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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의 문화산책] 고흐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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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의 문화산책] 고흐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서
  • 박은정 기자
  • 승인 2017.06.07 1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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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그린 <까마귀 나는 밀밭>의 실제 배경이 된 밀 밭 전경(사진=박은정 칼럼니스트)

[한국정경신문=박은정 칼럼니스트] '고흐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서'

“요동치듯 빠르고 거친 붓질의 노란 밀 밭, 곧 폭풍우가 몰려올 것만 같다. 시커먼 구름이 뒤덮인 어둡고 낮은 하늘과 불길한 까마귀떼, 어디로 갈지 모르는 구불구불한 세 갈래 길”

이 그림은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후기인상파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그린 <까마귀가 나는 밀밭(Wheatfield with Crows, 50.5x103cm 유채)>이다. 고흐가 권총 자살로 사망하기 전, 생애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이 그림의 배경이자 고흐가 자신의 가슴에 권총을 쏘았던 그 밀밭으로 가기 위해 프랑스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와즈 마을로 들어섰다.

이 마을은 고흐가 아를에서 귀를 자른 후 우울증을 치료했던 생레미의 정신병원을 떠난 뒤 마지막으로 두 달 동안 머물던 곳이다.

오베르 마을에 들어서면서 안내 받은 고흐의 흔적-<오베르 교회, 1890>를 지나 <오베르의 계단, 1890>을 그렸던 오름에 들어서 언덕 샛길을 오르니 드넓은 밀밭이 나타났다. 아직 5월이라 밀이 노랗게 익진 않았지만 밀밭 한 쪽에 세워져 있는 <까마귀 나는 밀밭> 그림이 이곳이 그 곳임을 알려 준다.

어느 날인가 고흐는 캔버스를 들고 마을을 벗어나 끝없이 펼쳐진 한 여름의 들판으로 나왔고 후덥지근한 여름의태양빛은 노란 밀밭을 이글거리게 했을 것이다. 그 때 한줄기 거칠게 불어온 바람에 쓰러져 일렁대는 밀밭, 놀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까마귀 떼들, 광기의 역동성이 발현된 검푸른 하늘, 그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었던 망설임의 표현인 구불구불한 세 갈래 길 등은 절망의 순간에 다다른 죽음의 암시였는지도 모른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그림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는 성난 하늘 아래의 거대한 밀밭을 묘사한 것이고 나는 그 안에 있는 슬픔과 극도의 외로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고흐의 그의 동생 데오의 무덤(사진=박은정 칼럼니스트)

비운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1890년 7월 27일에 자신의 절망을 그렸던 그 벌판으로 나가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쏜다. 그리고는 즉사하지 않은 채 피 흘리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하숙집으로 돌아가 이틀 뒤 사랑하는 동생 테오의 손을 잡고 생을 마감한다.

그와 동생 테오와의 형제애는 고흐가 죽고 6개월 뒤, 급속도의 건강 악화로 테오가 사망한 것에서도 나타난다. 테오는 가난한 형을 위해 생활비를 대주었지만 자신의 생활도 어려운 터라 마지막 편지에서 더 이상 생활비를 보낼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이 두고두고 회한이 되었을까? 임신한 아내를 두고 33세로 형 뒤를 따랐던 테오의 사연 또한 가슴이 먹먹했다.

그들이 나란히 묻힌 오베르 쉬르 우와즈의 공동묘지에는 다른 화려한 비석들과 달리 조촐한 돌판 비석 아래 아이비로 덮인 무덤이 나란히 길손을 맞고 있다. 당시 자살한 사람의 무덤은 꾸밀 수가 없다는 이유라고 한다.

서양 미술 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고흐-다작의 자화상을 비롯 평생 90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지만 생전에 팔린 그림은 <붉은 포도밭> 단 한 점이었다고 한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오늘날 그의 그림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고가로 경매되는 그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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