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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출연작 '난파선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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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나의 출연작 '난파선Ⅱ'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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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멀리 국수리로 로케이션을 떠나 촬영을 했다.
▲ 우리는 멀리 국수리로 로케이션을 떠나 촬영을 했다.

1976년 중앙대 소극장에서 영화제가 열렸다. 지금 생각하면 열정만 충만했던 시기이다. 1976년이 내게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옛 스크랩북을 발견하고 당시 기사를 보며 몇 가지 생각이 떠올라 적어본다.

1976년, 화제작 <적상춘>의 완성을 마치고 영화워크숍 팀은 모두 경기도 양평의 국수리로 촬영을 떠났다. 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가 하면 13기 박장균 선배가 <난파선>을 만들었는데 아무래도 미련을 못버리고 <난파선Ⅱ>의 각본을 썼고 후배인 정태원이 연출을 맡게 된 것이다.

출연은 자연스레이 내가 맡았고 국수리로 촬영을 떠났다. 내용은 강변의 여인을 둘러싼 청년들의 갈등이다. <난파선Ⅱ>는 시작부터 여주인공을 구하지 못해 결국 연출자 정태원이 이화여대생을 데려왔다. 길거리 캐스팅이라도 한 것일까? 자살직전의 여인 역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녀는 당돌하게도 연기해냈다. 극중에서의 모습처럼 보통 당찬 성격이 아니었다.

복학생들은 말들은 안하지만 연출자가 데려온 이대생에 대한 관심을 보였고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따라서 촬영장도 열띤 분위기가 됐다. 국수리는 작은 섬이다. 그때만 해도 고즈넉한 시골 풍경 그 자체이다. 그곳에 웬 묘령의 여인이 나타난다. 경치 좋은 이곳을 그녀가 생의 마지막 장소로 선택한 것이다. 그녀를 본 마을의 한 녀석이 접근하여 욕을 보이려는 찰라 또 다른 청년이 나타나 여인을 구해낸다.

그러나 여인의 청년들의 격투에 아랑곳 않는다. 모든 것에 초연해져 자포자기한 여인에게 폭력도 섹스도 아무 미련도 관심도 없다. 이 영화는 액션이 많은 영화였다. 심한 격투가 벌어지고 여인을 찾아 사방을 헤매는 청년의 눈은 광기로 번뜩인다. 절벽을 뛰어올라온 나는 연기에 몰두했는데 “컷!” 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스태프인 조성훈 선배가 “야, 너 진짜 미친 줄 알았다”며 싱글거린다.

결국 이 모든 광기는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두 청년의 광기어린 격투가 끝나고 여자는 깔깔대며 웃다가 스스로 강물 속으로 들어간다. 내가 연출하지 않았지만 대략 그런 내용이다. 광기의 시대에 광기의 여인과 광기의 청년을 보여준 광기의 영화이다.

당시 이중거 교수도 동행하시어 우리의 촬영과정을 보았다. 흡사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이 험난하고 야한 영화의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참여 스태프로는 김항원, 김영준, 이한상, 조성훈, 박장균, 이민휘, 이근목, 임영란, 신철성 등이다. 그 외 몇 편이 더 만들어져서 2404 강의실에서 영화제를 했는데 많지 않은 관객들은 많은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1976년 3학년 워크숍 상영목록
▲ 1976년 3학년 워크숍 상영목록

이 해 한국영화계는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었던 시기였다. 서울 관객 8만 명을 동원한 문여송 감독의 <진짜 진짜 잊지마>, 박태원 감독의 <간난이> 등 저예산 하이틴 영화가 붐을 이루었고 바비 김 주연의 <왕룡> 등 무예영화도 지속적으로 만들어졌다.

제작사들은 의무제작 시절이니 눈치나 보며 손해안 볼 영화만을 제작하던 시기인데 합작영화로 개봉된 <사랑의 스잔나>가 171,239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정창화 감독, 신일룡 주연의 홍콩영화 <심판자(귀계쌍웅)>도 합작영화로 개봉되었다.

이 해의 이슈로는 신상옥 감독이 오수미와 홍콩에서 촬영했던 <장미와 들개>가 예고편에 검열삭제 화면이 들어가 상영되며 제작사의 허가가 취소되었다. 결국 한국을 대표하던 신필름 계열의 안양필름은 허가 취소되고 <장미와 들개>는 합동영화사 작품으로 개봉된다.

당시 제작자협회 회장으로서 정권에 맞서던 신상옥 감독이 자초한 일로 신 감독은 한국을 떠나 유랑객 신세가 된다. 참고로 신 감독의 62번째 연출작인 <장미와 들개>는 관객 수 14,446명을 기록했다. 이 영화로 인해 영화에 목숨을 걸었던 신상옥 감독은 한국영화계에서 일시 사라지는 운명이 된 것이다.

영화진흥공사는 국책영화라고 일컬어지는 임권택 감독의 <낙동강은 흐르는가>를 제작했다. 변장호 감독은 제22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 <보통여자>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홍콩에서는 성룡이 빅스타로 떠오르는데 <신정무문(新精武門: New Fist Of Fury)>, <유성검의 대결(風雨雙流星)>, <소림목인방(少林木人巷)> 등이 개봉되었다.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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