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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사] 이우석 회장의 영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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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사] 이우석 회장의 영화 인생
  • 안태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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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사에 우뚝 선 거인 이우석 회장
▲ 한국영화 100년사에 우뚝 선 거인 이우석 회장

이우석 회장은 어린시절 일본 큐우슈우(규슈, 九州)에서 소학교(초등학교)를 다녔다. 반내의 일본인 학생들은 이우석 소년이 조선인이라며 대놓고 멸시하고 폭행까지 했다. 서너 명이 이우석 소년에게 항복하라며 구타하고 왕따시켰다. 이 회장은 이때의 후유증을 평생 안고 산다. 코의 기능이 비정상이 되어 수술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 되었다.

일제가 패전하며 한국으로 귀국하여 당시 국민학교로 편입하였는데 이번에는 한국어가 서툴러 학우들에게 '일본놈' 소리를 듣기도 했다. 당시에는 먹고 사는 것이 당면 문제였다. 어린 이우석은 생활전선에 뛰어들면서 결국 학교 졸업장이 없는 인생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훗날 롯데의 신격호 회장(1921년생, 롯데그룹 창업주이자 명예회장으로, 1942년 83엔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8년 일본 롯데, 67년 한국 롯데를 세웠으며 롯데를 재계 5위 그룹으로 키워냈다.)과는 14살 차이인데 일본에 출장 가서 자주 만나던 사이가 된다. 그 인연으로 2035년인 100세까지 이용 가능한 평생회원권을 선물 받았다. 오래 살아라는 뜻이 담겨있는 선물일 것이다. 그 평생회원권을 본 직원들이 당연히 깜짝 놀랄 일이다.

이우석 회장은 부산으로 가서 유리가게 점원을 하며 식생활을 해결했다. 시장통을 누비며 배달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낸다. 그리고 부산 동아극장에서 매표원으로 일하며 자신의 영화인생을 개척하게 된다. 그의 인생은 미리 짜여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외화를 수입하는 오퍼상들을 알게 되었고 독일영화 <물망초> 수입에 소액 투자를 하며 그의 인생은 풀리기 시작한다.

당시 연합영화사의 주동신 부사장(?)은 주요 흥행작을 일본을 통해 수입하던 분이다. 그외 오퍼상인 김광진 사장 등의 활동을 보며 그도 외화 오퍼상일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결국 외화 수입, 한국영화 수출일을 하게 된다. 그런 그를 정진우 감독은 깡통장사 했다고 한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한국영화를 모아 해외에 수출하며 그는 자연스럽게 한국영화 수출업자로 알려진다.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 '국산영화 제작자에게 외화 수입권을 준다'며 영화법을 개정하던 시기에 그도 한국영화제작사 신고를 하고 (주)동아수출공사를 창립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85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외화 수입도 수백 편에 이르는데 정확한 편수는 알수 없고 오래 근무한 김부장에 따르면 150~200여 편 남짓일 것이라고 한다. 홍콩의 이소룡 영화부터 성룡영화까지 골든하베스트 영화는 그가 모두 수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신용을 쌓아 형성한 관계 때문이다.

영성프로덕션이라는 비디오 프로덕션도 설립해 성룡의 출연작 모두를 출시하는데 모두 500여 편 남짓 출시했다고 한다. 그가 운영하던 동아극장도 명문관으로 자리잡았고 전국의 여러 곳에 많은 극장을 운영하였다. 이때가 그의 전성기이다.

그리고 양재역 근처로 사옥을 옮겨 10년을 보내며 인천의 영화 스튜디오를 기획하고 공사를 시작하여 2022년 드디어 오픈을 했다. 이스튜디오는 이 회장의 영화인생의 결과물이다. OTT시대를 맞아 늘어난 영화제작 시기에 적합한 사업이 아닐 수 없다.

그는 험한 영화계에서 생활하며 적을 만들지 않았다. 매사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사람들을 대하니 적이 생길 수 없다. 인맥 또한 폭넓은데 그의 교유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제 영화계에서 우뚝 선 거인으로 그는 자리잡았다. 그것에 감사하며 영화인들을 위해 자신이 쌓은 부를 아끼지 않으니 오블리스 노블리제를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성공비결 중 하나는 화를 내면 나만 손해라는 것이다. 즐겁게 살아야 하며 참는 마음으로 정직하게 산 것이 영화계에서 장수했던 롱런의 비결이다. 한마디로 깨끗하게 살아온 인생이다. 그것이 영화계에서 존경을 받고 신사로 불리는 이유이다.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회장)
▲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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