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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인터뷰] 은퇴한 '국대 GK 출신' 윤영글의 다음 목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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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인터뷰] 은퇴한 '국대 GK 출신' 윤영글의 다음 목표는?
  • 김알찬 기자
  • 승인 2024.01.04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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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자월드컵 당시 여자대표팀 단복을 입은 윤영글의 모습. 윤영글은 여자월드컵을 끝으로 현역 은퇴한 뒤 제2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공정일보 김알찬 기자] ”축구선수로서의 삶을 끝내고 두 번째 삶의 자리를 잡아가야 하는 상황인데, 아직 결정된 것은 없어요.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찾고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올해의 목표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여자 국가대표팀 골키퍼로 활약했던 윤영글(37)은 지난해 은퇴를 선언한 뒤 배드민턴에 푹 빠졌다. 승리가 지상 목표였던 전문 선수에서 벗어나 스포츠의 순수한 재미를 다른 종목에서 느끼며 사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은퇴 후 공허함을 달래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열린 여자 월드컵을 끝으로 23년 간의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윤영글을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가 만났다. 그는 ”선수로서 최선을 다했기에 은퇴를 한다는 것에 대해 후회는 없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실수했다는 것이 아쉽긴 하다“고 말했다.

윤영글은 지난 7월 열린 콜롬비아와의 2023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0-1로 뒤진 상황에서 상대의 평범한 슈팅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추가골을 내줬고, 여자대표팀은 0-2로 패했다. 첫 경기 실수 이후 윤영글은 더 이상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후 한국은 모로코에 0-1 패, 독일과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조별리그 탈락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실수가 윤영글이 축구 선수로서 가꿔온 감동적인 스토리를 가릴 수는 없다. 그는 성인 선수가 된 이후 필드 플레이어에서 골키퍼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도전을 감행했고, 뒤늦은 포지션 변경에도 불구하고 골키퍼로서 국가대표팀에 승선하며 도전을 성공으로 만들어냈다.

물론 축구 선수로 지냈던 모든 순간이 즐거웠던 건 아니었다. 지금보다 훨씬 이전에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할 만큼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윤영글은 인내와 끈기를 통해 마침내 꿈을 이뤄냈다. 윤영글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만나보자.

- 은퇴식은 어땠나.

지금까지 은퇴한 여자 축구선수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간혹 팀에서 은퇴식을 해주기도 했다. 나는 마무리를 WK리그에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은퇴식은 생각하지 않았지만, 선수협회에서 먼저 합동 은퇴식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사단법인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는 지난해 12월 16일 선수협 자선경기에서 2023시즌 선수 은퇴를 선언한 7명의 합동 은퇴식을 진행했다)

이전부터 은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까지 축구 선수로 뛰면서 더이상 쏟아낼 수 있는 힘이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지만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였던 월드컵에서 실수했다는 것이 아쉽긴 하다. 23년 동안 축구선수로 살아온 것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은 없다.

- 선수로서 마지막 해였던 2023년을 돌아본다면?

해볼 만하면 부상이 발목을 잡는다는 생각이 들어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또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실수를 범했다. 2023년을 돌아보면 정말 안 풀렸던 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과거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 생각하고 넘기고 있다.

- 그동안의 축구 인생을 돌아보자. 축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활발하게 뛰어노는 걸 좋아했다. 어렸을 때 태권도를 했는데 같이 다니던 동생의 지인이 축구팀 감독님이셔서 소개를 받고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고, 수비형 미드필더나 센터백도 다 소화했다. 중앙에서 하는 포지션은 전부 소화했던 것 같다.

이후 축구가 좋아서 계속 했다기보다는 운동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시작한 길이 축구였고, 축구선수라는 직업을 갖게 된 만큼 이 위치에 맞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경기했던 것 같다. 모든 직장인들이 이 일이 너무 좋아서 직장을 다니는 것은 아닌 것처럼.

- 골키퍼를 처음 권유받았을 때 어땠나?

2009년 무릎 부상으로 인해 수술을 했는데, 당시 서울시청 여자축구단 서정호 감독님께서 내가 중학교 때 잠시 골키퍼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셔서 골키퍼로 팀에 복귀하게 됐다. 그런데 계속해서 코치님이 바뀌는 환경이나, 골키퍼로서 실점하는 부분 등 여러 사소한 것들이 내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윤영글은 서울시청에서 1년만 골키퍼로 뛴 후 다시 필드 플레이어로 돌아왔고, 2012년 수원시 시설관리공단(현 수원FC 위민)으로 이적한 뒤에도 한동안 필드 플레이어로 활약하다 팀 사정상 2014년 중반부터 골키퍼로 정착하게 됐다)

- 성인이 돼서 골키퍼로 전향하게 돼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처음에는 혼자만 다른 색깔 유니폼을 입는 것이 싫었고, 장갑을 끼는 것도 싫었다. 그래도 내가 중학교 때 골키퍼 경험도 있고, 볼에 대한 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만 막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경기했던 것 같다.

또 골키퍼로서 공격수의 슈팅이 워낙 좋아서 실점하는 경우도 있는데, ‘너무 잘 차서 막을 수 없었다. 코스가 좋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먹히는 골은 없다’고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다. 미리 준비가 이루어졌고 반응을 했다면 실점하더라도 손이라도 뻗고 손끝이라도 맞아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경주한수원(2017~2021년) 시절, 은퇴를 고민하다가 김풍주 코치를 만나면서 선수 인생이 달라졌다고 하던데.

은퇴를 고민하고 있던 2016년, 창단을 준비하고 있던 경주한수원의 김풍주 코치님께서 나를 만나기 위해 안산까지 찾아오셨다. 처음에는 코치님께서 어떤 분인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엄청 대단한 분이시더라. 연세가 있으신데도 3년 내내 항상 최선을 다해 지도해 주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더 열심히 훈련에 참여했던 것 같다(김풍주 코치는 한수원에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골키퍼 코치를 맡았다). 늘 코치님의 품격에 걸맞은 선수가 되고 싶었다.

함께 카페에 가서 이야기도 자주 나누고, 힘들 땐 코치님 앞에서 털어놓고 울었을 정도로 내게는 아버지 같고 오빠 같은 분이셨다. 내 성격이 강성인데, 항상 옆에서 대화를 통해 나를 컨트롤해 주셨다. 만약 지도자가 된다면 코치님 같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

- 2004 FIFA U-19 여자 챔피언십(이후 U-20 여자 월드컵으로 바뀜)에서는 수비수 유망주로 활약했었고, 2015년부터는 골키퍼로서 여자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

어릴 때 청소년 대표로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훈련에 들어갔을 때 언니들과 함께 훈련했던 게 더 긴장됐던 것 같다. 10년이 지나고 국가대표팀 후보 골키퍼로 처음 뽑혔을 때는 필드 경험이 있어 발을 쓸 줄 알고, 겁 없이 경기하는 모습들을 좋게 봐주셔서 뽑힌 것 같다.

이후 시간이 지나서 1번 골키퍼가 되고, 2018년 아시안컵과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며 ‘이제 진짜 골키퍼가 됐구나’ 실감하게 됐고, 골키퍼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또 필드 플레이어는 내가 실수하더라도 도와줄 수 있는 동료가 있지만, 골키퍼인 내가 실수하면 바로 골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잘 하자’보다는 ‘실수만 하지 말자’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 2022년 덴마크 리그의 오르후스 GF 위민으로 이적하며 골키퍼 중 최초로 유럽에 진출하게 됐다. 하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스웨덴 리그의 BK 헤켄으로 이적했고, 2023 여자월드컵까지 뛰었다. 타지 생활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 어땠나?

외국 선수들은 축구를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사소한 자기관리부터 정말 최선을 다한다고 느꼈다. 나도 평생 절제하는 삶을 살았지만, 이 선수들 앞에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더 열심히 운동하게 됐다.

경기장에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이기 위해 과정 역시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월드컵을 앞두고 예민해지면서 면역력이 떨어지며 부상도 따랐다. 이때 심리적으로 많이 흔들리기도 했는데, 타국이라서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 힘들기도 했다.

- 지금까지의 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인가?

2021년 10월, 당시 1위였던 미국과의 친선전(0-0 무)이다. 나는 그동안 대표팀 벤치에 오래 앉아있던 선수였기 때문에 항상 언니들의 경기를 보면서 ‘나였다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머릿속으로 상상하고는 했다. 실제로 경기에 들어갔을 때 첫 세이브가 상상대로 이뤄졌고, 이후로는 ‘집중해야 한다.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경기가 끝났을 때는 몸에 힘이 다 풀리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후 인터뷰에서 질문을 받자마자 눈물이 났다. 벤치에 앉아있는 동안 이 시간을 늘 상상하고 꿈꿔 왔는데, 그 일이 오늘 현실로 일어났다는 것이 실감났다. 경기가 끝나고 김풍주 코치님께 선생님 덕분에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다 연락드렸더니 ’너무 잘했다‘고 하시더라.

또 내가 경기는 뛰지 못했지만, 2022년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거뒀을 때도 기억난다. 당시 컨디션이 좋았고, 콜린 벨 감독님께서도 경기 전날 내가 경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귀띔도 해주셨다.

그런데 경기 전날 실시한 PCR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좌절하기도 했지만, 일주일 동안 더 좋아진 모습을 보이기 위해 방에서 운동하며 체지방을 8%대까지 감량했다. 하지만 지금 팀이 잘 되고 있어 현 상황에 변화를 주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23년 동안 축구선수로 생활하며 가장 완벽하게 준비한 대회였는데, 실제로 뛰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 은퇴 이후 지도자 강습회를 수강했다.

원래 B급 지도자 자격증은 가지고 있었으나, 골키퍼로서 골키퍼 지도자 자격증이 하나도 없다는 게 부끄러울 것 같다고 생각해 강습회를 수강하게 됐다. 필드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할 때 강사님이셨던 이미연 감독님께 많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 두 번째 지도자 강습회는 훨씬 수월하게 수강했던 것 같다.

- 차후 지도자를 할 생각이 있나?

은퇴를 결정하고 23년 동안 축구 쪽에 있었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던 건데, 주변에서 후배들을 위해 뭔가 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나 스스로도 고민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지도자로 남을 바에는 현재 몸 상태도 좋기 때문에 선수생활을 더 이어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월, 황인선 감독님의 부름을 받아 국가대표 상비군 아이들을 잠시 지도하는 경험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내가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막막함도 있었지만, 막상 해보니 너무 재밌고 보람찼다. 이때 훈련했던 선수가 ‘언니랑 또 훈련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을 때 한 번쯤은 지도자를 경험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마지막으로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

요즘 배드민턴을 시작했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두 시간씩 배드민턴을 할 때 너무 행복했다. 얼른 재활을 끝낸 후 레슨도 받을 예정이다. 최종적으로는 아마추어 배드민턴 대회에도 나가보고 싶다. 대표팀에서 만났던 이근혜 트레이너도 배드민턴을 하고 있는데, 열심히 준비해서 이 선생님을 이기는 것이 목표다(웃음).

또 축구선수로서의 삶을 끝낸 이제, 두 번째 삶의 자리를 잡아가야 하는 상황인데,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찾고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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