 역할이 탁월한 시대는 이미 사라졌다. 국민이나 당파나 집단 그 자체가 영웅이다.'라고.

서구의 선진사회를 보면 정치제도나 권력구조 자체가 영웅의 출현을 억제하고 있다. 제도적으로 권력집중을 막고 있으며, 각 부문이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힘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이를 제어하는 시민조직이 있어 권력 드라이브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집권자나 집권 희망자에 대한 자격시비는 처절하리만큼 가혹하다. 대통령이나 대법관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전력이 적나라하게 벗겨지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다. 몇 십 년 전의 병역문제, 사생활, 재산문제가 새삼스럽게 시비의 대상이 되면서 벌거벗은 채로 대중 앞에 서게 한다. 이것은 시민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겠지만 정치, 경제, 사회 등 소위 힘이 집중될 수 있는 곳에는 영웅을 허용치 않겠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의지의 발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원칙적으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분야가 아닌 스포츠나 문화예술 부문에는 의도적으로 영웅을 만들어 박수갈채를 보낸다. 군림하거나 지배하려는 경향이 있는 세계는 철저히 경계하지만, 그렇지 않는 세계에는 오히려 영웅을 키워주는 것이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일류투수가 되면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대중들은 일희일비하고, 그는 공 던지기 하나만으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거부가 된다.

미국의 국기인 미식축구는 대스타「쿼터백」의 영웅놀음에 나머지 선수들은 시종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할 정도이다.「마이클잭슨」과 같은 대중가수는 영웅의 차원을 넘어서 아예 대중의 우상이 되었다.

선진 서구사회에서 영웅이라는 개념은 이제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이 인식하는 영웅의 어느 구석에도 권위나 군림에서 흘러나오는 악취를 맡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영웅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영웅주의란 대중의 능력이나 힘을 무시하고 영웅스러운 사상과 행동을 사회생활의 최대목표로 하는, 비뚤어진 개인주의로서 스스로 영웅인 체하는 마음가짐이나 행동거지를 말한다. 이러한 사고는 당연히 힘의 집중을 유발하고 인물의 양립(Stand Together)을 거부한다.

정치제도에서 삼권분립은 교과서에나 있는 용어일 뿐이고, 권력을 휘어잡은 자는 명칭은 다를망정 아무런 실익도 없는 단체장의 우두머리를 차자하기 위해 혈안이 되고, 명예직일 뿐인 지방의회 선거가 치열한 혼란양상을 보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영웅으로의 길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스타들을 영웅화시키지는 않는다. 좀 클만하면 깎아 내려서 흠집을 내는 일이 많다. 정치권에서는 금기시 되는 사생활 들추기가 온통 대중스타들에게 집중되어 온갖 소문을 다 퍼트리고 생채기를 내어서 재능을 발휘하지도 못한 채 사장되고 만다.

스탠드를 꽉 매운 관중 앞에서 분명히 패스를 해주어야 할 상황인데도, 동료가 영웅이 되는 걸 보느니 차라리 경기에 지고 말겠다는 심보다.

우리 사회에서 영웅이란 아직도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개선장군 같은 존재이다. 모두들 그런 환상 속에서 영웅을 향해 돌진한다. 스포츠나 문화예술계의 인물은 아무리 뛰어나도 영웅으로 인정치도 않을뿐더러, 혼자 뛰어나도록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힘이 있는 곳에다 영웅을 키워서는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 거기에는 국민 모두의 냉혹한 시선과 준엄한 역사의 감시가 잠시도 끊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힘의 논리가 전제되지 않는 세계, 투쟁이 아닌 화음이 지배하는 세계에는 우리 모두 많은 영웅을 키워 대중의 삶을 살찌워 나갈수록 좋은 것이다.

고대 후진 사회에서의 영웅은 대중 위에 군림하고 대중을 지휘하며 대중의 존경을 받으면서 대중에게 경외심을 일으키는 존재이다. 그러나 현대 선진사회의 영웅은 대중 속에 뿌리박고 대중 속에서 성장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그런 존재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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