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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사랑하는 아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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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의 다큐세상] 사랑하는 아내에게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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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동유럽 투어 오스트리아
▲ 2019년 11월 동유럽 투어 오스트리아

모르는 사람을 만나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 자식을 낳고 여러 추억을 만들어 공유하며 한 평생을 살다가 이승을 떠나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그 가운데에서 특별한 만남에 의한 보배로운 존재가 바로 부부일 것이다. 남자들의 삶이란 가정 밖의 일이라는 핑계로 자칫 소홀하기 마련인데 아내라는 직업은 그 모든 것을 채워주는 너무도 고마운 존재이다.

나와 아내 최현주는 무용가인 이경화 교수의 소개를 통해 만났다. 이 교수의 제자인 아내를 보고 첫 눈에 반해버렸다. 내가 이 교수에게 적극적인 공세를 한 셈이다. 그렇게 아내와의 데이트 구실을 만들어 만남을 시작하고 하였다. 주로 방배동의 카페에서 만나 집에를 데려다 주며 정을 쌓아 갔다.

그리고 어느 날, 여러 부족한 사람이지만 아내에게 솔직하게 구혼을 하여 승낙을 받아냈다. 장인은 더 없이 편안한 분이라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장모님은 약간은 못미더워 하셨다. 처가가 있던 인천과 내가 살던 서울 이문동 까지는 먼 거리인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남을 갖다 보니 장모님도 “사위 잡겠다”라며 결혼을 승낙하셨다.

지금은 두 분 모두 별세하시어 안계시만 우리의 행복한 가정생활을 보고 계실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별 탈이 없으니 부족한 만큼 이해심으로 나를 받쳐준 아내의 덕이다. 나 스스로를 알지만 나의 성격은 한 마디로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그런데 가정생활에서는 그런 성격은 절대 금물이다. 그것을 잘 알기에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한쪽 눈을 감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데 눈밖에 거슬리면 당장에 불호령이 떨어지는데 어느 날인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시험 채점을 두 눈으로 보면 학점이 낮아지기 일쑤인데 틀려도 유추 해석하며 학생들의 심정을 이해하며 채점하면 최고이다. 그렇게 아내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아들의 음악 공부를 원치 않았다. 그런데도 아내는 신동 키우듯이 정성을 다했다. 나는 그것 때문에 집안 살림이 무너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모른 척하였다. 아들은 지금 BMW 딜러로 일하고 있다. 엄마의 소원대로 음악가가 되지는 않았는데 엄마들의 지극 정성은 가끔은 도를 지나친다.

우리 어머니 역시도 아들이 원하는 안양영화예술학교의 입학을 막기 위해 최은희 교장을 만나 불합격 청탁을 하셨다. 그 모든 것이 자식을 위한 일념인데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은 참으로 못 말리는 분들이다. 우리 어머니의 이유는 “아들이 하나”라는 단 한가지이다. 아들이 둘이라면 눈 감아 줄 수 있지만 외아들이 영화 일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모정이다.

나는 어머니의 모정에도 불구하고 중앙대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하며 결국엔 영화 일을 시작하였고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였다. 그리고 EBS에 스카우트되어 PD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내와 결혼 한 것도 그 즈음이다. PD의 부인은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많다.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

나는 농담 삼아 EBS PD 생활할 때 아내가 가장 편했다고 말한다. 일 년 중 반수가 넘게 집을 비웠다.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출장을 떠나는 것인데 남편이 눈에 안 띄고 월급은 또박또박 입금되니 하는 말이었다. 누구나 들으면 그럴 것 같지만 가정과 남편 챙기는 보람에 사는 아내의 마음을 모르는 소리이다. 눈에 안 보이니 더 걱정이 되고 가정 관리 또한 도맡아 하니 더 힘든 것을 생각지 않은 것이다.

나는 아내가 집에만 있는 것을 원치 않아 사회활동을 적극 권하였다. P무용단에서 해외 공연을 연습하다가 무릎 부상을 당하고 그마저도 할 수가 없어 아내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뭐 거창하지는 않지만 취미생활로 그만한 것도 없다. 그리고 느지막이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아무래도 나이와 건강 때문에 계속할 수는 없었다.

내가 EBS에서 정년을 하자 아내는 남편 사기를 진작시켜주기 위해 여행을 권해 중국 관광을 다녀오니 멀리 광주의 호남대에서 연락이 왔다. 정년 후 취업은 쉽지 않은 일인데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며 주변사람들이 당신들의 일처럼 신이 났다. 그럴 만도 한 것이 EBS에서도 정년퇴직자로서는 근래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제2의 인생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광주로 함께 내려가겠다는 아내를 말렸다.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애들이 있는데 집을 비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자취생활을 시작하였는데 교수 연구실에서 여러 생각으로 복잡했다. 서울에서만 생활하던 것은 고사하고 홀로 생활에 적응이 될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몸은 광주에 마음은 서울에 있었다. 나는 아내의 소중함을 실감하였고 3년 후 퇴임을 하고 서울로 왔다. 어느덧 건강을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출장으로 사방팔방을 다닐 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인데 나도 나이를 먹다보니 관리 받아야 할 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로 와서 체육관에서 3시간씩 운동하며 차츰 당 수치도 내려갔고 덕분에 허리 사이즈와 체중도 줄어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아내 역시도 체육관 다니기를 즐기는데 요가 코치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부부간에 여행을 좋아하지만 여건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노력하면 안 될 일도 없다.

부부는 생각이 일치가 되어야 한다. 건강, 취미까지 일치가 되면 좋지만 그건 두 번째이다. 생각이 불일치 하다보며 자연 갈등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철저히 아내에게 맞추어 주지 못했다. 그러나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나부터 상대에게 맞추어 준다는 각오면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이걸 남편들이 느끼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것을 말없이 봐주는 것이 덕목이라는 것을 아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제 아내의 말이라면 틀려도 곧이 믿는다. 그게 가정의 평화를 위하는 길이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얼마 전에 아내가 갑자기 등산을 하겠다고 했다. 취미까지 맞으면 그게 최고의 행복인데 즐거이 함께 청계산 이수봉(545m)까지 신일룡 코스를 올랐다. 계곡 따라 올라가는 한적한 코스라서 고 신일룡 배우가 즐겨 갔던 코스이다.

그런데 정상에 올라 막걸리 한 잔까지는 최고였지만 아내의 무릎으로는 무리였다. 그러나 그밖에도 부부가 함께 즐길 거리는 많다. 아내는 드라이브를 좋아하고 커피숍 맛집을 즐겨 찾는다. 나는 없는 시간이라도 따라 나설 수밖에 없다. 요즘은 예전처럼 바쁘지도 않다. 데려가만 준다면 어디고 OK이다. 부디 버리지 말고 데려가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여보 고생 많았어요. 앞으로도 또 힘든 일이 있겠지만 우리 잘 헤쳐 나가 봐요~~”

▲ 2022년 8월 27일 청계산 이수봉 정복
▲ 2022년 8월 27일 청계산 이수봉 정복
▲ 안태근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및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안태근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및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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